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KBSN스포츠에 입사,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첫 발을 내디딘 박지영 아나운서는 3년 뒤인 2015년 MBC스포츠플러스로 이적, 올해까지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일곱 번째 해를 맞고 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롱런’하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박지영 아나운서는 비교적 오랜 기간 견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구축해 오면서 어느덧 만 서른 살이 됐고, ‘고참’ 위치에까지 서게 됐다.
이날 인터뷰는 박지영 아나운서가 프로농구 방송을 위해 잠실로 향하기 전에 이뤄졌다. 새해 첫 날 일터로 향하는 그에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사실은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은 듯 보였다.
사진: 스포츠W |
여성 아나운서로서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는 길은 대략 두 가지 루트가 있다. 일반 아나운서로 입사해 스포츠 파트로 보직이 배정되거나 처음부터 스포츠 아나운서로 시작하는 경우다. 하지만 박지영 아나운서의 경우 다소 특별한 과정을 통해 스포츠 아나운서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스포츠를 하나도 몰랐어요. 미스코리아 합숙 중에 아카데미에서 내 이미지와 스포츠가 맞겠다 여기고 지원해줬죠. 야구가 9회까지라는 것도 몰랐고, 공수교대라는 말이 굉장히 생소하던 때에 입사했어요”
한 마디로 스포츠의 ‘스’자로 모르는 수준에서 스포츠 채널에 입사한 아나운서를 기다린 것은 엄청난 양의 학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입사하고 나서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어요 교육도 정말 혼나면서 많이 받았죠. 야구 기록지 보는 법부터 차근차근 다 배웠어요. 그리고 축구, 배구, 야구, 다른 기타 종목. 씨름도 나간 적 있죠. 그걸 일단 이론으로 배웠는데, 그 이론으로 배우는 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빨리 현장에 나가서 뭔가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죠. 인내의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1년 가량을 수 많은 스포츠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는 사이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리포트를 담당하면서 실력을 다졌다. 그리고 입사 1년 후 마침내 프로야구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완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장에 내보내지고 힘들어 하는 후배 아나운서를 보면 ‘나는 차근차근 잘 배웠구나’ 생각하죠. 선배들에게 감사해요. 그 때 당시엔 아무 것도 모르고 힘들기만 했어요. 제가 스포츠를 몰랐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인고의 세월을 거쳐 야구면 야구, 농구면 농구, 또 그 어떤 종목이라도 그간의 학습과 경험 덕분에 능숙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수준에까지 도달했지만 작년에 맡은 국내 유일의 메이저리그 매거진 프로그램 ‘메이저리그 투나잇’은 박지영 아나운서에게 크나큰 도전이었다.
“너무 어려웠어요.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죠. 신입도 아니었고 내가 했던 게 따로 있었는데 전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랬다 KBO리그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팀, 선수, 역사, 기록 등 모든 면에서 거대하게 느껴졌다. 매 순간 고민과 좌절을 반복해야 했다.
“공부하면서 내가 이렇게 몰랐나 싶으니까 좌절이 들더라고요. 내가 연차가 있는데 그리고 욕심이 있어서 제가 야구를 이 정도 했으면 어느 정도 알고 시청자에게 전달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 그래서 스프링캠프 가서 정말 많이 울고 느끼고 배우고 왔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의 MC로서 노력도 많이 했고, 선배들로부터 교육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서 스스로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프로그램에 임해야 하는지도 깨달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제가 그렇게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시즌 내내 ‘이게 뭐예요?’ 라는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기록도 너무 방대하고, 레전드도 워낙 많고, 선수도 팀도 많다 보니까.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죠.”
그런 좌충우돌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박지영 아나운서는 메이저리그 매거진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됐다.
사진: 박지영 인스타그램 |
최근 박지영 아나운서를 가장 바쁜게 만드는 스포츠는 역시 프로농구다. 프로농구 현장은 프로야구 현장 리포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취재와 리포트에 있어 야구가 정적이라면 농구는 동적이다.
