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파과’를 하면서 내 스스로를 굉장히 많이 알게 됐다. 좋은 연기, 자연스러운 연기를 향한 방향성은 변치 않았고 그 방향성에 더해서 나만이 독보적으로 해 나가야 될 부분을 알아나가는 것이 40대 배우 구원영의 과정인 것 같다.”
‘파과’는 개막 전에는 유명 소설이 무대화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고, 개막 후에는 액션을 접목한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구원영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이었다”며 혹독했던 무술 연습 과정을 회상했다.
▲ 구원영 [사진=PAGE1] |
“연습 첫날 이지나 선생님이 ‘이거 노래도 연기도 아니고 무술이 70이야’라고 얘기하셨다. 공연은 보편적으로 2개월 안에 연습을 마쳐야하는데 무술은 춤하고는 전혀 결이 달랐고, 물리적인 연습량이 정말 중요했다. 심지어 저는 몸을 잘 쓰는 배우가 아니었고, 출산과 육아로 제 인생에서 가장 체력이 바닥인 상태였다.”
특히, 구원영의 경우 무술 연습이 가장 많은 조각 역을 맡아 진땀을 뺐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술 연습과는 별개로 체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
“어린 조각 역도 무술이 많았지만 배우들이 어리고 몸을 잘 쓴다. 또, 조각은 극 중 40년간 킬러 생활을 한 사람이니까 민첩하고 완력이 세지는 못해도 세월로 만들어진 노련함이 보여야하니까 무술을 못하면 설득력이 없어진다. 그래서 더 연습을 많이 했다. 줄넘기도 하루에 천 개씩 하면서 체력을 길렀는데, 한 달 안에 기적처럼 체력이 올랐다. 사람의 잠재력은 정말 놀라운 것 같다. 정말 힘들었다.”
구원영과 같은 역을 맡아 활약하고 있는 차지연은 고행에 동반한 배우였다. 작품을 준비하며 서로 많이 의지했다고 전한 구원영은 “소설에서 이미 설명이 자세히 되어있었기 때문에 연기보다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받았다. 액션 열심히 하고 서로 ‘언니, 이거 드셔보세요. 이거 힘나요’ 같은 대화하면서(웃음)”라며 연습 중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역할인데 그 힘든 걸 저랑 지연이 둘 밖에 모른다. 처음 올리는 극이고 같이 하는 팀들도 각자 할 게 많다 보니까 얼마나 힘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힘든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지연이고, 지연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의지를 했다.”
함께 ‘조각’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차지연이 가진 강점에 대해서는 ‘몰입도’라고 답했다.
“지연이만큼 몰입도가 큰 배우가 없다. 연습 과정에서도 늘 100%를 넘기는 몰입을 한다. 어떠한 상황에 온전히 몰입을 한다는건 굉장히 진빠지는 일이고,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보통 배우들은 연습때는 어느정도 조절을 하다 런스루, 드레스 리허설부터 최대로 몰입하는데 지연이는 언제나 120%를 한다. 그런 부분은 차지연이라는 배우만이 갖는 특장점인 것 같고 높이 평가한다. 정말 훌륭한 배우다.”
▲ 구원영 [사진=PAGE1] |
댓글, 리뷰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밝힌 구원영은 연기에 대한 피드백은 오로지 연출부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구원영은 “아무리 똑부러지는 사람이라도 자기 객관화는 충분히 될 수 없기 때문에 혼자로는 좋은 캐릭터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연출부에게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아야 배우가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게는 생명줄과도 같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중견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는 걸 굉장히 꺼려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연출부도 있는데 그게 가장 두렵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 수록 걸러진 의견을 알려줄까봐. 저는 완벽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지 않으면 제 무덤을 파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부의 피드백과 디렉션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대화 된 ‘파과’는 어린 조각과 나이든 조각, 두 역할을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출을 보인다. 구원영은 어린 조각과 나이 든 조각의 관계에 대해 “어린 조각과 나이든 조각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킬러로 40년을 살아왔으니 어린 시절의 마음은 남아있지 않고, 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 한편으로는 ‘류’가 죽은 시점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성장이라는 걸 하지 않아서 20년 전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걸 수도 있다. 사람이 그 나이대에 맞는 삶을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바뀌는데 조각은 그 순간에 머물러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 나뉘는거다.”
▲ 사진=PAGE1 |
구원영이 ‘파과’에서 가장 큰 울림을 느낀 장면은 어린 조각의 솔로 넘버 ‘봄날의 햇살’이다. ‘봄날의 햇살’은 어린 조각이 첫 살인을 저지르고 류에게 동업을 제의받은 후 류와 같은 길을 가겠다 다짐하는 넘버다.
“조각을 감싸준 사람이 류가 아니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텐데 하필이면 처음으로 조각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받아준 사람이 살인을 하는 사람이라 조각의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작품 자체는 비극적인 서사보다는 조각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포커싱을 맞췄지만, 저는 조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니까 그 순간이 너무 불쌍하다. 연습할 때 ‘봄날의 햇살’ 넘버 때문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조각의 인생에서 분기점을 만들어주는 두 인물 ‘류’와 ‘강박사’는 뮤지컬에서 1인 2역으로 표현된다. 이에 대해 구원영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조각의 눈에는 류와 강박사가 내게 생명을 준 같은 사람인 거다. 류도 열다섯 나이에 갈 곳이 없을 때 나를 살려준 사람이고, 강박사도 자칫하면 밥줄이 끊길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살려준 사람이다. 그래서 조각으로서는 1인 2역인 게 너무나 의미가 있다. 무대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이다.”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데뷔 24년차를 맞은 구원영은 이번 ‘파과’는 단순히 복귀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더 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작품이라 말했다.
“20대 때는 당연히 그렇게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30대까지만 해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40대가 되며 한계도 많이 느꼈다. 좋은 쪽으로는 구원영이라는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구체화되는 것 같다. ‘파과’를 하면서 내 스스로를 굉장히 많이 알게 됐다. 좋은 연기, 자연스러운 연기를 향한 방향성은 변치 않았고 그 방향성에 더해서 나만이 독보적으로 해 나가야 될 부분을 알아나가는 것이 40대 배우 구원영의 과정인 것 같다.”
▲ 구원영 [사진=PAGE1] |
현재로서는 뮤지컬에서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연극 무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구원영은 “연극 되게 하고 싶다. 저 좀 써 주셨음 한다(웃음) 무대는 다 좋다. 연기하는 재미도 당연히 있지만 2개월 동안 형제 자매처럼 지내는 인간적인 작업 환경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구원영이 그리는 60대는 사랑이 가득하다. 구원영은 “삶은 고난이지만 고난 중에서도 원망만 쌓여가는 삶이 있는 것 같고, 깊어지고 성숙해지면서 사랑이 많아지는 삶이 있는 것 같다. 똑같은 고난길이어도 사랑이 많은 60대가 됐으면 좋겠다.”며 바램을 전했다.
끝으로 구원영은 뮤지컬 ‘파과’를 보게 될 예비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이지나 선생님이 ‘작품성을 떠나서 내가 만든 것 중 ‘파과’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고 말하신 적이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창작 작품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게 우리나라 뮤지컬 계에서 굉장히 소중하다.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미흡한 부분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여러 연령층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창작 작품이 하나 만들어진 것 같아서 기뻤다. 보러 오시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뮤지컬 ‘파과’는 구원영을 비롯해 차지연, 신성록, 김재욱, 노윤, 지현준, 최재웅, 박영수, 유주혜, 이재림, 김태한, 박희준 등이 출연하고, 오는 5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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