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영화 ‘양치기’는 거짓말로 무너져가는 어른의 삶과, 거짓말로 되살아나는 아이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심리 스릴러. 손경원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고 손수현, 오한결이 주연으로 분했다.
지난 3일 스포츠W는 서울 마포구 소재의 마노엔터테인먼트에서 ‘양치기’의 주연 배우 손수현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손수현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손수현은 다양한 독립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로, 이번 작품에서는 제자의 거짓말로 완벽했던 삶이 무너져가는 담임교사 ‘수현’으로 분해 연기를 펼친다. 손수현은 “출연 제안을 주셔서 시나리오를 읽게 됐는데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읽어내려갔다.”며 출연 계기를 밝혔다.
“요한의 입장과 수현의 입장을 동등하게 다루고 서로의 입장이 다 보여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보호해야 될 대상을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장르에 매몰돼서 중요한 핵심을 놓치게 된다면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동조하게 되는 셈이라고 생각하는데 ‘양치기’는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다.”
손수현이 맡은 배역은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이 같다. 이에 대해 모두 우연이라 밝힌 그는 “처음 미팅한 날 배역과 이름이 같다고 말했을 때 감독님은 제가 손수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음에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계셨다.”며 회상했고, 이어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본명을 극중 이름으로 써서 배역과 이름이 일치하는 경험이 처음은 아니라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손경원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놔주셨다”고 설명했다. 손수현은 “감정이 점진적으로 쌓여야하기 때문에 감정의 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감정 표현의 강도에 대해 디테일하게 잡아주셔서 제가 폭주하게 놔두기도 하고, 때로는 조절할 수 있도록 잡아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치기’는 유독 정면 클로즈업 샷을 다수 삽입해 격한 감정에 휩싸인 배우의 표정을 낱낱이 볼 수 있게 만들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손수현은 “감독님이 요한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으셨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으신데, 같은 이유로 클로즈업을 많이 넣으신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 지에 대해 분위기로 유추하는 게 아니라 아예 정답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셨지 않았나 싶다. 감독님이 정답을 내리지 않은 부분은 마지막 장면뿐이다. 마지막 장면에 비춰지는 그 표정이 어떤 감정일지에 대해서는 관객들에게 맡긴 것 같다.”
▲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손수현과 주로 합을 맞춘 오한결은 [사랑의 불시착], [라이프 온 마스] 등 다수의 TV드라마에 출연해 온 배우다. 최근에는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손수현은 오한결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주목했다.
“평상시 얘기할 때는 또래 같지만 일을 할 때는 진지하다. 성인 배우 못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다가 슛이 끝나면 갑자기 어린이가 되는 간극을 계속 느끼면서 새삼스럽게 어린이가 맞다는 걸 느낀다.”
수현과 요한의 사제 지간이 대두되는 작품인 만큼 ‘양치기’는 많은 아역 배우와 함께했다. 주 무대인 학교 이외에도 수현과 수현의 예비 남편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보육원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촬영을 진행했다.
“보육원 씬을 찍을 때는 함께 촬영하는 배우들이 더 어려서 연기를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저와 조경창 배우가 실제 부부인 줄 알았고, 그래서 조경창 배우랑 싸우는 씬을 찍고 나면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서 저를 안아주거나 쪽지를 주면서 힘내라고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가 조금만 싸워도 되게 무섭지 않나. 극 중 화를 내고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씬이 많아서 연기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극중 수현은 행복한 일상에서부터 바닥까지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다. 손수현은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서 돌아버리는 감정들을 연기하기 때문에 처참하고 처량하다.”며 “제가 어떻게 화면에 비춰지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고, 관객들에게 수현의 감정이 선명히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당시에는 특히 살이 더 빠졌을 때였는데 우연이지만 캐릭터랑 잘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웃음).”고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수현에게 찾아오는 모든 재앙은 거짓말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짓말쟁이의 대명사로 쓰이는 ‘양치기 소년’을 연상케 하는 제목처럼, 거짓말이라는 요소는 주요 인물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손수현은 “거짓말이라는 건 표면적으로는 나빠 보이지만, 자신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도 있는 단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영화가 거짓말을 비추는 방식에 대해 말했다.
▲ 오한결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양치기’ 속 인물들이 한 거짓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수현이 예비 남편에게 이혼한 부모님을 두고 사별하셨다고 거짓말 한 것도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선택인 거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왜 거짓말했냐고 추궁하는 장면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화가 나는 장면이다. 요한이 한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비록 요한의 거짓말로 인해 수현의 삶을 망가지고 꼬이기 시작하지만, 요한의 입장에서는 그 거짓말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 같다.”
손수현은 거짓말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 상황의 이면을 봐야한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거짓말을 했다는 행위만 보게될 뿐, 그 거짓말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키비의 ‘양치기 소년’이라는 노래에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인 건 덮을 수 없는 너의 실수지만, 네가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그런 일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뉘앙스의 가사가 있다. ‘양치기’ 속 거짓말도 이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요한이 아니었어도 요한과 같은 환경에 처한 아이들은 너무 많고, 이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현이 아니었어도 수현과 같은 일을 겪는 다른 이가 나타날 수 있다.”
