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쇼박스 |
[스포츠W 임재훈 기자]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 '파묘'는 한국의 독특한 장묘 문화와 풍수지리,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민간 신앙, 무속 신앙 등의 소재를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국을 돌며 소위 '명당'이라는 땅을 찾고, 이를 비싸게 파는 일에 최고의 실력을 지닌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최민식)은 대통령의 염을 담당할 정도의 풍부한 경험을 지닌 베테랑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출중한 실력을 지닌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을 통해 거액의 이장 작업을 제안 받고 함께 묫자리 답사에 나서지만 사람이 결코 누울 수 없는 '악지'(惡地)에 자리한 묘에 수상한 기운을 느끼고 이장을 거절한다.
하지만 이후 기이한 병이 자식에게 까지 유전된 의뢰인의 진심 어린 호소에 결국 이장 작업을 돕기로 결심한다.
파묘는 이장을 시작하는 단계인 묘를 파헤치는 단계로 이장의 당사자 집안의 대표가 삽으로 묘를 두드리며 '파묘요~'하고 외치면서 묘 안의 망자에게 알리고 나면 작업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 파묘의 과정에서 나타난 기이한 현상과 이후 벌어지는 초자연적, 초과학적 현상, 이른바 '묫바람'으로 인해 한 집안이 몰살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이 함께 악령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안의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후 장례를 치르고 묫자리를 쓰고, 기존의 묫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장의 작업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던 익숙한 일이다.
▲ 사진: 쇼박스 |
집안에 우환이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 가운데 '선산에 수맥이 흐르고 있다'거나 '묫자리를 잘못 잡아서 조상님들이 노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고, 귀신, 악령, 퇴마 등에 얽힌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프로그램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들이다.
묫자리를 쓰거나 이장하는 자리에서 풍수사와 장의사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이유는 이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가 그 영향이 의뢰자 집안의 우환으로 연결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학'이나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별로 없다.
영화는 이처럼 민간 신앙이 기저에 깔린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관습으로 가득한 한국의 장묘 문화를 영화의 소재로 삼음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영화에 대한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배우들의 호연이다.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등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들은 모두 연기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꾼'들이다.
▲ 사진: 쇼박스 |
평소에는 실없는 농담을 안주 삼아 막걸리잔을 나누는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들인 상덕과 영근,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만들고 스피닝으로 몸매를 가꾸고 최신 유행의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MZ 무당' 화림과 봉길 모두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즘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직업적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눈빛이 변하면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캐릭터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연기꾼들'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착각이 들 만큼의 실감 나는 연기를 해내고 있다.
40년 경력의 베테랑 풍수사로 변신한 최민식은 “최민식 배우의 얼굴로 담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되는 묘한 마법이 있다”고 한 장재현 감독의 언급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연기를 해냈다.
▲ 사진: 쇼박스 |
장례와 이장의 과정에서 미신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수 많은 관습을 실천하는 장의사이면서 망자의 관을 앞데 두고 찬송가를 열창하는 기독교 교회 장로라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최민식과 멋진 호흡을 보여준 유해진 역시 '꾼'다운 연기를 펼쳐냈다.
특히 김고은이 극중 펼쳐보인 대살굿 장면은 이 영화의 큰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악지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상덕의 반대에도 위험에 빠진 의뢰인 가족을 도와 ‘대살굿’을 펼치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호흡으로 경문을 외는 화림을 연기하는 김고은의 눈빛과 몸짓, 음성은 그대로 소름을 유발한다.
▲ 사진: 쇼박스 |
화람을 돕는 무당 봉길을 연기한 이도현 역시 랩을 방불케 하는 속사포 같은 일본어 대사와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를 펼쳤다.
물론 이 영화는 한국적 소재와 명품 배우들의 연기를 그럴 듯하게 만들고 다듬은 좋은 '만듦새'를 가진 영화라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최민식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저 없이 장재현 감독을 꼽았다. 전작인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 등의 오컬트 영화에서 보여준 장 감독의 만듦새 좋은 연출력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생각이 영화 출연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에 대해 “깊이 있는 서사를 가진 '사바하'와 캐릭터 위주의 영화 '검은 사제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영화”라고 소개했다. 베일을 벗은 영화를 보니 적절한 소개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 연출자의 고민이 보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다. 특히 전통적인 오컬트 장르 영화 팬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설정과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 장재현 감독(사진: 스포츠W) |
하지만 이 영화는 오컬트 장르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오컬트 영화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일반 관객들의 취향도 무시하지 않는 영리한 타협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요소요소에 관객들의 고조된 긴장을 잠시 식혀주고, 영화를 기분 좋게 마무리 하는 코믹한 장면들을 배치한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된다.
기자의 옆 좌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던 한 여성 기자는 언제든 손으로 눈을 가릴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눈 옆에 붙인 채 영화를 관람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비명을 지르거나 손으로 눈을 가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컬트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런닝타임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만한 표현 수위를 유지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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