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영화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아빠와 절연한 채 살아온 아이코가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카자흐스탄 출신인 자카 압드라흐마노바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살을 붙여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은 "살아가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못하면, 살기 어려운 것 같다. 행복하려면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영화를 만들었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스포츠W가 자카 압드라흐마노바 감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자카 압드라흐마노바(Zaka ABDRAKHMANOVA) 1989년 카자흐스탄 출생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마리나 라즈베즈키나와 미하일 우가로프가 설립한 다큐멘터리 영화 연극 학교를 졸업했다. TV 시리즈 '마이 마더스 펭귄'의 각본을 썼고 TV 다큐멘터리 '텐저린스'(2019), '쥬빌리 이어'(2019)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는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다. |
영화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는 아이코가 아빠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으면서 본격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코는 그곳에서 아빠의 둘째 부인과 사랑 받고 자란 이복동생을 마주한다. 어린 시절 학대 받으며 자라온 자신과는 달리, 아빠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두 모녀의 모습에 아이코는 마음이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떠오르게 하는, 가족 형태이다. 하지만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내 이야기다. 서른 살의, 모스크바에서 온 주인공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콘셉트지만, 40% 정도는 내 이야기다.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까지 더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었다."
영화는 주인공 아이코의 눈을 포커싱하며 시작해 인상깊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아이코는 분장실에서 괴로워하며 눈물을 삼키려 애쓴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가 '슈퍼 히어로'라고 외친다. "아마 내 영화가 2분 짜리 였다면 '아빠가 죽었다'하고 끝날 수 있다. 근데 복잡한 감정을 겪고 있다. 아빠를 싫어하는 감정이 있어서 그런 장면으로 시작하게 됐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40%라고 하지만, 아이코의 직업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이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섞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이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 "실제 인생에서 반복되는 것을 또 똑같이 반복되게 하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 직업으로 설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누군인지 실제 인물이 알아챌 수도 있다.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나는 내 인생이 재밌지 않다고 생각해서, 재밌는 직업으로 설정했다. 아마 내 이야기가 100%였다면, 다큐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미소)."
▲[BIFF 인터뷰]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감독 "부국제 초청, BTS-스키즈 사진 덕인가 싶어"/영화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스틸 |
영화는 자연스럽게 카자흐스탄의 전통 장례식 풍경도 비춘다. 주인공 아이코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애도하는 기간에 고향에서 머물러야 했다. 과거 아이코가 학대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한 집안의 어른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온 아빠의 두번째 부인과 그의 딸들을 보며 분노하던 아이코는 점차 그들과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애도 기간 중 둘째부인은 아이코에게 '너는 사악한 늑대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너는 불쌍한 어리석은, 작은 늑대다'라고 표현한다. 이를 들은 아이코는 눈물을 흘린다.
"아이코는 자신이 슈퍼 히어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캐릭터다. 그는 내일 떠나도 니들이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가졌다. 이복동생 코코는 아이코를 좋아한다. 그 가족들도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차가운 마음을 가진 아이코에게 둘째부인이 팩폭하는 것이다. 그 대사를 듣고 아이코가 울지 않나. 아이코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이다. 누군가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이코가 코코의 가출 사건을 해결하고, 마침내 고향을 떠나는 엔딩은 어쩌면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그게 끝이 아닌 듯, 이제 막 화해한 두 가족이 잘 지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이코의 모습도 한 층 성장한 듯하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달랐다. "아이코가 떠나는 길을 이복동생이 오래도록 보고 있지 않나. 사실 해피엔딩은 아니다. 물론 어떤 해석도 좋지만, 아이코가 떠나면 다시는 서로 못보기 때문에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제 그런, 달콤하고 유혹 같은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BIFF 인터뷰]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감독 "부국제 초청, BTS-스키즈 사진 덕인가 싶어"/영화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스틸 |
그럼에도 감독은 "해피엔딩으로 해석하셔도 좋다. 저는 다큐 관련된 대학을 졸업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트라우마, 미래의 경험, 상처 등을 풀어내고 더 이상 얽메이지 않기 위한 방법을 배워서 도움이 많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해피엔딩으로 볼 수도 있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코는 상처를 털어냈으니, 이제 사랑을 배우고 시작하는 단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아닐까 싶다(미소)."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를 본 관객들이라면, 영화를 보다보면 눈에 익은 듯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10대인 아이코의 이복동생의 방 풍경이다. 코코의 방에는 방탄소년단(BTS)와 스트레이 키즈의 포스터가 벽에 가득 붙어 있어 K팝의 글로벌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영화는 카자흐스탄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감독은 "K팝을 잘 모른다"고 했다. "우리 영화의 미술감독(따냐 아자로바)님의 센스다. 감독님이 시골에서 지냈지만 K팝이나 K-콘텐츠 등을 잘 아신다. 저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하지만 난 누군지 모른다(웃음)."
그러면서 감독은 "프로듀서님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스크린샷을 보여줬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왜 부산으로 초대했는지 알 것 같다'고, K팝 가수들 덕분이 아니냐고 서로 웃으면서 농담했었다(웃음). 초청 소식을 들었을 때가 미술감독님의 생일이었다. 정말 큰 선물이 됐다."
자카 압드라르마노바 감독은 K-콘텐츠도 많이 접하고 있다. "최민식 배우를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뵙고 싶다.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최근에 '파묘'도 재밌게 봤다. 봉준호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님의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도 재밌게 봤다(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