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카르밀라’ 정예인 “뱀파이어 연기?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죠”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7-24 08: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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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뮤지컬 ‘카르밀라’는 매혹적인 뱀파이어 소녀 ‘카르밀라’와 순수한 인간 소녀 ‘로라’의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지난 6월 창작 초연의 막을 올렸다. 네버엔딩플레이와 라이브러리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작품은 이강욱 연출, 민미정 작·작사, 황예슬 작곡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지난 10일 스포츠W는 서울 종로구 소재의 카페에서 뮤지컬 ‘카르밀라’의 ‘카르밀라’ 역으로 출연 중인 정예인 배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정예인 [사진=써브라임]

 

2014년 그룹 러블리즈의 막내로 데뷔해 지난해 9월 ‘위윌락유’의 ‘스칼라무슈’역으로 뮤지컬계에 진출한 정예인은 차기작으로 ‘카르밀라’를 선택했다.

다시 한번 대학로 무대에 오른 것에 대해 정예인은 “작년에 ‘위윌락유’라는 작품에 참여하고 뮤지컬의 재미를 알게 돼서 꼭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카르밀라’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무대에서는 정해진 춤과 노래만 보여줬고, 연기를 해 본 경험은 없었다. 뮤지컬은 연기와 노래가 오묘하게 섞여서 정말 다 잘해야지만 할 수 있고, 그 모든 걸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면서 만들어나가는 장르라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에 대해서는 ‘전달력’을 꼽았다. 정예인은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다. 무대니까 가까운 제 표정이 멀리 계시는 분들은 잘 안 보이고, 목소리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런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가는지에 대한 숙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선 좀 발성적인 부분을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카메라는 가까이서 제 목소리를 다 담아주는데, 무대는 그렇지 않으니까. 또 3개월간 공연을 해내야 하다보니까 원래 제가 쓰는 발성보다 목이 상하지 않게 오래 말할 수 있는, 멀리 계시는 분들께도 전달이 가능한 발성을 사용해보려 노력했다.”

정예인은 학창시절 무용을 전공했던 과거와 아이돌 그룹 활동을 하며 길러온 뛰어난 춤 실력으로 아름답게 안무를 소화해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정예인은 “뮤지컬에서 소화하는 안무는 안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연기에 더 가까운 것 같다”며 안무를 경험하면서 직접 느낀 감상을 전하고 “짐승들을 뜯어먹고 할퀴는 행위로서 안무가 접목된 거다보니 안무라는 개념보다는 카르밀라가 하는 행위라 생각하면서 하고 있다”며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카르밀라’의 대본에서 매력을 느낀 부분에 대해 정예인은 “여성 배우들이 많이 참여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끌렸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또, 팬들에게 ‘뱀파이어’라는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점도 작품을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뮤지컬 배우로 커리어를 쌓은지 얼마 안 됐다보니까 알고 지내는 또래 여자배우들이 많이 없다. 대화를 나눠볼 일도 많이 없어서 아직 가수 친구들이 훨씬 많다. 그러다보니 저와 비슷한 또래의 언니 동생들이 이 극을 어떻게 끌어갈 지 너무 궁금했다. 또 제가 뱀파이어를 연기한다는 걸 한번도 상상해 본적 없다. 보시는 분들은 감사하게도 뱀파이어랑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화장을 지우면 눈도 순하게 생겨서 뱀파이어 같은 인상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사진=네버엔딩플레이, ㈜라이브러리컴퍼니

 

직접 작품을 경험해 보면서 느낀 ‘카르밀라’만의 매력에 대해서는 ‘밀당의 매력’을 꼽았다. 정예인은 “극 중 기대하고 오신 부분들이 그대로 있었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셨던 부분들도 있었을 것 같다. 로라의 사랑에 넘어갈 듯 안 넘어가고, 밀어내는 듯 하지만 다가가는. 그 경계를 계속 오가는 극이라 관객분들과 밀당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작품은 비교적 신인들과 아이돌 출신 배우가 많이 참여했던 전작 ‘위윌락유’와는 달리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정예인은 “캐스팅이 공개 됐을 때 보니까 뮤지컬계에서 유명하시고 작품도 정말 많이 하신 선배님들이라 사실 부담스럽기도 했다”며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과연 내가 같이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이 분들과 같이 작품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기대됐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며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 ‘카르밀라’ 연습에 참여하면서 정예인이 다른 선배 배우들에게 배운 것은 순발력과 즉흥성이었다.

