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사진: 연합뉴스) |
"감독님, 저 오늘은 울지 않았습니다."
김수현(27·부산시체육회)은 역도 여자 일반부 76㎏급에서 용상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6년 만에 전국체전 3관왕에 오른 날, 고(故) 김경식 전 인천시청 감독을 떠올렸다.
밝은 성격이지만, 눈물도 많은 김수현에게 김경식 전 감독은 "수현이에게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수현은 1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 일반부 76㎏급 경기가 끝난 뒤, 밝게 웃었다.
그는 "감독님께서도 하늘에서 방긋 웃으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김수현은 용상 3차 시기에서 143㎏을 들어 자신이 2021년 실업회장배에서 작성한 142㎏을 1㎏ 넘어선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인상에서도 109㎏을 든 김수현은 인상, 용상, 합계(252㎏) 등 3개 부문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수현이 전국체전에서 3관왕에 오른 건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경기 뒤 김수현은 어머니 이상지 씨 등 가족, 함께 경쟁한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마음껏 웃었다.
2019년 10월 눈을 감은 김경식 당시 인천시청 감독의 조언을 떠올리며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김수현의 당시 소속팀이 인천시청이었다.
김수현은 "김경식 감독님께서 늘 내게 '경기 결과가 아쉬워도 울지 말라. 후회를 남기지 말고 다음을 준비하자'고 하셨다. 이번 전국체전에서는 전혀 울지 않았다"고 경쾌하게 말했다.
사실 김경식 전 감독이 눈을 감은 뒤 처음 치른 올림픽(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김수현은 펑펑 울었다.
당시 김수현은 인상 106㎏을 들었지만, 용상 1차 시기 138㎏과 2·3차 시기 140㎏을 모두 실패했다.
용상 2차 시기에서 바벨을 머리 위로 들었지만, 심판 3명 중 2명이 실패를 의미하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팔이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메달을 딴 아레미 푸엔테스(멕시코)의 합계 기록은 245㎏이었다.
김수현이 용상에서 140㎏을 들었다면, 합계 246㎏으로 동메달을 딸 수 있었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김수현은 "하늘에 계신 김경식 감독님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을 쏟았다.
김수현은 "이번 전국체전을 준비하며 김경식 감독님을 자주 떠올렸다. 감독님과 만난 첫날 받은 노란 수건도 아직 가지고 있다"며 "노란 수건을 보며 '울지 말라'는 감독님의 당부도 떠올린다"고 했다.
김수현에게 최근 또 다른 힘을 주는 건 노래다.
지난 5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국가대표 가왕선발전'에서 김수현은 2위를 했다.
최근에는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김수현은 "훈련하다 힘들면 노래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방송까지 출연했다. 떨리지 않았다"고 웃었다.
경기장 밖에서 찾은 즐거움은 훈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김수현은 "훈련도 즐겁게 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내가 들 수 있는 최대한의 무게를 훈련 때 여러 번 들었다. 지금은 훈련 때는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90%의 무게'로 들고, 실전에서 남은 힘을 터뜨리고 있다"며 "이번 대회에서 용상 143㎏을 들었지만, 훈련할 때는 135㎏까지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훈련 때 성공에 익숙해지면 실전에서도 자신 있게 바벨을 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20대 초반에는 한계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지금 내 나이에는 '훈련 90%, 실전 100%'의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실제 효과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즐기는 법, 조절하는 법을 배운 김수현은 다가오는 주요 국제대회도 웃으며 대비하고 있다.
김수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위에 그쳤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미세한 차이'로 실격당했다.
거듭된 종합대회의 불운을 김수현은 웃으며 극복할 생각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을 노린다.
김수현은 "예전에는 큰 대회를 앞두고 내 안에서 쿵쾅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한결 침착해졌다"며 "이젠 정말 아시안게임, 올림픽도 즐길 수 있다. 당연히 목표는 메달 획득"이라고 했다.
김경식 전 감독의 유품과도 같은 노란 수건도 김수현에게 "더 즐겁게"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김수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파리 올림픽에서는 웃으면서 인터뷰하겠다. 오늘처럼 감독님께 '저 오늘도 웃었어요'라고 말씀드리겠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