“농구는 재미는 있는데 두 시간 동안 혼을 다 빼고 오는 느낌이에요. 스피드 하게 취재를 해서 순간순간 벌어지는 일들에 대처하고 취재를 한 내용이 리포트 순간 어느 정도 적합한지 판단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애런 헤인즈를 취재했는데 리포트 할 때 뛰고 있지 않으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죠. 여러 가지 취재를 했다가 작전 타임 때 투입이 되죠 언제 부를 지도 모르는 작전 타임 말이죠(웃음). 두 시간 내내 생방송을 하고 있는 거라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그간 겪어온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종목으로 박지영 아나운서는 역시 야구와 농구를 꼽았다. 야구는 꾸준히 해왔던 종목이고 우리나라를 대표 하는 스포츠이기도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메이저리그까지 섭렵해서 더 애착이 생겼다.
그런데 농구에 대한 애착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농구는 너무 재미있어요. 처음 입사((KBSN스포츠)해서 농구부터 시작했죠.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 했는데 배구와 농구 중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선배들이 다들 배구를 추천했지만 저는 무조건 농구의 길을 가겠다고 했어요.(웃음) 그래서 ‘바스켓W’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만큼 농구에 대해 애착이 컸어요”
스포츠를 전혀 몰랐던 풋내기 여성 아나운서가 그토록 농구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재미’였다.
사진: 박지영 인스타그램 |
현재 국내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역할은 매거진 프로그램의 MC와 경기 현장 리포트에 집중되어 있다. 경기를 중계하는 역할을 대부분 남성 아나운서들의 몫이다.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는지 물었다.
“욕심이 났고 실제로 해보기도 했어요. 탁구하고 리듬체조…아직까지 좀 부족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물론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남자 캐스터를 보고 있으면 그 스포츠를 오래 함께 했던 캐스터와 바로 투입된 캐스터의 깊이 차이가 확실히 있죠. 그래서 조금 더 많이 알았을 때 듣는 사람들도 인정 할 만한 캐스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 골프 중계는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으로 꼽았다. 스스로 골프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초보 골퍼지만 골프만이 주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다 선배 여성 캐스터들의 골프 중계가 시청자들에게 거북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진: 박지영 인스타그램 |
수 많은 미스코리아 참가자들과 비슷하게 박지영 아나운서 역시 단골 미용실 원장님의 추천으로 2012년 미스코리아 서울 예선에 참가했고, ‘서울 선’으로 뽑혔다. 그리고 미스코리아로서의 이력은 그가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갖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KBSN 원서를 아카데미 원장님이 넣어 주셨어요. 1차 합격한 상태에서 아나운서 팀장님이 우연찮게 미스코리아 본선을 보셨다고 했는데 당시 TV 속 제가 너무 예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시험 보러 갔을 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게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아나운서로서 활약하는 동안 그에게 끊임 없이 새로운 기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
“(연예계의) 러브콜을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직까진 스포츠에 애착이 많아서 별 생각하지 않아요. 선배들이 여태까지 해왔던 길을 보면 스포츠를 중심에 두고 흔들리지 않았던 선배들이 더 멋있어 보여요. 제 눈에는 그래요. 그래서 저도 그 길을 같이 가고 싶어요. 해보고 싶은 게 없진 않은데 저는 끼도 없고…(웃음) 일단 스포츠에 집중하고 싶어요.”
‘고참’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라인에 올라선 지금 후배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는 지 궁금했다.
“질문하지 않으면 방관하는 스타일이기는 한데…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끈기에요. 잘 하고 못 하고는 제가 해보니까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대중들의 시야에서 비교적 빨리 사라지는 이유가 ‘스포츠가 힘들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스포츠 현장에 나와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시작하게 되는 시기가 여성 아나운서들에게는 인생의 황금기에요. 그 시기 그 나이 대에 즐길 수 있는 걸 다 포기해야 하죠. 운동 선수와 비슷해요. 스포츠 스케줄에 다 맞춰서 하다 보니까.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그걸 참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많죠.”