“처음에 대본은 정해져있지만 연출님이 연출적인 부분들을 잡지 않은 상태로 배우들끼리 먼저 장면을 맞춰보면서 극을 만들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다른 배우분들과 미리 만나서 연습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잘해냈다. 그런 부분이 놀랍고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정예인의 전작 ‘위윌락유’와는 달리 ‘카르밀라’는 아예 처음부터 만들어나가는 창작 초연 작품이었다. 처음 겪는 창작 초연 작품의 작업 과정에 대해 묻자 오히려 그는 ‘위윌락유’ 덕분에 이번 작업 과정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윌락유’가 거의 창작 초연처럼 작업한 작품이다. 당시 연출님이 배우분들 의견도 많이 들어주시고, 같이 대사도 써보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창작 초연과 비슷한 과정을 이미 한번 겪었어서 생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카르밀라’는 창작 초연은 연출님이 계시고 대본이 나와 있어도 배우들의 의견을 정말 많이 수용해 주신다는 걸 다시 한번 몸소 느끼게 된 극이었던 것 같다.”

이번 ‘카르밀라’를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직접 의견을 제시한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묻자 정예인은 “정말 거의 없었다”면서 “전적으로 연출님과 다른 배우분들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동선을 이렇게 가도 될까요?’, ‘여기서 로라랑 스킨십을 할 때 이런 식으로 누워봐도 될까요?’처럼 작은 의견들만 여쭤봤고, 큰 틀 안에 있는 건 다른 배우분들의 의견에 적극 동의 했던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음악적인 차이도 있었다. ‘위윌락유’는 퀸의 노래로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면, 이번 ‘카르밀라’는 클래시컬한 색채가 강한 음악과 함께한다. 이에 대해서는 “위윌락유’ 때는 퀸의 노래가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느낌 덕분에 제 색깔을 더 많이 담아서 부를 수 있었다면, 이번 ‘카르밀라’의 넘버들은 클래식한 느낌들이 많아서 넘버에 맞게 불러줘야하는 부분이 있었다. 연습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아직 뮤지컬 배우로서는 신인이지만 데뷔작을 경험해 본 만큼 뮤지컬에 대해 익숙해진 부분도 있었다. 첫 작품을 거치며 가장 수월해진 부분에 대해 정예인은 ‘무대 용어’라는 답을 내놨다.

“‘상수’, ‘하수’ 같은 단어는 저희도 콘서트를 할 때 쓰는 용어인데 ‘무대를 긋는다’, ‘밟아본다’ 같은용어는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 들어봤다. ‘업 스테이지’, ‘다운 스테이지’ 같은 것도 헷갈렸다. ‘업’이 어디인지 모르니까 어디로 가자고 하는 건지 저는 모르는거다. 이런 용어들을 ‘위윌락유’ 때는 많이 헤맸는데 이번에는 그런 용어들을 바로바로 알아들어서 좋았던 것 같다.”
 

▲ 사진=네버엔딩플레이, ㈜라이브러리컴퍼니

 

‘카르밀라’는 여성과 여성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정예인은 동성의 사랑을 그린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고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면서 “특히 ‘닉’ 역할이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는데 ‘닉’ 역할도 여성들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여자 3명의 묘한 사랑을 작품에서 어떻게 풀어갈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됐고, 그런 마음으로 첫 연습을 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로라는 집에서 혼자 지낸 아이니까 사랑의 개념 자체가 넓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따로 접힌 게 없으니까 사랑은 꼭 남자와 여자가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없을 것 같았다. 또 로라는 젊은 여성이지만, 저는 몸은 젊은 여성이면서 속은 150살 먹은 할머니다. 그런 점들이 어떻게 풀어질지 궁금해서 참여하게 됐던 것 같다.”

