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센터' 정은순 "후배들아 인생은 즐기되 코트에선 미쳐라"

임재훈 기자 / 기사승인 : 2018-12-18 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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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주년 특집 인터뷰-2] 1990년대 아시아 최고 센터...WKBL '그레잇12' 첫 주인공 선정
정은순 KBSN 농구 해설위원(사진: 스포츠W)
‘스포츠W’가 창간 1주년 특집 인터뷰 시리즈 두 번째 주인공은 1990년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센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센터’ 정은순 KBSN스포츠 농구해설위원이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지난 12는 자체 SNS 채널을 통해 언론사와 전,현직 감독, 해설위원의 투표로 선정된 한국여자프로농구 20년을 빛낸 '그레잇12(Great 12)'의 첫 주인공으로 정은순 위원을 선정, 발표했다.
1987년 3월 27일 인성여고 1학년 재학중이던 만 16세의 나이로 당시 한국 여자농구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된 정은순 위원은 국가대표로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우승,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 1997년 방콕아시아선수권대회 무패 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의 업적을 이뤘다.
1990년 실업 무대에 데뷔한 정은순 위원은 인성여고 동기이자 라이벌이 유영주와 사상 최초로 신인왕을 공동 수상했고, 1999년 8월 3일에는 WKBL 사상 첫 트리플더블(25득점 14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기록했다.
정은순 위원은 프로 출범 이후 삼성생명에서만 뛰며 1998 여름리그, 1999 여름리그, 2000 겨울리그, 2002 여름리그 등 4차례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은 세 차례(1998 여름리그, 1999 여름리그, 2000 겨울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이 됐다.
그의 WKBL 통산 기록(정규리그+플레이오프)은 133경기(4천460분30초) 출장 2천175득점 1천215리바운드 488어시스트 168스틸 220블록슛이다.
사진: WKBL
정은순 위원은 우선 ‘그레잇12’의 첫 주인공으로 ‘호명’된 소감에 대해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은퇴한지도 오래됐고, 지도자로 주목을 받은 것도 아니고...그런데도 아직까지 농구를 잘 한다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고요. 더군다나 '그레잇12'를 선발하는 분들이 농구 전문가 분들이신데 그런 점에서 더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가난한 시절 1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난 정은순 위원은 농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그렇게 관심을 받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면서 그 어린 나이에 농구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대회에 나가서 강한 승부욕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이후에는 하루하루 기량이 발전되면서 코치님들의 주목을 받았고, 코치님들이나 농구계의 주목을 받으니까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은 그냥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다. 난 농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농구를 시작하자마자 농구가 운명으로 받아들여진 셈이에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농구를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성인 농구 무대에서 10년 이상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정 위원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긴 슬럼프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다 할 슬럼프가 없었던 선수로 기억되는 선수였지만 그가 기억하는 인생 최악의 슬럼프는 농구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전인 고교시절 겪은 슬럼프였다.
그가 기억하는 자신의 농구 인생 최대의 시련은 그가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1987년에 찾아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치명적이었던 갑상선 항진증 판정을 받고 태릉선수촌을 나와야 했던 것.
"그 때는 선수촌 생활이 너무 싫어서 선수촌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하고 집에 왔어요. 숙소의 짐도 챙기지 않았어요. 태릉에서 나오니까 좋기는 한데 스카웃 제의가 뚝 끊겼죠. 다행히도 당시에 가연고를 맺고 있었던 삼성생명에서 저를 팀 숙소에 데려가서 1년간 치료를 해줬죠. 그래서 재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때가 저에게는 가장 큰 슬럼프였어요"
고교 시절 지독한 성장통을 겪은 정은순 위원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렇다 할 부상도 당하지 않았고, 슬럼프도 길게는 가지 않았다. 고교 시절 겪은 혹독한 시련 탓에 프로 선수로서 몸관리가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그에 맞게 철저한 자기 관리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갑상선 질환으로 선수촌에서 나오면서 좋기는 했지만, 저에 대해서 '끝났다'면서 스카웃 제의가 끊기고 관심이 사라자는 것을 경험한 것이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아프면 끝이구나'라는 사실을 좀 일찍 깨달았어요. 그래서 다른 것보다 몸 관리부터 철저히 했죠."
