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음악극 ‘섬’ 백은혜 “운명이 이끌어 준 작품…재연 참여할 수 있어 감사”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7-01 1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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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목소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태일’에 참여했다고 해서 두 번째 작품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운명이 저를 ‘섬’으로 이끌어줬었다. 스케줄과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재연에도 참여할 수 있게된 것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음악극 ‘섬: 1933~2019’은 1966년부터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실천한 실존 인물 마리안느 스퇴거와 故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과거 소록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센인들의 억압받던 삶을 비추고, 동시에 ‘장애도’라는 섬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 서울의 발달장애 아동 가족들의 이야기를 교차해 우리 삶 속의 편견과 차별을 짚는다.

 

▲ 음악극 ‘섬: 1933~2019’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지난 20일 스포츠W는 서울 중구 소재의 국립정동극장에서 ‘섬: 1933~2019’(이하 ‘섬’)에 ‘마리안느&고지선’역으로 출연 중인 백은혜 배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은혜는 2007년 뮤지컬 ‘밑바닥에서’로 데뷔해 뮤지컬 ‘아가사’, ‘렛미플라이’, 드라마 [며느라기] 등 연극, 뮤지컬,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 중인 배우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초연을 올린 ‘섬’에서도 마리안느와 고지선으로 분했던 백은혜는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영광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섬’은 초연 때도 극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목소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태일’에 참여했다고 해서 두 번째 작품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운명이 저를 ‘섬’으로 이끌어줬었다. 스케줄과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재연에도 참여할 수 있게된 것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번 재연에 참여하지 못했으면 너무 하고 싶어서 제 스스로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섬’의 초연은 한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원캐스트로 진행한 바 있다. 작품이 정동극장이라는 새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걸린 5년이라는 시간은 백은혜에게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5년 전 ‘섬’에 참여하면서 모두가 느낀게 많았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다짐했던 것들이 있었다. 5년이 지난 후에는 그 후로 난 뭘 했지? 내가 그 때 그런 마음을 먹었었는데, 마음 먹었던 대로 잘 살았나하고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사람적으로는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바뀐 부분도 있고, 느긋해지고 푸근해졌다. 사랑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5년 전에 ‘섬’을 봤던 주변 분들이 예전에는 젊은 배우가 갖고 있던 날카로움이 있었고, 어리고 힘 좋은 백은혜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 나온다고 얘기해 주셨다.”
 

▲ 음악극 ‘섬: 1933~2019’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백은혜는 목소리 프로젝트(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의 두 번째 작품인 ‘섬’ 이전에 첫 번째 작품 ‘태일’부터 함께해왔다. '섬’ 초연 이후에도 ‘태일’의 재연부터 사연까지 빠짐없이 참여했고, 세 번째 작품인 ‘태영’에도 타이틀롤을 맡았다.

목소리 프로젝트와 백은혜의 합작이 계속되자 목소리 프로젝트의 페르소나, 인간 목소리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뒤따르기도 했다.

