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미국의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구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의혹을 받아 보안인가 갱신을 거부당하게 된다. 본인의 사상과 애국심을 재단하는 청문회 자리에서 그는 그간 걸어온 자신의 발자국을 되돌아본다.
‘오펜하이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다룬 영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다.
▲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을 선보여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첫번째 전기영화의 주인공으로 ‘원자폭탄의 아버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선택했다. 그간 SF, 전쟁, 슈퍼히어로 같은 장르 영화로 대중에게 알려진 만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영화로 그린 그의 행보는 다소 이례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다양한 지점에서 오펜하이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 관객을 그의 감정적 여정 속으로 안내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이 영화의 도전이었다”며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한 이유를 밝혔다.
영화의 타이틀롤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킬리언 머피가 맡아 연기한다.
그는 전기 영화라는 주제에 투철하게 실제 인물을 철저하게 분석해 외형적으로 놀라울 정도의 일치율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수많은 고뇌와 혼란을 겪는 인물의 격동하는 감정을 세밀하게 연기한다.
▲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
킬리언 머피 이외에도 극 중 오펜하이머와 대척점에 서있는 루이스 스트로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지만 궁극적인 성질은 다를 수 밖에 없는 레슬리 그로브스 역의 맷 데이먼 등 오펜하이머와 부딪히는 여러 인물을 연기한 쟁쟁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역시 이목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보안인가 갱신을 위한 청문회 현장과 오펜하이머가 회상하는 그의 대학 시절부터 현대까지의 일대기, 그리고 스트로스의 청문회 현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와 현재, 본인의 회상과 타인의 기억 등 여러 방향에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는 스트로스의 객관적인 흑백의 시선과 오펜하이머의 주관적인 컬러의 기억으로 그의 입체적인 인간상을 대두시킨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가장 큰 업적이 원자폭탄을 발명한 것이긴 하지만, 영화에서는 물리학자로서의 오펜하이머만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이 그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인 만큼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하고 교수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등 정치적인 행보를 걷거나, 두 여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바람을 피는 등 그의 다양한 면모를 가감없이 담아 단순히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아닌, 인간 오펜하이머를 그린다는 인상을 준다.
▲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
때문에 극 중 그가 물리학자로서 달성한 성과와 과정에 대해 그리는 분량이 적지 않지만, 영화를 통해 그의 성과를 찬양하고 치켜세우기 보다는 그가 갇힌 도덕적 굴레에 대해 탐구하고, 인간이 가진 모순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제를 던져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러닝타임 180분을 몰입도 있게 끌고가는 힘 역시 영화의 장점이라 볼 수 있다.
스토리 이외 영화적 요소도 주목할 만하다. 웅장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거대한 우주가 주는 압도감과 동시에 오펜하이머가 겪는 정신적 압박감을 표현한다.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폭발씬도 짧게 등장하는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한 순간의 폭발을 여러 컷으로 나눠 세세하게 카메라에 담은 장면은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며, 그가 창조해낸 폭탄의 두려운 위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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