개봉에 앞서 ‘양치기’를 여러번 감상한 손수현은 배우로서 촬영할 당시와 관객으로서 영화를 감상했을 때 수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촬영할 당시에는 수현이라는 인물이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물이라고 여겼다.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 사회성을 발휘하면서 흠잡히지 않기 위해 신경쓰면서 살아가는 와중에 피치 못하게 이런 일에 휘말려서 억울하다는 감정이 컸다. 하지만 여러번 영화를 감상하면서 관객의 입장이 된 채로 보니 요한이가 수현의 집에 찾아왔을 때 그런식으로 쫓아내듯 돌려 보내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았고, 수현이 보편적인 인물이라 한다면 세상은 아이들 같은 취약 계층에게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이라는 인물이 보편적인 인물 상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그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최근 교사가 학부모는 물론, 학생에게까지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호소하는 사건이 잦아지며 교권 침해에 대한 관심과 잔인해진 아이들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띄게 수면위로 올라왔다. 같은 의미에서 요한의 거짓말 한 마디로 아동 폭행 논란에 휩싸인 초등 교사 수현은 피해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교권과 아동 권리의 상충이라는 논제에 대해 손수현은 “당연히 한 사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권리가 묵살되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교육을 받는 거고, 법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에는 세상이 너무 단순하고 쉽게 모든 것을 풀어내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는 걸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아예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을 보장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잔인해진 건 아니다. 두 주제를 같은 선상에 두고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이의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손수현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간단한 문제를 해치우고 마는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켜보며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답했다.
“사회는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있고 그런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때문에 하나의 문제만 걷어낸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정에서부터 학교에서까지 적절한 교육과 타인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길러져야 하고, 가장 눈에 띄는 문제 하나를 제거하고 말기보다는 꾸준히 고민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혹독한 촬영을 소화했기에 분위기를 전환할 만한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는 리프레쉬의 수단으로 음악을 꼽았다. 손수현은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캐릭터가 들을 법한 노래나 상황에 어울릴 법한 노래를 찾아서 듣는데 수현의 경우 어둡고 차분한 노래였다면,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정 반대 장르인 힙합을 들었다.”며 자신만의 선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수현이라는 인물을 그릴 때는 김제형의 ‘농담에게’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음원 사이트에서 2021년 연말 정산을 해줄 때 그 노래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로 나올 정도였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현장이 생각난다. 정 반대되는 음악으로는 [쇼미더머니10]의 ‘쉬어’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마침 ‘양치기’를 촬영할 때 [쇼미더머니10]가 방송하고 있었다(웃음).”
▲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고등학교에서부터 국악을 전공한 손수현은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양치기’는 부산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을 했는데 2~3일 정도 쉬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 부산에서 당근마켓으로 기타를 사서 숙소에서 혼자 노래 부르고 놀면서 적적함을 달래기도 했다.”며 촬영 중 에피소드를 말했다.
특히, 손수현이 연출한 단편 영화 ‘프리랜서’는 그의 자작곡이 계기가 된 영화다. ‘프리랜서’와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을 통해 감독, 각본, 연기를 동시에 소화하기도 한 그는 감독과 배우로서 참여할 때의 차이를 설명했다.
“배우는 감독님이 의도한 것 중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독님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연출은 제가 모든 것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보니 더 저의 생각이 들어가게 된다. 캐릭터 뒤에 있을 수 있는 배우와는 달리 제가 본 모든 것들이 대사 하나, 컷 하나에 담길 수 밖에 없으니까 연출은 제 자신이 매우 드러나는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큰 것 같다.”
어느덧 연기자로 활동한지 11년이 된 손수현은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로 첫 단편 독립영화인 ‘마더 인 로’를 꼽았다. ‘마더 인 로’는 동성혼이 법제화 되었을 때, 동성이 결혼했을 때 배우자의 부모님을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이성애 중심의 언어체계를 고찰한다.
“연극영화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연기를 공부하지도 않았어서 연기에 대해 잘 몰랐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쩌다 드라마나 상업 영화를 먼저 찍었는데 우연히 ‘마더 인 로’라는 단편 독립 영화를 찍게 됐다. 그 순간이 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촬영할 때가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워가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작품을 통해 세상의 이면을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이후로 단편 영화가 가진 매력을 느껴서 단편을 많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는 좀 다른,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정말 좋아하게 된 작품이라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손수현의 필모그래피처럼, 그는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인 그는 소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나 페미니스트구나’ 했던 건 아니다(웃음). 스물스물 시작됐던 것 같다.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도 학교에서 페미니즘적인 레포트를 쓴다던가, 수업을 들었던 것이 남아있다가 퍼즐이 맞춰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의 말이나 해시태그 운동 등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됐다.”
▲ 손수현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
터닝 포인트를 첫 독립영화로 꼽은 만큼, 손수현은 여전히 상업영화에 대한 갈증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열정이 훨씬 크다. 그는 “독립영화만이 갖고 있는 매력도 있고, 독립 영화만이 전달하는 이야기에 아직은 좀 더 흥미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독립영화를 하지 못하면 힘들고 슬플 것 같다.”며 독립영화에 대해 애정을 표했다.
오히려 손수현은 상업영화보다는 무대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연극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기도 하지만 연극 배우들의 에너지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연극은 너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연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손수현은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미래를 철저히 계획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웃음).”라며, “마치 로또가 당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를 꿈꾸게되면 불행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앞날을 계획적으로 설정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그저 현재의 맑은 정신을 유지한 채로 제가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것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손수현은 추후 ‘양치기’를 감상할 예비 관객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수현은 이미 할 만큼 다 했는데 요한의 거짓말로 인해 재수없게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절대 안 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을 거쳐왔는데도 그 시절을 잘 잊는 것 같고, 그래서 ‘양치기’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현의 입장에 이입을 하게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영화를 보실 때 수현이 어떠한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요한이 한 거짓말의 이면의 상황에 더 집중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또,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들을 목격했을 때 그저 피해 가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개입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잘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한편 ‘양치기’는 오는 12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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