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저의 가장 최우선 목표는 두 인물이 진짜 사랑을 했다고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사랑이 제 1 목표였었는데 주영이와 예지가 붙는 씬들이 다 좋았다. 그걸로 만족했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2012년 ‘노 스페이스’로 스크린에 데뷔한 박수연은 그간 ‘벌새’, ‘선희와 슬기’등 수많은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발견을 조명하는 영화제인 전주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이 깊다. 박수연은 2018년 고등학교 육상부 한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앵커’(2019)로 제 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2023)을 통해 다시끔 전주 땅을 밟았다.
스포츠W는 지난 1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천사’의 주연 배우 박수연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이하 우천사)는 1999년 폭력이 만연하던 종말론의 시대, 태권도 국가대표를 준비하는 주영(박수연)과 소년원 학교 출신인 예지(이유미)의 사랑과 친구들 간의 우정을 다룬 퀴어 영화다. 영화 ‘담쟁이’를 연출한 감독 한제이가 메가폰을 잡았다.
무려 열 아홉자에 달하는 긴 제목은 과감한 함의가 더해져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박수연 또한 작품을 처음 제의받았을 때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재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우선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읽기 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그동안 작품에서 저의 어두운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없이 밝고 사랑스럽게 할 자신이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 주셨다. 전 작품에서의 어두운 모습을 보시고 저의 밝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절 캐스팅 했다고 하셨다. 그게 좀 신기했다. 영화 초반에 밝은 모습이 많이 나온다. 저로 그 모습을 그리고 싶으셨던 것 같다.”
밝은 모습의 박수연을 그리고 싶었던 감독의 캐스팅 의도와 동일하게 촬영 과정 역시 박수연의 밝은 모습을 담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감독님이 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가지고 있는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어두운 건 최대한 안 하면 좋겠다고 해서 주영이라는 인물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영화나 책도 어두운 건 보지 말라고 하셨다.”며 설명했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박수연은 그간 찍어온 많은 작품에서 10대를 연기해왔다. ‘우천사’에서 또 다시 고등학생 주영을 연기하며 교복을 입은 그는 “스물 아홉 살 때쯤에 이제 교복 그만 입어야겠다고 혼자 생각했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같이 교복 입고 나오는 친구들 중에 21살, 22살이 있으면 제가 봐도 너무 차이가 나더라. 외모를 떠나서 텐션이 다르다. 그래서 이제 10대를 더 연기하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천사'는 31살 때 찍었지만 다 비슷한 연령대인 배우들하고 찍어서 큰 차이 없이 찍었다.”
연령대에 따라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가 ‘텐션’이라 꼽은 만큼 박수연은 촬영 과정에 있어서도 10대의 발랄함을 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만큼 걱정도 따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촬영하면서 10대를 표현하다 보니 너무 과하게 연기할까봐 걱정이었다. 같이 친구로 출연했던 김현목 배우가 되게 귀엽고 발랄한 타입의 캐릭터로 나와서 둘이 너무 방방 뛸까 봐 걱정이 됐었는데 촬영할 때는 그냥 과하게 했다. 나이가 드니까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텐션을 끌어올려서 했는데 어제 상영 보니까 그렇게 과해보이지가 않더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0대의 나이로 10대를 연기해야 했던 상황과 반대로, 그가 아이였을 199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박수연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기억한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1999년 당시에 8살 그쯤이었고, 그때 혼란하던 사회에 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TV로 금모으기 운동도 했었고 IMF 외환 위기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낯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유미는 아예 모르는 세상이었다고 하더라. 개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우천사’는 박수연의 첫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이성간의 사랑을 그리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 퀴어 영화를 연기할 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힌 그는 ‘우천사’의 서사적 특징을 이유로 들었다.