이어서 그는 다시 자신이 후배들에게 끈기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물론 (그만 둔) 그 친구들이 끈기가 없는 것은 아닐 거에요. 비유를 하자면 터널을 다 지나지 않고 다 돌아간 격이죠.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 그 힘든 시기를 조금만 견디면, 스포츠를 알고 즐기게 되는 순간 이건 일이 아니게 되죠. 정말 재미 있어요. 그걸 못 누리고, 그 빛을 보지 못하고 간 게 너무 안타깝죠. 다 유능한 친구들인데….”
여러 방면에서 미디어의 조명을 많이 받는 반면 수명이 짧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롱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 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일단 심플한 답이 돌아왔다.
“선배들이 잘 해야죠”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입사했을 때보다 그런 풍토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결혼한 스포츠 아나운서가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 없었죠. 다른 팀으로 가거나 새로운 얼굴이 항상 들어왔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김)민아 선배나 (김)선신 선배 등 야구 팬들도 인정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이 결혼을 하고서도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여전히 야구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고 있고, 그만큼 노력하는 게 후배들 눈에도 보여요. 후배들 보기에도 존경스럽고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서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롤모델이 없으니까 '나도 저 때 되면 그만 두고 나가야 하나?', '나도 결혼하면 그만 둬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었고. 후배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후배들에게 제가 그런 역할이 되어줘야 하고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불안감을 없애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훌쩍 선배가 된 박지영 아나운서는 이제 막 스포츠 아나운서의 길로 접어든 후배들을 보는 일이 너무 즐겁다.
사진: 박지영 인스타그램 |
인터뷰 중 박지영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로서 매년 스포츠 현장을 다니면서 스스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는 아나운서로서 자신 만의 색깔을 찾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예전에 물어보면 ‘평범하다’, ‘색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톡톡 튀는 스타일도 아니고. 편하게 방송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나만의 색을 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이제 어느 정도 깊이는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박지영 방송을 보면 이런 게 좋다’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게. 나만의 색을 찾는다는 게 가장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색깔’에 대한 생각도 함께 전했다.
“제가 ‘메이저리그 투나잇’을 하면서 느낀 게 너무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선수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설위원과 풀어 간다든지 하는, 시청자들이 모르고 우리만 아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하나의 ‘색’이라고 생각해요. 말투 같은 게 튀어서 나오는 색이 아니라 ‘저 아나운서가 진행했을 때 조금 더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색을 찾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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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외모적으로 풍기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소 엉뚱한 성격인데다 상대방을 ‘무장 해제’ 시키는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자 색깔이다.
여자프로농구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바스켓W’는 그가 가진 매력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어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선수들 만났을 때 오히려 현장에서는 준비한 질문을 하기도 바쁘니까 서로 알아갈 시간이 없었어요. 숙소 탐방을 하면서 선수들이 털털하고 언니 같은 성격이라고 의외의 모습을 많이 봤다고 좋아했어요. 그 때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죠. 선수들과 이야기 할 때도 제 웃음 소리가 많이 호탕해서 선수도 같이 웃고 그러면서 풀리는 것도 많았어요”
그는 또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특유의 ‘애드립 상황’으로 프로그램을 부드럽고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저는 모르는데 PD님들이 일부러 그걸 모르게 짜고 하고 그러더라고요. 애드립 같은 게 나오게… 저는 그걸 굉장히 즐기는 편이에요. 오히려 제가 당하기도 당하지만 해설위원 분들도 그런 색이 하나씩 있어요. 김선우 위원님의 경우도 제가 평소에 말하는 투로 물어보면 (준비된 멘트가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쭉 알려주세요. 그래서 전 방송 전에 (김선우 위원이) ‘뭐 물어볼 거야?’라고 하실 때 질문을 알려드리고 실제 방송에서는 다른 걸 물어보기도 해요. 저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야 되나 봐요(웃음)”
이날 인터뷰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인터뷰라기 보다는 그냥 ‘수다’였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 만한 인터뷰였다. 그렇게 유쾌한 수다 같은 인터뷰 속에서 스포츠에 대한 흔들림 없는 애정과 신념을 지닌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박지영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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