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리 진 킹 (사진 : WTA 공식 영상 캡처) |
‘남녀 선수 동일 상금’의 역사는 ‘오픈 시대’가 막 열렸던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다.
당시 여자 테니스 최고의 스타였던 빌리 진 킹(미국)은 WTA와의 인터뷰에서 “오픈 시대가 시작된 1968년, 로드 라버(호주)는 윔블던 우승 후 2,000파운드를 받았지만 나는 750파운드를 받았다. 그 때 나는 ‘우리는 여전히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역대 남녀 선수 중 최다 타이틀을 거머쥔 ‘테니스의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도 “톱 플레이어들은 테니스 상금만으로도 괜찮았지만, ‘톱 10’ 바깥의 선수들은 투어에 다닐 돈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고 불평등한 상금으로 인한 현실을 꼬집었다.
이러한 남녀 선수의 상금 차별 개선은 1970년 빌리 진 킹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1970년, 빌리 진 킹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 후 단 60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대회의 남자 단식 우승자는 3,500달러를 받은 것을 보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그는 “모두들 여자가 단순히 케이크 부스러기 정도 되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여자들도 케이크 가장 위에 올려진 체리가 되길 바란다”며 남녀 선수의 동일한 상금을 주장했다.
이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 대결’로 이어졌다.
▲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사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1973년 윔블던에서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미국)의 ‘성 대결’이 펼쳐졌다. 이는 바비 릭스와 마거릿 코트(호주)의 맞대결 이후 4개월 만에 성사된, 테니스 사상 두 번째로 이뤄진 남녀 선수의 맞대결이었다.
이 경기에서 빌리 진 킹은 바비 릭스를 세트스코어 2-1로 완파하고 남자 단식 선수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었다. 당시 남자 선수의 우승 상금이 여성 선수보다 8배 가까이 높았기에 더욱 의미 있는 승리였다. 이들의 맞대결은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2017)>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열린 ‘US오픈’이 4대 메이저 대회 최초로 남녀 단식 우승 상금을 2만 5천 달러로 동일하게 적용했고, 이후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동일 상금을 향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1978년 ‘호주 오픈’ 당시 남자 단식 우승자가 여자 단식 우승자보다 585배 많은 상금을 받았으나 이 격차는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하며 마침내 2001년 대회에서는 그랜드슬램 중 두 번째로 남녀 선수가 동일한 상금을 받게 되었다. ‘US 오픈’의 동일 상금 제정 후 28년 만의 일이다.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도 각각 2006년과 2007년에 남녀 선수 동일 상금 부여를 확정했고, 현재는 4개 메이저대회 모두 남녀 선수가 동일한 상금을 받고 있다.
2005년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던 비너스 윌리엄스는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윔블던은 내게 ‘넌 그저 2위 챔피언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 2007년 윔블던 우승 후 비너스 윌리엄스 (사진 : WTA 홈페이지 캡처) |
2년 후인 2007년, 비너스는 윔블던이 남녀 선수 동일 상금을 적용한 첫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남자 단식 우승자인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동일한 상금을 받으며 2년 전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이처럼 여성 선수들이 남성 선수와 동일한 상금을 받게 된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일부 남성 선수들이 반발이 존재한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남자 선수들의 경기에 더 많은 관중들이 몰려온다. 이게 남자 선수들이 더 많은 상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의 남녀 선수가 받는 동일한 상금은 수많은 시간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여성 선수들의 노력이 일궈낸 뜻 깊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