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희진 감독, 첫 장편 데뷔작 '로기완'으로 마음을 빼앗다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3-07 07: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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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차갑게 시작하지만 가장 따뜻하게 끝난다. 김희진 감독은 위태로움 속에 삶의 희망을 발견하며 가장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로기완'의 여정을 담아내며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지난 3월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연출 김희진 감독/넷플릭스


김희진 감독은 '로기완'이 장편 데뷔작이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하는 '로기완'은 한국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제작사 용필름과 연을 맺으면서 알게 됐다. "제작사 대표님이 원작을 너무 좋아하셔서 판권을 구입한 후 시나리오 쓸 작가를 찾고 계셨다. 그때 로맨스를 가미해서 데뷔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대표님이 원작을 너무 좋게 보셔서 작가님께 작가님께 편지를 쓰면서 애정을 더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저도 애정을 갖고 보게 됐다."

하지만 처음 제안 받고 기획을 시작한 시점부터 제작 후 작품이 공개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여기에 공개 3일만에 글로벌(비영어) TOP 10 차트 3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물론 '로기완'에만 오로지 10년을 몰두한 것은 아니지만, 남다른 작품일 수밖에 없다. "10년동안 계속 붙잡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기완 캐릭터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다. 그 캐릭터가 울면서 연길에서 시작했지만, 결말이 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프로젝트인데 만들어져서 나온 것 자체가 너무 후련하고 기쁘고 복합적인 심정이다. 주변에서 제 데뷔를 기다려주신 분들이 고생했다고 해주셨다."

주인공 로기완을 연기한 송중기는 '로기완'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송중기는 초창기 '로기완' 기획 단계부터 제안을 받았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도 함께 진행을 했다. 하지만 중간에 하차, 그리고 7년 뒤 다시 '로기완'을 제안 받고 캐스팅이 성사됐다. 처음부터 로기완이 송중기여야했던 이유는 배우 본연의 매력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스타이시다. 배우님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챙겨봤는데 볼때마다 느낀 점은 '사람의 마음을 가져간다'였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잘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인지 매력인지 모르겠지만 연출자나 창작자로서 기대고 싶은, 이 이야기에 조금의 빈틈이 있더라도 많은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팅하고 나서는 확신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기완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뭔가 확고하고 빈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비겁하지 않은 느낌이 컸다. 7년 전에 고사하셨을 때는 배우님이 안하면 못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다른 작품을 준비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가 송 배우님께 다시 제안을 하면서 다시 함께 하게 됐다. 넷플릭스와 송배우님과 함께 하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메인 포스터/넷플릭스


초반 시나리오 속 로기완과 송중기를 만난 작품 속 로기완은 달라졌다. "시나리오의 기완은 좀 더 여리고 잘 흔들릴 수도 있다. 그냥 버텨낸다는 느낌이 조금 더 들 수 있다. 근데 송 배우님이 해석한 기완은 조금 더 굳건한 느낌이었다. 이 시련이 나한테 왔지만 일단 버티겠다는 느낌.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 견디고 있는 느낌들이 있었다."

'로기완'은 북한에서 탈출한 로기완이 유럽연합 국가에서 난민지위를 받는 여정을 담아내기 위해 5개월동안 해외 로케 촬영을 진행했다. 김희진 감독은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데뷔작부터 해외 로케 촬영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송중기가 함께 해 든든했다. "첫 촬영이고 해외로케이다보니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장소를 찾는 과정이 있었다. 실제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으면 했다. 북한을 나와서 연길에 살고 있던 공간과 대비되는, 이 세계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마리의 집도 실제 거주 공간을 꾸민 것이다. 송중기 배우님이 해외 단역 출연 배우들과 영어로 소통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다. 제가 미숙하다보니 리더 역할을 발벗고 나서서 해주셨다. 그 외국 배우분들은 한국 배우분들보다 더 긴장했을텐데 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기완의 차가운 현실을 닮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살을 에는 추위가 화면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김희진 감독은 강추위 속 대역도 마다하고 직접 물에 들어갔던 송중기에 감사함을 전했다. "해외 촬영이니까 다른 스태프분들이 어려운점이 있었을텐데 추위를 담고자 해서 오히려 추위가 반가웠다. 극 초반에 기완이 물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위해 대역 배우도 대기시키고, 배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준비했었다. 근데 송 배우님이 직접 물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더라. 저는 마음이 불편한게 있었는데도 더 본인이 나서서 하겠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그때 카메라 각도도 바꾸고 다시 세팅했다. 그런 식으로 도움을 많이 주셨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말씀 드리지 못했지만, 너무 감사했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송중기 스틸/넷플릭스


송중기는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에 이어 3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조한철과 촬영장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두분이 함께 계실 때는 영화가 심각한 장면인데 내가 이렇게 큰 소리로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서로 애정어린 공격을 많이 하신다. 그렇게 웃고 나면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다."

