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우들도 뭘 할지 모른다?...연남장 캬바레 즉흥극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7-18 16: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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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나날이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뮤지컬 전문 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극단의 단원들과 작가는 오늘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뇌 중이다. 연남장에서 공연될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는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무책임하게 스트레스 없이 공연을 만드는 것. 관객과 함께 만드는, 혹은 다 떠넘기는 뮤지컬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들은 거침없이 작품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즉흥 뮤지컬로, 연남장 캬바레 공연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창작진으로는 김태형 연출, 허안 작곡, 최수정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 사진=아이엠컬처

 

공연이 진행되는 연남장의 1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낮에는 브런치 카페로 운영되지만 저녁이 되면 공연장으로 활영된다. 이러한 장소에서 진행되는 공연 ‘연남장 캬바레’의 제목 중 ‘캬바레’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성인 나이트클럽이 아니다. 술과 음식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한 형식으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공연의 좌석은 무대석, 테이블석, 바테이블석으로 나뉘는데 특히 무대의 테두리와 연결되어있는 무대석의 경우에는 관객이 앉아 있는 테이블과 배우가 활동하는 범위의 경계가 거의 없다시피해 눈앞에서 배우들이 앉고 누우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보편적인 공연에서 금지하는 대화, 촬영, 음식, 음주를 모두 허용하는 파격적인 룰을 제시하고, 공연장 한켠에서 주문을 받아 음식과 술을 판매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연에 심하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연남장 캬바레’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외에도 뮤지컬 ‘아이위시’, 이영미의 ‘Song for Mee’, 주민진의 ‘The Ride of My Life’, 김려원의 ‘ON-LY A ONE’을 포함해 총 5개의 컨셉을 지닌 쇼가 요일별 스케줄에 따라 로테이션으로 진행된다.

 

▲ 사진=아이엠컬처

 

공연장 벽면에 걸려있는 ‘Every show’s a first today’(모든 쇼는 오늘이 처음이다)라는 문구처럼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회차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 작품의 주제를 결정하는 첫 키워드조차도 창작진이 정하지 않는다. 그날의 회차의 객석에서 누군가가 외친 한 가지의 단어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자가 관극한 회차에서는 객석에서 ‘장마’라는 키워드가 제시됐다. 이에 따라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정장마’로 정해지고, 장마에서 착안된 제습기를 주제로 ‘제습기가 필요해’라는 제목을 가진 넘버가 작품의 문을 열었다. 이후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이제습’이 되며 대략적인 작품의 틀이 잡혔다.

마찬가지로 서사의 짜임도 무대에서 즉흥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A배우가 B배우에게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물으면 B배우가 되려 ‘내 나이가 몇인데?’라고 받아치고 A배우가 다음 대사를 치며 B배우가 맡은 배역의 나이를 즉석에서 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정보는 자연스레 작품의 공식 설정이 된다.

이런 방식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은 극을 진행하는 중 ‘사실은’으로 운을 떼는 대사들로 백스토리를 채워넣어 메꾸는 식이다. 밴드와 함께 작가 역을 맡은 창작진이 공연에 동반해 내레이션을 맡아 대략적인 전개를 리드하고 조정하는 것도 극을 정돈하는데 도움을 준다. 

 

▲ 사진=아이엠컬처

 

기자가 관극한 회차의 경우에는 히키코모리의 갑작스러운 반강제 소개팅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나름의 울림을 주는 한국형 판타지 초능력자 로맨틱코미디가 되어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다만 공연 전 객석 사이를 오가면서 관객들과 인사하던 배우 중 한명이 “우리도 뭐 할지 몰라요”라고 말하며 웃은 것처럼 작품을 소화하는 배우들조차 어떻게 극을 전개 시킬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기 때문에 돌발상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배우들의 임기응변에 모든 것이 달려있기 때문에 간혹가다 배우가 무리수를 던졌다 싶으면 다시 회수해서 수습하는 멋쩍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막막한 상황에서 기가 막힌 파훼법을 찾아낸 순간에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박수가 쏟아진다.

앞길을 짐작할 수 없는 즉흥극이 가진 특유의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극단의 이름 ‘죽이 되든 밥이 되든’처럼 어떻게든 극을 만들어나가며 완성도 높은 가창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한세라, 홍우진, 김지훈, 이정수, 김승용, 박은미, 정다희, 김태형, 장우성 등이 출연하고 오는 8월 31일까지 연남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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