이와 관련해서 정 위원은 스스로 선수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것 외에 다른 한 가지의 자부심을 더 가지고 있었다.
사진: WKBL
"제가 몸에 칼을 대지 않고 은퇴한 거의 유일힌 선수에요. 저의 자부심은 농구 잘한 것보다 그거에요(웃음)"
고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오랜 기간 한국의 대표하는 센터로서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로서 활약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궁금했다.
지금은 '멘탈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이 일반화 되고, 구단은 물론 선수 개인이 별도로 심리 상담을 받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정 위원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도 않았고, 쉬운 일도 아니었다.
"저는 절제를 많이 한 편이에요. 남들 놀 때 운동하는 것으로 풀었죠. 오늘 경기가 끝났다면 노는 날인데 밤 문화를 즐긴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어요. 취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인 일이 없으니까요."
듣고 있으면서도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이 믿기지 않은 자기 절제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정은순과 같은 선수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약간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로서 국제 무대에서 '숙적'이었던 중국의 대표 센터 정하이샤와 실업 무대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당시 국민은행의 센터 조문주 가운데 누가 더 힘든 상대였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정하이샤 선수였죠. 그 선수는 농구 외적으로 잔머리도 많이 썼어야 했고, 동료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수비해야 하는, 혼자서는 막기 어려운 선수였어요."
정은순 위원은 7살 많은 언니인 조문주에 대해서는 치열한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그저 훌륭한 선배라는 기억이 강해 보였다.
"문주 언니한테는 제가 그냥 까분거죠. 어린 나이에...(웃음) 일단 문주 언니는 신앙심이 강한 선수였고, 선수로서 리더십이 좋았던 선수였어요. 제가 그렇게 대들고 싸우고 했지만 그걸 그저 스포츠로서 받아들이고, 경기장 밖에서 저를 포용해 주는 훌륭한 선배였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질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질문을 그래도 던져봤다. 선수 시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어떤 경기인지를 물었다. 이런 식의 질문에는 보통 이기고 영광스러웠거나 감격스러웠던 답변이 나오기 마련인데 정은순 위원의 답변은 기자의 예상을 비웃듯, 전혀 다른 답변이었다.
"브라질과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이었어요. 제 엉덩이가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늘어나고 해서 통증이 어마어마하게 심했어요. 테이핑을 하고 유니폼을 입어도 부어오른 것이 티가 날 정도였어요.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죠. 그날 2차 연장까지 가서 패했는데 제 엉덩이만 괜찮았어도 이겼을 거에요. 정말...(웃음) 저는 지금도 아쉬워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고, 동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그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현역 농구 전문가들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을 역대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꼽고 있다. 당시 정은순은 그 중심이었고, 그의 엉덩이만 무사(?)했다면 한국 여자농구는 1984년 LA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 여자프로농구에는 박지수(청주 KB스타즈)라는 걸출한 센터가 프로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평소 농구 해설자로서 정은순의 해설을 듣고 있자면 박지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현역 시절 자신이 짊어졌던 운명을 현재 짊어지고 있는 박지수에게 평소 많은 조언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은순 위원은 ‘당연히 애정이 많죠’라면서도 개인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 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따로 이야기는 안 해요. 그러기에는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고…(박지수가 저한테 칭찬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제가 해설하는 내용을 듣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되고 하니까 그러 부분을 보완해서 칭찬을 받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현역 은퇴 당시의 이야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정은순 위원은 2002년 겨울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당시의 나이는 32세. 현재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한 유부녀로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30세만 되면 은퇴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3년 계약 기간 중 1년 만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코트를 떠나게 된 정은순 위원은 용인실내체육관에 걸려 있는 박정은(전 삼성생명 코치), 이미선(현 삼성생명 코치)의 영구결번 유니폼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영구결번에 대한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당시 활약상이나 정은순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 여자농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입자를 떠올릴 때 영구결번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수 정은순’의 영구결번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구결번…아쉽죠. 그것도 다 제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삼성생명 구단에서 저의 영구결번도 결정 나 있었고, 역대 최대 규모의 은퇴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은퇴를 번복한다는 오보가 나오면서 상황이 안 좋게 됐어요..”
