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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밀라 발리예바의 쇼트 프로그램 연기 전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 있는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사진: 타스=연합뉴스) |
[스포츠W 임재훈 기자] 카밀라 발리예바를 지도한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뒤흔든 금지약물 복용(도핑) 스캔들을 포함해 그 동안 러시아 출신 여자 피겨 선수들에 대해 제기됐던 도핑 의혹의 배후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그 동안 러시아 여자 피겨를 철옹성으로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김연아의 은퇴 이후 알리나 자기토바,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등 투트베리제 코치의 제자들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쓴 것은 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독식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의 지도방식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는 10대 초반의 여자 선수들의 2차 성징을 늦추기 위해 가루 음식 만을 먹게한다거나 매일 살인적인 스케쥴의 훈련을 소화하도록 선수들을 몰아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같은 선수는 19세의 나이에 식이 장애로 스케이트를 벗었고, 메드베데바나 자기토바는 전성기 이후 뒤늦게 찾아온 신체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을 거듭한 끝에 피겨 팬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마치 일회용 제품을 쓰고 버리는 행태와도 같이 선수들이 단기에 소모되고 버려지는 러시아 여자 피겨의 현상에 대해 투트베리제 코치의 지도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외에 그것을 뒷받침 하는 도핑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투트베리제는 3년 전 러시아 TV에 출연, 약물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는 피로 회복을 위해 선수들에게 복용시켰던 협심증 치료제 멜도니움이 금지 약물로 지정되자, "(멜도니움은) 심장 근육의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됐었다. 대신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여기서 투트베리제 언급한 멜도니움은 지금은 은퇴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도 복용했던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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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샤라포바(사진: EPA=연합뉴스) |
샤라포바는 지난 2016년 3월 금지약물인 멜도니움 양성 반응을 드러내 충격을 던졌다. 샤라포바 측은 멜도니움이 금지약물로 지정되기 전부터 꾸준히 사용해왔고,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던 당시에는 멜도니움이 금지 약물인지 몰랐다는 입장이었다. 국제테니스연맹(ITF)로부터 2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그는 이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를 통해 징계 기간을 1년 3개월로 줄였지만 그가 코트에 복귀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그를 꾸준히 후원하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후원을 중단하며 샤라포바에 등을 돌렸다. 이번에 발리예바의 소변 샘플에서 검출된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제도 쓰이지만 한편으로 혈류량을 늘려 지구력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어 금지 약물 목록에 올라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발리예바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트리메타지딘 외에 금지 약물이 아닌 하이폭센과 엘카르니틴도 검출됐다고 보도했는데 트래비스 타이거트 미국반도핑기구(USADA) 위원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금지된 약물 1종과 금지되지 않은 약물 2종을 함께 사용한 것은 지구력을 높이고 피로를 덜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하이폭센의 경우 산소 포화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USADA에선 경기력 향상 물질로 보고 2017년 금지약물 지정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관련 정황과 타이거트 위원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투트베리제 코치가 금지 약물이 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멜도니움의 대안으로 트리메타지딘을 비롯한 대체 약물을 찾아냈고, 선수들에게 권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에 도달하게 된다. 발리예바는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3.31점, 예술점수(PCS) 70.62점으로 141.93점을 받아프리 스케이팅에 출전한 25명의 선수 가운데 5위에 머물러 총점 224.09점을 기록, 메달권 밖인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날 발리예바는 자신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점프 과제를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소화해낸 것이 없을 정도로 부진한 경기를 이어간 끝에 경기를 마쳤다. 연기를 마친 발리예바는 쇼트 프로그램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쏟았다. 키스앤크라이존으로 가기 위해 빙판을 벗어난 발리예바를 향해 투트베리제 코치가 "왜 포기했어? 말해봐, 왜? 트리플 악셀 실수했다고 그냥 포기한 거야? 왜?"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지켜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발리예바가 가까운 주변인(코치)에게 받은 대우를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올림픽 후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위반 조사를 주도할 예정이다. 미성년 선수 혼자 금지 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에 이를 사주한 배후 어른들의 조사가 핵심이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IOC 역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모두 투트베리제 코치가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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