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보 없는 경기 펼치는 임애지 (파리=연합뉴스) |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임애지(25·화순군청)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임애지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에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에게 2-3으로 판정패했다.
김호상 복싱 대표팀 감독이 "1라운드는 우리가 이겼다고 봤는데 판정이 좀 아쉽다"고 말할 정도로 임애지는 잘 싸웠다.
'왼손잡이 아웃복서'인 임애지는 원래 같은 유형의 선수에게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은 신장 172㎝로 자신보다 7㎝나 큰 아크바시를 상대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다.
경기 후 임애지는 "전략은 상대 선수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들어오더라"면서 "내가 상대를 분석한 만큼, 상대도 나를 분석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판정에서 밀린 것에 대해서는 "판정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는 "원래는 적극적으로 안 하는 게 전략이었는데, 1라운드 판정이 밀려서 적극적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어 "100점 만점에 60점짜리 경기다.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아쉽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다음에는 그 선수가 '애지랑 만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애지는 아크바시와 과거 스파링으로 붙어 본 사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임애지는 "그 선수와 스파링할 때마다 울었다. 맞아서 멍도 들고, 상처도 났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께 '쟤랑 하기 싫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래도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내가 경기에서 이긴다'고 자신했다. 비록 졌지만, 다시 붙어보고 싶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임애지는 2012 런던 올림픽 한순철(남자 60㎏급 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메달을 선사했다. 여자 복싱 올림픽 메달은 최초다.
값진 메달만큼 임애지를 기쁘게 한 것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노스 파리 아레나의 분위기다.
노스 파리 아레나를 채운 팬들은 자국 선수가 나오지 않더라도 환호를 아낌없이 보냈다.
임애지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재미있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이겨서 짜릿했다. 오늘처럼 관중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짜릿했고,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응원받을 수 있나 싶더라"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없다. 실전에서 더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한국 가면 혼자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임애지에게 파리 올림픽은 "제 가능성을 본 무대"다.
임애지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대해 "훈련하다 보면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올림픽만 무대가 아니다. 작은 대회부터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외에도 많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임애지의 바람 가운데 하나는 전국체전에 체급이 신설되는 것이다.
현재 전국체전에서 여자 복싱은 51㎏급과 60㎏급, 75㎏급까지 셋뿐이다.
임애지는 60㎏로 체중을 늘려서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터라 매번 오연지(33·울산광역시체육회)에게 밀린다.
임애지는 "중간 체급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아직도 안 생겼다. 체급이 안 맞을 때는 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정말 힘들다. 어서 내 체급이 생겨서 그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