하지만 정 위원은 당시 은퇴 결정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은퇴를 해서 세상물정을 배우고 알게 된 것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역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한참 동안 대중들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던 정은순 위원은 해설자가 되어 다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수시설 TV 인터뷰에서 정 위원의 말솜씨는 ‘달변’이었다. 하지만 해설자로 마이크를 든 이후에는 어딘지 어눌한 느낌도 들고, 종종 지나치게 흥분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에 대해 정은순 위원 본인은 소극적인 성격 탓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경기에 대한 깊은 몰입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경기에 몰입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여자프로농구 경기 중계방송을 보다 보면 정 위원이 해설하는 모습을 찍어 보여주는 ‘벤치캠’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 위원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청자들이 즐거우니 제작진은 정 위원의 불평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하다.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농구 팬들 가운데는 ‘농구대잔치’ 시절보다 여자 프로농구 출범 이후 여자농구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든 현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다. 도대체 여자농구는 뭘 잘못했을까.
정은순 위원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현실론’을 내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선수들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세대가 바뀌면서 절실함이 없어진 것으로 보여져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그런 절실함 갖게 하기 위해 예전처럼 혹독하게 자극을 주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사회 환경이나 여러 환경이 선수들에게 프로의식을 갖게 하기에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이에요. 그래도 프로선수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은 어떻게 해서든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박혀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해설자가 아닌 지도자로서 프로무대에 설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별 주저함 없이 ‘이제는 하고 싶어요’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배구의 박미희 감독(흥국생명)이 해설을 10년을 하다가 감독으로 가셨더라고요. 저도 따로 지도자 교육을 받는 것 보다는 현장에서 이렇게 해설을 하면서 지금의 흐름을 익히고 그러다 기회가 오면 (지도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잠시 화제를 가정으로 돌렸다.
현재 정은순 위원은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딸이 있다.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면 딸도 농구를 잘 할 수 있는 DNA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 봤다. 실제로 정 위원의 딸은 현재 고1의 나이에 신장이 180cm로 신체조건으로는 충분히 엄마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자질을 타고 났다.
“농구를 시켜보고 싶었죠. 농구를 했다면 키도 더 컸겠죠. 근데 그게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강제로 시켜도 보고 했는데 신체적인 조건이 돼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엄마 나 안 할래’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정 위원 입장에서 분명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 위원 자신이 청소년기에 누리지 못한 소소한 행복을 경험하는 딸을 보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가졌던 결핍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친구 같은 딸이 좋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은퇴 이후 너무 많은 나이 탓에 출산을 포기하는 동료, 후배들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고1이 되다 보니까 요즘엔 딸이 저를 귀여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를 친구처럼 대하더라고요(웃음)”
사진: WKBL
농구인으로서 궁극의 목표 내지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정은순 위원은 단순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한 마디를 던졌다.
“농구장에 계속 있고 싶어요 떠나고 싶지 않아요. 지도자를 하던, 관계자가 되던 농구로 인해서 제가 받은 사랑과 혜택, 재능을 계속 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정 위원은 이어 후배 선수들에게 오늘을 사는 프로선수의 자세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보냈다.
“예전의 저처럼 할 것을 안 하면서 농구에 미치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다 누리고 즐기고 하는 가운데서도 코트에 발을 디딘 순간만큼은 미칠 줄 아는 것이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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