“정말 많이 듣는데, 겸손한 척 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이 기회가 좋았다. 사실 쑥스럽기도 하고, 창작진 분들도 막 치켜세우시는 분들이 아니라서 이 주제에 대해 얘기를 많이 안 했다.(웃음) 저는 운명을 믿기 때문에 목소리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된 운명에 감사한다. 이렇게 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은혜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요소에 대한 질문에 ‘호소력’을 꼽았다. 또 목소리 프로젝트와 함께하면서 연기자로서 매우 성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아직도 모자라지만 무대에 오르는 자세도 달라졌다. 실제 그 일을 하셨던 분들을 담다보니까 낮은 자세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려고 할 수 밖에 없다. ‘태일’을 했었던 남자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굉장한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거기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득 담아서 공연을 하면서 배워지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변하는 모습들을 함께 보면서 좋은 것들을 나누다보니 계속 이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음악극 ‘섬: 1933~2019’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섬’의 첫 무대를 올릴 때를 회상했을 때, 당시 백은혜는 배우로서 굉장히 큰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저희 배우들이 리딩하다가 울고 있는 사진이 팬분들 사이에서 유명한데 초연 때는 그럴 겨를도 없었다. 완성된 그림이 머리에 전혀 없기 때문에 매일매일 그걸 만들어내느라 바빠서 감상하면서 감탄할 만한 여유를 못 누렸다. 첫 대본을 받았을 때도 많이 어려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큰 줄기를 이해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섬’을 비롯한 목소리 프로젝트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백은혜는 “‘태일’을 했을 때는 노동법이라는 생소한 정보를 얻었는데 ‘섬’을 하면서 또 다른 정보가 들어왔고, 그 정보를 입력하면서 너무 놀라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발달장애 아동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보통 사람 되기’의 가사나 소록도의 실상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첫 공연을 올리는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은 세 가지 큰 틀의 연결성을 잘 전달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또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오스트리아로 떠나며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데, 이후 결말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 현대의 서울에 돌입하는 구조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극을 보더라도 예상한 결말 지점에서 끝이 나지 않으면 러닝 타임을 잘못 알았을 때나, 인터미션의 유무를 착각했을 때처럼 지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이 작품도 그렇게 느껴질까봐 걱정됐다. 노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다시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를 쳐줬는데 곧바로 형광등 아래에서 토론회가 시작된다. 그 장면을 맞이하는 관객의 마음이 어떨지, 이후에 보여질 불편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토론회 장면을 가장 크게 고민했고, 공연 막판까지도 계속 수정을 했다. 지하철 장면에서의 지선의 대사도 공연에 임박할 때까지 연출, 작가님과 같이 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 음악극 ‘섬: 1933~2019’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섬’은 1933년과 1966년의 소록도, 2019년의 서울. 총 세 가지 시간선을 오가는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 구성에 대해 백은혜는 “제일 연출님이랑 많이 이야기했었던 부분이고, 사실 극의 스토리를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기능적인 걸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고지선 모두 각각 시간대를 점프하면서 보여지는 순간들이 모두 그 순간순간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지선은 처음에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두 돌이 되기 전 아기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시기, 6살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다니던 시기, 마지막 10살 아이와 함께하는 지하철 장면까지. 모든 순간을 거치면서 고지선이 계속 변화하는 부분이 짧은 시간이지만 바로바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시간 선을 하나로 묶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모계 서사다. 이러한 모계 서사를 차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다같이 대본을 놓고 테이블 작업을 할 때 작가님이 먼저 이야기해 주셨던 부분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모계로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우리 각자의 시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정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 건 아니고 혈연을 통해 연결된 이야기를 하면서 넓게는 우리 사회, 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한 모계 서사를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선이가 엄마 성을 따르는 걸 선택함으로서 연결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했고, 연결되기보다는 연결을 한다는 것에 힘이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 음악극 ‘섬: 1933~2019’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1966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역을 맡은 배우는 각각 2019년의 고지선과 1933년의 백수선을 동시에 연기하며 시간선을 점프하는 것은 물론, 인물까지 교차해야하는 고난도의 과제가 주어진다.


“이 부분에 대해 연출님이 두 사람의 시간은 계속 가고 있는데 앞 뒷면을 번갈아서 보여주는 거라고 표현을 하셨다. 그러면서 마리안느와 고지선의 걸음은 절대 멈춰있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처음 공연을 올리는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이 공연을 수행하는 연기자로서는 흐름이 멈추면 안된다. 이 인물이 직전 장면에서 현재의 장면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연기로 보여줘야했다.”

이미 초연을 겪어본 현재와는 달리, 토대부터 시작해야 했던 5년 전은 더욱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백은혜는 “무대 위에서는 시간도 계속 흐르고 있고 역할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두루뭉술하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배우로서는 좋은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예민하게 작업을 했었다”고 떠올렸다.

이번 시즌과 달리 초연 때는 원캐스트로 ‘섬’에 올라야 했던 백은혜는 신체가 고단하기보다는 매일 공연을 하면서 모든 회차에서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층 편안하고 단단하게 변화한 마음을 내비쳤다.

“지금은 중심이 잡혀있고, 틀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무대에 따라 같은 장면에서 다른 공기가 흐르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 같다. 그 때는 저의 힘과 노력, 집중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했었는데, 좋은 글과 극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끼고 작품을 믿고 가게 된 것이 제일 좋은 변화인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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