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우리 땅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었다."
개봉 후 무려 10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 3.1절 연휴에 흥행 굿판을 벌인 영화 '파묘'의 시작은 장재현 감독의 치유할 결심이었다. 차기작 준비하면서 그가 따라다닌 이장(무덤을 옮기는 일)만 15차례정도, 따라다니던 중 소재를 떠올렸다. "소재를 접근할 때 표피를 보기보다 코어를 보려고 한다"는 감독은 자신만의 호기심을 채우는 동시 전 세대 관객들을 '파묘'들게 만들었다.
2024년 최고 흥행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 상덕(최민식)와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속인 이화림(김고은), 윤봉길(이도현)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올해 처음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파죽지세 흥행으로 4일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영화 '파묘' 연출 장재현 감독/㈜쇼박스 |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 불모지인 대한민국에 '검은 사제들'이라는 퇴마, 구마사제로 터를 잡고, '사바하'로 오리엔탈 문화와 종교를 접목 시키며 '오컬트 장인'으로 떠올랐다. "'파묘'는 전문가들이 주인공이라서 공포영화로 접근하지 않았다. 저는 밝은 사람이라서 어두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긴장감도 좋아한다. 그걸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찍는 내내 빛과 어둠, 음양오행을 다 담으려고 했다. 미쟝센에 녹이려고 발악했다. 그게 다 중요한 키다. 그래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 층은 오히려 아쉬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과도한 장면은 음향 효과에 신경쓰면서 그분들께도 만족감을 드리려고 노력했다."
'파묘'는 장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한국적인 'K-오컬트'로서,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수사와 장의사와 컨버스를 신고 굿을 하고, 헬스장에서 자기 관리를 하는 MZ무당들의 만남으로, 신구세대가 조화를 이루며 전 세대의 관심을 아우렀다. "풍수사와 장의사는 지금은 다 없어지는 직업들이라 다 나이가 많다. 저도 장의사협회에서 장의사를 소개 받았다. 그분들은 지금 거의 하이클래스를 고객으로 둔다. 더 장인이고 부띠끄가 된 것도 있다(웃음). 자연스럽게 풍수지리사를 연결해주셨다.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하지만 그분들은 과학, 지질학자, 박사같은 분들이다. 무속인들을 엄청 무시한다. 무속인들도 땅쟁이라고 무시하더라. 근데 실제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엄청나게 꼬장꼬장하다(웃음). 요즘 젊은 무당은 힙하다. 실제 그런 분위기다. 중간에서 서로 '꼰대'라고 하고, '젋은 것들이 발랑 까졌다'고 하지 않나. 그런 세대들이 서로 의존해서 구하는 이야기다. 신구 세대가 모여 그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청소하는 것이다."
'파묘'에서는 대살굿과 혼부르기, 도깨비놀이까지 다양한 무당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그 중 단연 최고는 대살굿이다. 영화는 개봉 전 '대살굿' 스틸을 공개하며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무당 이화림 역의 김고은은 스틸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했다. "굿 장면은 비주얼로만 소비되는게 아니라 목적이 정확히 보여야 한다. 대살굿은 일꾼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이다. 그래서 화림이 신을 받아서, 신이 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칼로 몸을 긋는 것이다. 그리고 불에 손을 넣고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돼지에 칼을 꽂으며 그 일꾼들을 보호하면서 쳐내는 것이다. 그리고 신에게 피(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두번째는 혼부르기다. 되게 구슬픈 굿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봉길을 두고 무당 셋이서 도깨비놀이라는 귀신을 살짝 깨워서 원하는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다."
▲영화 '파묘' 스틸/㈜쇼박스 |
굿 장면은 압도하는 분위기를 담아내야 하는 만큼 새로운 방법으로 촬영했다. 장 감독은 "보통 촬영할 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만든다. 관객들은 영화 볼때 한 컷 한 컷 보지 않는다. 이번 영화는 기운이 중요했다. 이모개 촬영감독이랑 고민해서 '이 영화는 기운을 담아보자,그림을 찍지말자'했다. 그래서 엄청 찍은 다음에 투박하더라도 이어붙여서 편집하자고 했다. '황해', '아수라'가 그런 느낌의 영화다. 현장에서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이어붙이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오래 걸리고 너무 힘들었던 과정이라 다신 안하려고 한다."