극 중 정예인은 불멸의 삶에 지쳐 영생을 끝마치려던 찰나 순수의 존재 ‘로라’를 만나 잃어버린 욕망이 되살아나는 뱀파이어 소녀 ‘카르밀라’ 역을 맡아 연기한다. 그는 로라를 향한 카르밀라의 감정에 대해 “감정의 변화가 정말 크다”며 “로라에게 죄책감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연기할 때도 카르밀라는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로라는 틈만 나면 온다. 관객석에서는 잘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카르밀라와 로라만 아는 눈 맞춤 같은 디테일이 있는데, 그런 세세한 연기를 할 때마다 로라를 안아주고 싶지만 과거의 그 사건 때문에 죄책감이 굉장히 크다는 걸 느낀다. 뱀파이어가 된 후 모두가 나에게 괴물이라 했는데 처음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며 손 내밀어준 소중한 존재한테 의도치 않게 큰 상처를 준 거니까.”

또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성에 대해 “로라는 사랑이 많은 아이인데 그런 로라의 모습이 카르밀라의 인간 시절 모습과 같은 사람으로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했다”며 복합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 둘의 사랑에 대해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카르밀라의 사랑은 연인의 사랑에 더해서 모성애도 느끼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나이도 로라가 카르밀라보다 훨씬 어리고 성격도 워낙 사랑스럽다보니까 연애하다보면 남자친구한테 모성애를 느낀다, 여자친구한테 부성애를 느낀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로라를 보호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감정도 생기는 것 같다.”
 

▲ (왼쪽부터) 김서연, 정예인 [사진=네버엔딩플레이, ㈜라이브러리컴퍼니]

 

극 중 카르밀라는 삼각관계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인간 소녀 ‘로라’와 마음을 주고 받지만, 한편으로는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잔인한 뱀파이어 ‘닉’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닉’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정예인은 “닉은 정말 나빴다”면서 장난스레 분통을 터뜨리고 ‘뒤틀린 사랑’이라 칭했다.

“잘못된 사랑이다. 원래 남을 사랑하면 아껴주고 싶어하는데 그게 아니라 소유욕을 드러내고, 넌 나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면서 극 중 내내 감정을 강요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운 것 같다. 닉은 카르밀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다. 로라를 흡혈귀의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것도 카르밀라가 정말 좋아할 줄 알아서 한 이야기고, 그러면 세 명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아이라 시작부터 잘못된 것 같다.”

또 카르밀라의 입장에서는 닉을 절대 사랑할 수 없다면서 넘버 ‘서쪽나라 소녀’의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닉이 카르밀라가 너무 아름다운 소녀라 갖고 싶어서 흡혈귀의 세계로 강제로 데려오게 된거다. 제가 생각했을 때 카르밀라는 흡혈귀가 되고난 후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140년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카르밀라와 닉의 관계는 애증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카르밀라와 로라, 닉의 삼각관계가 가진 매력에 대해 정예인은 “뱀파이어가 훨씬 힘이 세고 강하니까 인간은 약자가 되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게 강한 뱀파이어가 인간 소녀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재미있다”면서 “닉도 정말 로라가 한 주먹거리인데 어떻게 못하고 계속 질질 끄는데 그런 상황이 매력적인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힘센 두 뱀파이어가 애정관계로 얽혀서 나약한 인간 한 명을 처치도 못하고 있는 상황들이 답답해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되게 안타깝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로라도 굉장히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로라는 초반에는 집밖에 나가지 않는 온실 속 화초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극이 다 끝나고 나서는 단단해져 있는 한 인물로서 서 있는 부분이 극의 매력으로도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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