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엠.버터플라이’ 금단의 러브스토리로 포장된 신랄한 풍자극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6 1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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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1964년 중국 베이징,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의 자결 장면을 연기하는 중국 배우 ‘송 릴링’의 우아한 자태에 매료된다. 

 

르네가 송에게 낯설고 신비한 매력을 느끼며 호기심을 갖고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송은 충격적인 비밀을 고백하며 르네에게 마음을 전하고, 르네는 송과의 만남이 지속될 수록 미처 몰랐던 남성성과 우월감을 드러내며 자신이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애인에게 빠져든다.

 

▲ 사진=연극열전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의 대표작으로 1986년 중국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남자 쉬 페이푸가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오페라 ‘나비 부인(마담 버터플라이)’을 차용해 서양이 동양과 동양 여성에 대해 가진 편견을 비판하고, 인간의 욕망을 고찰한다.

 

※ 스포일러 주의


‘엠.버터플라이’는 르네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 내용을 연극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극히 르네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만들어진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이어지던 도중 갑작스레 송이 르네와 관객 사이에 난입해 새로운 각도의 시선을 제공하고, 이후 급격히 다른 분위기로 틀어진 이야기가 몰입도있게 결말까지 끌고나간다.

작품과 긴밀한 관계성을 가진 오페라 ‘나비 부인’은 19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나가사키 주재 미군 해군 중위 핑커톤과 그와 사랑에 빠진 게이샤 초초상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 사진=연극열전

 

작곡가 푸치니의 명작으로 일컬어지지만, 재혼 기회까지 내버리며 자신을 임신시키고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묵묵히 기다리다 자국 여성과 새로 결혼한 남편을 마주한 후 수치스러운 삶을 사는 대신 명예로운 자결을 선택한 동양 여성을 이상적이며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비 부인’은 ‘엠.버터플라이’의 제목에서부터 재해석된다. 제목의 ‘M’은 프랑스어로 여성을 뜻하는 호칭과(마담) 남성을 뜻하는 호칭(무슈) 모두를 뜻할 수 있는 이니셜이다. 나비가 되어버린 ‘무슈’ 르네 갈리마르의 결말, 납작한 환상을 연기했기에 남자라는 성별을 가졌음에도 ‘버터플라이’가 될 수 있었던 송 릴링 등 다양한 해석을 동반하는 제목은 막이 내린 후에도 계속해서 작품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작품은 러브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듯하지만, 그 한켠에는 날카로운 풍자가 존재한다. ‘나비부인’ 속 핑거톤과 초초상을 연상시키는 르네와 송을 비롯해 다양한 주변 인물의 언행으로 서양이 동양을 보는 편협한 사고방식과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한다.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인 재판 장면에서도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나는데, 적나라한 모욕이 쏟아지는 재판 과정에서 판사에게 토해내는 송의 열변 속 대사는 작품의 부차적인 설명을 대신하고,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사진=연극열전

무거운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그럼에도 ‘엠.버터플라이’에는 사랑이 느껴진다. 르네의 환상을 이용해 궁극적인 목표를 이뤘음에도 환상에서 깨어나 진짜 나를 보라며 절규하는 송의 모습은 애처롭고 필사적이다. 여기에 모든 것이 낱낱이 해부된 후에도 환상 속에 살기로 결정한 르네가 선택한 결말이 더해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여러모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중 송 릴링은 오페라와 경극을 선보이는 장면이 포함되어있어 송 릴링 역을 연기한 배우는 카스트라토의 높은 목소리를 육성으로 내고, 봉을 다루는 안무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은 물론, 여성의 말투와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복잡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인물의 감정선을 연기해냈다.

한편,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배수빈, 이동하, 이재균이 ‘르네 갈리마르’ 역을 맡고 김바다, 정재환, 최정우가 송 릴링 역을 맡는다. 공연은 오는 5월 12일 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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