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대사는 어렵고 복잡하지 않지만 노래의 가사가 워낙 시적이다보니 제가 완벽히 이해하고 부르고 있다고 말하면 사실 거짓말이다. 2~30퍼센트 정도 완성된 것 같다. 계속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뮤지컬 ‘파과’는 노화로 표상되는 빛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찰나의 시선을 담은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제작사 PAGE1의 4년 만의 초연 신작이다.
▲ 구원영 [사진=PAGE1] |
지난 4일 스포츠W는 서울 종로구 소재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뮤지컬 ‘파과’에 출연 중인 구원영 배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2000년 뮤지컬 ‘모스키토’로 데뷔한 구원영은 ‘지하철 1호선’, ‘그리스’, ‘광화문 연가’ 등의 굵직한 작품에 출연해 온 중견 배우다.
4년이라는 긴 공백을 가졌던 그는 이번 ‘파과’를 통해 복귀했다. 구원영은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열심히 육아했다. 아이는 지금 32개월이다. 임신, 출산하고 두 돌까지 키우느라 작품을 못했다. 24시간을 함께 보내느라 다른 작품을 감상할 시간도 없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뮤지컬 ‘파과’는 40년 간 살인청부업에 몸 담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을 주인공으로 한다. 작품을 맡은 이지나 연출은 ‘조각’과 가장 어울리는 여자 배우에 구원영을 떠올렸다.
"60대 살인청부업자와 어울리는 배우가 쉽게 생각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맞는 배우가 쉽게 생각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애 키우는 구원영을 떠올려주시고 연락을 주셨다. 어린이집 보냈을 시기인데 일 할 수 있겠냐고(웃음)”
이지나 연출과 구원영의 인연은 2003년 뮤지컬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이지나 연출과 횟수로는 6~7번이나 호흡을 맞춘 구원영은 배우로서 이지나 연출에 대해 깊은 신뢰와 감사를 표했다.
“이지나 선생님은 늘 한결 같으시고, 믿음이 있다. 워낙 유명한 한국의 연출가시다보니까 오해도 많은 것 같다. 연습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말, 독설도 많이 하시지만 어떤 연출가보다도 배우를 위하시고, 배우 한명 한명을 다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신다. 특히, 저 같이 숨어 있는 배우들. 무대가 좋고 연기가 좋아서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존중해 주신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제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시는게 이지나 선생님이시다.”
▲ 구원영 [사진=PAGE1] |
끈끈한 신뢰로 맺어진 동료로부터 받은 제안을 계기로 결정한 작품이었지만 4년 만의 복귀를 난생 처음 무대에 올리는 창작 초연 작품으로 시작했기에 복합적인 마음이 동반했다.
“다들 아이를 낳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하는데, 저도 뮤지컬을 20년 정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됐다. 예전에는 나쁘게 말하자면 야망, 작품을 잘 해내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컸다면 이번에는 내가 내 몫을 다 해내지 못할까봐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주인공도 작품에 따라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데 조각은 워낙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라 부담이 컸다.”
낯선 이야기, 낯선 음악도 창작 작품의 어려운 요소로 꼽히지만 가장 큰 고행은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 제작 과정에 있었다. 무대에 올려진 후에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 창작 작품은 언제나 라이센스 작품보다 난이도가 높다. 구원영은 창작 작품에 참여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순발력’을 꼽았다.
“창작 작품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힘들다. 라이센스 작품은 대본과 노래가 모두 나와있는 상태에서 배우가 캐릭터로 구현해 나가면 되니까 비교적 난이도가 낮지만, 창작 작품은 공연하면서도 대사가 바뀌고, 음악이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덕목들이 필요한데 순발력이 가장 중요하다. 캐릭터를 온전히 파고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인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순발력이 빨라야한다.”
하지만 구원영은 ‘파과’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이번 작품은 소설이라는 탄탄한 원작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창작 작품보다는 쉬운 부분이 많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배우는 텍스트를 통해 캐릭터를 이해한다. 대본 속 지문, 노래 속 가사와 멜로디라인으로 캐릭터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창작 작품은 이런 요소가 연습 과정 중에 계속 바뀐다. 대사 한 마디, 가사 속 단어 하나로도 캐릭터의 성격과 생각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이해해 나가기 더욱 어려워지는거다. 그런데 ‘파과’는 소설이라는 크게 의지할 구석이 있어서 나름 수월했다.”
▲ 사진=PAGE1 |
‘파과’는 뮤지컬화가 되며 소설 속 세계에 환상을 가미했다.
“장르의 특성상 뮤지컬은 어느 정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니까(웃음) 소설은 훨씬 현실적이다. 소설 속 조각은 지나가더라도 시선 한번 안줄 할머니의 모습이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저급한 표현도 쓴다. 그런데 뮤지컬 속 조각은 머리나 옷도 조금은 멋드러지게 표현했고, 품위도 있어보인다. 그런 게 조금 다른 것 같다.”
반면, 소설과 뮤지컬 모두 각자의 방식을 통해 조각의 내면을 충분히 보여준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갖기도 했다.
“뮤지컬은 노래와 나레이션으로, 소설은 독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이 다 전달된다. 충분히 조각의 생각과 상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이 같다고 느껴졌다. ‘파과’가 영화화도 될 것이라는 걸로 알고있다. 만약 영화에서 조각을 만난다면 아마 말도 없고 가만히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에 또 전혀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극 중 송출되는 조각의 나레이션은 A4용지 두 장을 꽉 채울 정도의 분량이었다. 2시간 동안 나레이션을 녹음한 구원영은 “잘못 녹음하면 3개월 내내 두고두고 후회할 테고, 장면과 결이 안 맞으면 안 되니까 굉장히 신중했다.”고 밝혔다.
“씬의 구성이 계속 바뀌는 상황이었고 최대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했기 때문에 미룰 수 있는 시기까지 최대한 미뤄서 공연 2주 전에 녹음을 했다. 연출부가 나레이션마다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해가면서 꼼꼼하게 녹음을 했다. 바뀔 여지가 있었던 장면의 나레이션은 여러 버전을 녹음 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들어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게 많다.”
구원영은 ‘파과’의 음악이 가진 강점이 가사에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가사가 하나도 없다. 극 중 ‘조각’이 ‘강박사’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그에게서 느끼는 설렘을 강아지인 무용에 대한 마음으로 비유해서 노래한다. ‘파과’라는 넘버도 마찬가지다. 늙어가는 인간의 본원적인 순간을 맞닥뜨린 걸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썩은 복숭아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이런 은유적인 가사가 가슴을 저민다.
은유적인 가사는 작품의 특색이기도 했지만, 무대 위에서 직접 표현해야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과제로 남기도 했다.
“보편적인 뮤지컬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가사와 음악적인 표현이 많이 포함돼 있어서 연기하기 어려웠지만 배우로서는 공연하면서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대사는 어렵고 복잡하지 않지만 노래의 가사가 워낙 시적이다보니 제가 완벽히 이해하고 부르고 있다고 말하면 사실 거짓말이다. 2~30퍼센트 정도 완성된 것 같다. 계속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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