[스포츠W 임가을 기자] 강물에 몸을 던졌지만 기괴한 천재 과학자 ‘갓윈 백스터’에 의해 ‘벨라 백스터’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한 여인은 갓윈의 보호를 받으며 나날이 성장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나게 된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벨라에게 반한 짓궂고 불손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를 수락한 벨라는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통해 처음 보는 광경과 새롭게 만난 사람들로 인해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다.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 스포일러 포함
‘가여운 것들’은 한 과학자의 손에서 새롭게 되살아난 세상 하나뿐인 존재 ‘벨라’의 환상적인 여정을 그린 영화.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킬링 디어’, ‘더 랍스터’ 등을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원작 소설은 보자마자 시각적으로 인상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주제, 유머, 그리고 캐릭터들과 언어의 복잡성까지, 이제까지 그런 작품은 처음이었고 완전히 매료됐다. 영화는 소설보다 좀 더 세상에 열려있도록 했다”고 원작에 대한 감상과 각색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만큼 영화에서는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우화를 연상시키는 서사에 발맞춘 비현실적인 미술과 색채, 빅토리아 시대를 구현한 화려한 의상은 눈을 즐겁게 만들고, 약간 첨가된 잔인함과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창조한 키메라의 비주얼은 특유의 기괴함을 더한다.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영화는 남성의 형체로 그려졌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여성으로 치환한 ‘벨라’를 통해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다. 당시 여성에게 당연하게 가해지던 억압을 도화지 같은 뇌를 가진 벨라가 의도치않게 가소로이 받아치는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며 블랙 유머를 선보인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코드는 전면에 드러난다. 벨라의 주변을 구성하는 캐릭터는 대부분 남성이며 벨라의 성장 과정에 있어 다양한 관계로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들을 한없이 납작하고 한심한 존재로 표현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는 배우들은 웃음 포인트를 단번에 낚아챌 수 있도록 확실한 지질함을 연기해 코미디 영화의 정체성을 살렸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장치는 ‘성’이다. 극 중 그려지는 19세기는 여성이 성에 대한 직접적인 용어를 입 밖으로 내뱉기만 해도 저급한 취급을 받는 사회였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금기시됐던 사회에서 벨라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지며 쾌락을 탐구하고, 거리낌없이 남자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돈을 벌면서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매춘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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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추악한 여자로 여겨지는 길을 선택했지만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벨라는 그 태도만으로도 폐쇄적인 사회에 반기를 드는 존재로, 암묵적으로 정해진 사회 규범을 들이받는 벨라의 행보에는 자유가 느껴진다. 아슬하게 줄을 타며 이어진 여정 끝에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야만 모험의 엔딩은 제대로 된 한방을 먹인다.
그럼에도 찝찝했던 잔여물이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벨라의 신체와 정신의 연령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성적 쾌락을 강조하는 흐름과, 벨라를 그저 성적으로 이용하는 도구로 바라보는 제삼자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원초적인 불쾌함을 초래한다. 또, 매춘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선정적인 섹스씬이 과다하게 분량을 차지해 주제 의식이 흐려지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홀로 연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벨라’ 역의 엠마 스톤은 현재 그가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상 등 유수의 시상식에서 상을 쓸어담고 있는 이유를 증명했다. 엠마 스톤은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갓난아이부터 세계에 대해 고뇌하고 성장하는 어른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관객을 힘있게 이끈다.
한편, 영화 ‘가여운 것들’은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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