“그저 납득이 되는 관계라 보편적인 로맨스 영화를 찍을 때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히 ‘우천사’는 정체성 혼란 같은 요소가 없다. 첫사랑이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담고 있어서 퀴어 영화라는 이유로 달랐던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 영화인으로 이루어진 ‘여성 영화 보기 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여성 서사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여성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수연은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의 접합점에 대해 “여성 서사인 게 확실하고, 여성 관객들이 보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도 여자다 보니까 여자 주인공이 나오거나 여성 캐릭터가 극을 끌고 가면 훨씬 재밌다. 저는 그렇더라. 그래서 여성 서사 영화를 계속 찾아보게 된다. 여성 주연의 퀴어 영화 역시 그런 내용을 다뤄주니까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수연은 연기를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과정을 좋아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우천사’ 역시 마찬가지로 주영을 연기하기 위해 구축하는 시간을 가졌던 그는 퀴어 장르에 관련해서 여러 영화와 책을 많이 감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만 골라서 말하자면 ‘세이빙 페이스(2004)’가 너무 좋았다. ‘워터 릴리스(2006)’도 재밌게 봤다.”고 전했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
극 중에서 박수연이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배우 이유미였다. 이유미는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바 있다. 박수연은 캐스팅 당시 이유미와 친분이 없었지만 이유미가 상대 역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천사’에 참여할 결심을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체에 나오는 이미지만 봐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역이 유미가 아니었으면 조금 자신이 없었을 것 같다. 제가 생각했을 때 너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처연하면서 아기새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주영이 예지를 보고 첫 눈에 반한 것처럼, 박수연 또한 이유미와 연기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주영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유미를 첫사랑의 대상처럼 대했다.
“영화 자체가 첫 사랑과 첫 만남을 그리고 있다 보니까 의식적으로 친밀해지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미가 실제로도 장난기가 엄청 많은데 현장에서는 오히려 말을 적게 하고 거리도 유지했다. 조금 어려운 상대로 의식하고 연기했었다.”
‘우천사’는 한제이 감독이 원작 시나리오에 각색을 더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폭력성이 더욱 짙었던 원작 시나리오에 로맨스를 더해 지금의 ‘우천사’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폭력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출연을 결정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있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박수연은 ‘우천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답했다.
“시나리오 읽을 때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여러 번 읽었다. 폭력적인 씬에서 관객들이 2차 가해를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폭력에 성적인 면도 포함되어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감독님하고도 그런 씬들에 대해 많이 얘기했고 수위도 많이 조절했다. 만약 그런 수위 조절이 상호적으로 안 됐으면 저도 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감독님이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박수연은 ‘우천사’의 최종본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감상했다고 밝혔다.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다 아쉬울 수밖에 없다며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마침내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유미도 저도 다 자기 것만 아쉽다고 말하긴 했다. 근데 저의 가장 최우선 목표는 두 인물이 진짜 사랑을 했다고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사랑이 제 1 목표였었는데 주영이와 예지가 붙는 씬들이 다 좋았다. 그걸로 만족했다.”
영화를 본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닷가 씬을 골랐다. 박수연은 “바닷가 씬이 진짜 예쁘게 잘 나왔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도 바다가 너무 예뻐서 막 신나게 뛰어서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영화에서도 엄청 잘 나왔다. 촬영감독님께도 제일 좋아하는 장면 여쭤보니까 바닷가 씬이라고 하시더라”며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주영의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내가 너 먹여 살릴게”라는 패기 있는 사랑의 언어를 꼽았다.
“관객분들이 좋아할 것 같은 대사가 진짜 많다. 주영이가 처음 사랑하는 사람한테 진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한다. 찍을 때는 몰랐다(웃음) 그 중에서도 “내가 너 먹여 살릴게”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박수연은 ‘우천사’라는 영화가 관객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며 영화제 현장에서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감독님하고도 이 영화를 보고 첫사랑이 생각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어제 사인 받으시는 관객분들 중에서도 첫사랑이 생각났다고 말해주신 분이 있었는데, 그 말을 감독님께 전해드렸더니 되게 좋아하셨다. 영화를 보고 그 때 그 기억을 한 번쯤 떠올리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박수연은 6월부터 단편 영화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변중희 배우가 주연을 맡아 노인 세대가 겪는 사회보장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 ‘경계선’(가제)에서 박수연은 동사무소 직원으로 등장해 연기를 펼친다.
“저는 앞으로도 독립 영화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힘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크든 작든 계속하고 싶다. 동시에 직업 배우로서 상업 영화 쪽도 계속 열심히 하고 싶어서 두 개를 놓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박수연은 ‘우천사’를 감상할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아무래도 사랑 이야기는 어리숙하고 창피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연약한 마음을 보여주는 씬들이 많다. 그래서 유치하다 놀릴 수도 있고 ‘뭐 저렇게까지 해?’라고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귀여운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마음을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사랑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한 두가지 정도 좋은 점을 느끼셨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산뜻한 기분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