영험한 기운을 담아내려고 했던 만큼, 굿장면과 관련한 초현실 현상을 겪은 에피소드도 전했다. 극 중 화림은 영안실에서 혼부르기 굿을 펼친다. 봉길이 혼을 잡는 역할을, 영근이 이를 돕는다. "영안실에서 화림이 혼부르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날 촬영 감독님과 유해진씨가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하셨다. 자문해주시는 무속인 분이 오셔서 모니터를 보더니 '저리가'라고 하시더라."
앞서 최민식은 "김고은은 '파묘'팀의 손흥민이자 메시"라며 인터뷰에서 극찬을 쏟아냈다. 처음 호흡을 맞춘 김고은에 대해 묻자 장재현 감독은 "김고은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다. 두려우면서도 자기 중심을 지켜면서 외국어로 표현하는 그 연기는 정말 감탄했다. 두렵지만 이겨내려고 하면서 대사 전달력을 보면서 김고은은 세계적인 배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파묘' 대살굿 스틸/㈜쇼박스 |
이도현은 온 몸에 축경으로 문신을 하고 다니는 무당 봉길을 연기했다. 이도현은 현재 군 복무 중이지만, '파묘'는 그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감독은 "봉길 역은 신인으로 하고 싶었다. 너무 쟁쟁한 배우들이 있으니까 신인 배우가 했는데 그때 이도현이 신인배우 중에 톱이었다. 잠재력이 부글부글한 상태였다. '더 글로리'가 그렇게 잘 될줄 몰랐다. 흥했을 때는 조용히 웃었다"고 했다.
김고은, 이도현이 MZ세대이지만 무당으로서 대활약을 펼쳤다면, 최민식, 유해진이 구세대로서 묵직하지만 '장인정신'의 노련미를 선보인다. 특히 장의사 역할의 유해진은 장의사로서 전문성을 보이면서도 기독교 관련 대사들로 관객들에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장 감독은 "유해진 선배가 많이 살려주셨다. 대한민국에서 연기 제일 잘하는 배우인 것 같다. 기술적으로는 대한민국 탑이다"고 말했다.
풍수사를 연기한 최민식은 '파묘'의 치트키라고 할 수도 있다. 상덕은 극 중 파묘 후 그 땅에 이순신이 새겨진 백원짜리 동전을 던지고, 자신의 손자가 밟을 땅이라며 후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특히 극 말미 최민식의 활약은 역사적인 해석과 함께 '한일전'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삼일절 연휴의 흥행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없다. 장재현 감독은 "저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전 장면은 실제 풍수사가 묘를 쓰고 관을 꺼내고 이장할 때 땅신한테 돈을 주는 행위다. 보통 10원 짜리를 준다. 흙 색과 너무 비슷해서 안보이더라. 그래서 100원짜리를 꺼냈는데 연출팀들이 너무 '이순신'이라고 하더. 색 때문에 얻어걸린 것이다. '명량'을 오래전에 봐서 저한테 민식 선배님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제가 대중들의 최민식 선배님의 이미지를 몰랐다. 그런 반응이 나오고나서 선배님을 보는데 동전이 보이더라. 하하."
▲영화 '파묘' 스페셜 포스터/㈜쇼박스 |
'파묘'에는 종교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이 등장한다. 티저 포스터부터 등장하는 "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시각화하고, 비주얼화한 부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서양에는 뱀파이어, 미라, 중국에는 강시도 있다. 험한 것은 옆나라의 국가대표다. 유명한 아이덴티티의 정령이다. 저는 음양사 만화책을 되게 좋아한다. 요즘 10대 20대는 그 그 문화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옆나라에 있는 국가대표를 모시고 왔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귀신을 어떻게 찍어야하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심령사진을 다 봤다. 귀신은 찍는 게 아니라 찍히는 것이라는 생각이라서 혼령이 찍힌 것처럼 하고 싶었다. 후반부에는 완전히 새로운, 정반대식의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없다면 깔끔한 유령 영화처럼 됐을 것이다. 근데 한 발짝을 나가야 원동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불편함을 미밀어 붙여야 이 영화를 만드는데 의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들을 때 제일 기분 좋은 말이 발전했다는 말이다. 했던 것 계속하는 것보다 계속 발전하고 싶다. 그게 제 사명이다."