로기완과 달리, 최성은이 연기한 마리는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마리는 과거 사격선수로서 불법 스포츠 도박에 휘말린 인물. 기완과 악연으로 얽혔지만, 결국 그는 기완이 살아갈 이유가 되주기도 한다. 김 감독은 최성은의 캐스팅 비화도 전했다. "오디션을 통해서 마리를 뽑았다. 최성은 배우는 오디션에 올 때부터 본인의 해석이 어느정도 끝난, 그게 저의 해석과도 비슷한 고유한 색의 마리를 가지고 오셨다. 그 배우님이 갖고 온 마리는 이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리의 레이어를 세세하게 쌓아놓았지만 편집 과정에서 디테일들이 잘려나간 부분이 있다."

북한에서 연길로 넘어와 마지막까지도 아들 기완의 행복을 바랐던 모친 옥희는 김성령이 연기했다. 화려한 이미지의 김성령은 '로기완'에서 모성애 짙은 어머니를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저는 전형적인, 친숙한 어머니 이미지를 원했는데, 제작사 대표님께서 옥희 역할이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상상도 못한 배우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김성령 선배님이 이미지샷 촬영할 때 옥희 분장을 하고 조명 앞에 섰는데 정말 너무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극 중 옥희의 유언 장면 촬영할 때 선배님이 너무 추운 상태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오래 누워계셨다. 너무 열연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연출 김희진 감독/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이모' 급으로 불리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이상희는 기완이 벨기에 정육 공장에서 만난 조선족 출신 선주를 연기했다. 선주는 기완의 난민 지위 신청을 위해 증언자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기완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이다. 조선족 말투부터 외형까지 이상희는 또 다시 믿보고는 배우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김희진 감독은 "이상희 배우님은 단편영화 하면서도 항상 작업하고 싶었다. 이전에 조선족 역할을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배우님이 선주는 흔히 생각하는 검은 생머리의 화장기 없는 조선족이 아니었으면 했다고 의견을 주셨다. 첫 촬영 때 뿌리 염색을 못하고 어색한 화장이라던지 벨기에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조선족의 모습으로 와주셨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완에게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 하는 동작이 있는데 그걸 봤을 때 촬영 감독님과 저도 너무 놀랍고 울컥했다. 저렇게 인사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숙인 머리통이 너무 안쓰럽더라. 배우님이 좋은 디테일들은 끌고 와주셔서 지금의 선주가 탄생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로기완'이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적으로 시작했지만, 원작에는 고작 3~4줄로만 적혀 있는 멜로를 가미했다는 점은 일부 원작 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기기도 했다. 김희진 감독은 "기완이 이 땅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는 위기가 단순히 난민 지위 신청이 반려된 것때문이 아닌 마리로 인한 위기가 들어오길 바랐다"고 했다. "대표님이 처음에 제안해주셨을 때도 로맨스는 이 작품의 중심 포인트가 아니다. 기완이 어머니의 몸을 판 돈으로 힘들게 벨기에로 왔지만 이 땅을 스스로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완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에 고작 몇 줄로 묘사된 부분에서 가능성을 생각하고 디벨롭했다. 극적인 요소를 지닌 캐릭터가 필요해서 설정들이 여러 개가 들어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희진 감독은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접하면서 영화 감독을 꿈꿔왔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사장님이 엄선한 추천작을 모두 시청하면서 영화의 재미를 알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에 더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하기에 영화 감독의 꿈은 더욱 굳건해져 갔다. 첫 장편 데뷔작은 무려 10년이 걸렸지만, 첫 삽을 뜬 김희진 감독은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뺏고 싶은' 바람이 크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감독님들을 닮고 싶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님의 영화 '디센던트'가 지금 막 떠오른다. 비극적인 이야기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야하는 상황에서 남자가 겪게 되는 일이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웃음 포인트를 발견해낸다는 점이 좋아서 그 영화 생각이 난다. 거칠게 얘기하면 마음을 다 뺏기는 순간이 있었으면 한다. 시청자와 작품간의 거리가 확 좁혀지는 경험, 그걸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저는 기완이가 어머니의 피를 닦으면서 울때, 그래주셨으면 하는 것에 기대 이상으로 보여주셔서 제가 마음이 뺐겼었다."

이어 감독은 "'로기완'은 따뜻한 나라에서 마리랑 안으면서 끝난다는 점이 스스로 좋았다. 기완은 계속 떠돌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염증을 느끼면서 지리지리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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