'험한 것'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저도 일본영화 엄청 좋아한다. 일본 여행도 자주 간다. 근데 우리 영화는 '우리 땅', 주인공한테 포커스를 맞췄다. 일단 우리 땅에 무의식적 정서에 공포와 트라우마가 들어간다. 그런 것들을 신구세대가 힘을 합쳐서 뽑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괴기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은유적인 상징이 중요했다. 그는 군인이고 아직도 전쟁하고 있다. 그런 대사와 이미지로 은유하고 싶었지, 감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시체다. 그의 대사와 태도에 은유를 담고 싶었다. 그것도 그 시대 고증을 다 맞췄다. 저는 귀신을 잡으러 가는 영화를 싫어한다. 귀신을 잡으러 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영화관이 완전 다른 것이다"고 설명했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전작들처럼 친절했다. 5개의 막으로 나누고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무속신앙에 무지한 사람까지도 영화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정서와 트라우마는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쇠말뚝 설화'는 대사로서 설명하지만 한반도 땅의 역사를 모른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 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 월드 프리미어를 진행하며 해외 평단의 뜨거운 박수 세례를 받았다.
▲영화 '파묘' 연출 장재현 감독/㈜쇼박스 |
"시나리오때도 막을 나눴다 없앴다를 반복했다. 근데 편집할 때 복선으로 던져주는 게 친절한 것 같았다. 준비를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이유로 넣었다. 감정적으로 내레이션을 풀어줘야 한다. '음양'은 무속인이고 '오행'은 풍수, 장의사다. 그 세계관도 잡아줄 겸 필요했다. 다소 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넣는 게 이득이 더 컸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외국인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이었다. 근데 그들은 동양의 뱀파이어인가 하면서 익사이팅하게 받아들이더라. 외국인들은 옆 사람은 생각 안하고 '죽여' 소리치더라. 블라인드 시사를 몇 번 했는데 10대, 20대 관객들이 그렇게 보더라. 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
장재현 감독의 데뷔작 '검은 사제들'에서는 구마사제가 주인공이었으나 무당도 등장했다. '사바하'는 불교의 도리를 바탕으로 사이비 종교의 진실을 쫓는 이가 목사였다. '파묘'에서는 무당들이 굿을 벌이지만 장의사 영근은 장례의식 때 거룩한 모습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다급할 때 기도하고 아멘을 외친다. 덕분에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종교 대통합'의 아이콘이 됐다. "저는 말도 많고, 밝은 성격이라서 오히려 반대로 그로테스크한 것들을 동경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어두운 세계관에 날라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밝은 사람들이 어두운데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저도 교회를 다니는 집사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랑, 의리, 정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은 교회밖에 없더라. 사회에 나가는 순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쓸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따진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이야기 한다. 근데 그게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인간한테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화수를 떠놓고 아들의 무사를 바라는 우리 엄마들의 마음에 그게 있다고 생각한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은 감정이 중요한 영화다. 인간의 희밍적인 이야기다. 희생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사바하'는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신은 존재하는데 왜 사람은 죽어나가는지, 신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는 슬픈 영화다. 이번에는 개운하게 하고 싶었다. '파묘' 소재를 처음 잡았을 때는 음흉한 공포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공포영화는 피해자가 주인공이 되야 한다. 근데 코로나19가 터졌다. 극장이 망할까봐 매일 마스크 끼고 갔다. 그때 극장에서 유럽에 웃긴 영화들만 나왔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다 개봉을 미뤘다. 관객들이 몇 명 없는데 우울하게 나오더라. 그래서 화끈하게 가자 싶었다. 사람들이 극장에서 익사이팅하게 하게 만들 싶어서 주인공들을 다 바꿨다. 피해자들은 우리집에 왜 이런 일어나지, 업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여야 하는데 일부러 다 바꿨다"고 설명했다.
'파묘'는 장재현 감독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그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장을 15차례 정도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급하게 새벽에 장의사님의 연락을 받고, 진안까지 갔다. 상주가 갑자기 뇌졸증이 왔다고 하더라. 묘를 파는데 수로 공사를 잘못해서 거기에 물이 들어갔다. 그래서 관을 꺼내서 열고 장의사님이 그 자리에서 급하게 토치로 태웠다. 비를 막아가면서. 그날 느꼈던 게 파묘라는게 과거를 들춰서 잘못된 것을 꺼내서 없앤다는 것이라는 코어의 정서가 오더라. 우리들, 우리나라 땅을 사람으로 보면 저희 엄청 피해자다. 우리 땅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었다. 그걸 파묘해야겠다 생각했다. 제 발바닥에 있는 티눈을 꺼내고, 또 안 나게 레이저로 지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