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오드 |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외국인이 본인의 이름을 ‘하늘’이라고 소개했다. 한국말을 잘하시는 외국인 분들이 많이 계셨다. 케이팝의 영향도 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해외의 낯선 관객들이 아니라 그동안 만나왔던 관객들처럼 느껴졌었다.”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은 10대 시절을 바친 스타가 범죄자로 추락하자 자신과 같이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찾아 나선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오세연 감독의 데뷔작이며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월드프리미어로 첫 공개 되었다.
스포츠W는 ‘성덕’ 개봉 하루를 앞둔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모처의 카페에서 오세연 감독과 만남을 가졌다.
처음으로 만든 영화의 첫 상영을 무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게 된 오세연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꿈에 그리던 영화제였다고 운을 띄웠다. “부산 사람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매년 영화를 봐서 꿈에 그리던 영화제 였는데 첫 상영을 하게 돼서 감회가 정말 남달랐다.”
“매번 티켓팅 열심히 하고 영화 열심히 보러 다니고, 고등학생 때는 처음 보는 감독님한테도 무조건 사인 받으러 다니고 그랬던 사람인데 이제는 나한테 누군가가 사인을 받으러 오고 … 그리고 ‘성덕’이 포함된 와이드 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부문이 티켓이 빨리 매진되는 편은 아닌데 빠른 시간에 전석 매진이 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으면서 신기했다.”
▲ 사진 : 오드 |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은 시작에 불과했다. ‘성덕’은 월드 프리미어를 시작으로 국내의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는 한편, 우디네극동영화제와 런던아시아영화제에도 초청되며 오세연 감독은 처음으로 유럽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에 직접 방문해 상영관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한 오세연 감독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 경험을 전했다.
“정말 신기했던 게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외국인이 본인의 이름을 ‘하늘’이라고 소개했다. 한국말을 잘하시는 외국인 분들이 많이 계셨다. 케이팝의 영향도 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해외의 낯선 관객들이 아니라 그동안 만나왔던 관객들처럼 느껴졌었고, ‘이런 영화가 이탈리아에도 필요하다’ 이런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했다.”
‘성덕’으로 인해 오세연 감독에게 찾아온 변화 중 하나는 본인이 덕질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영화 속에서 조승우 배우를 만나기 위해 티켓팅을 시도하던 감독은 이제 티켓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감독의 영화 ‘성덕’도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다.
“아직도 신기한 일인 것 같고 재미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여러 지역에서 한 달에 최소 한 번, 많게는 서너 번씩 영화를 상영 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관객분들이 어떻게 영화 보시는지 궁금해서 영화를 같이 보려고 하는 편이라 티켓팅에 같이 참전을 하는데, 영화가 매진이 빨리 빨리 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티켓팅 성공했다고 자랑하면 팬분들이 엄청 화를 내시더라. ‘감독님은 컴퓨터로 보면 되지 왜 굳이 우리 자리를 뺏냐’, ‘무릎에 앉혀달라’ 이런 얘기들도 하시고 그래서 이런 상황까지도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신기한 체험 같은 기분이었다.”
▲ 사진 : 오드 |
영화 속 오세연 감독은 열 명의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경청하는 인터뷰어의 입장에 있었다. 주목을 많이 받는 작품인만큼 개봉이 가까워질 수록 언론사와의 인터뷰가 잦아지면서 어떻게 보면 감독은 영화에서와는 정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최근에도 그렇고 계속 인터뷰를 많이 당하는 입장에 있었다. 난 사실 말하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는 자제해야 되는 말들이 있고, 맞장구 치고 싶어도 속으로 삭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근데도 이제 그런 것들이 삐져나와서 영화에서도 ‘맞아, 맞아’ 이렇게 계속 추임새를 넣었는데 인터뷰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워서 좋다.”
오세연 감독이 ‘성덕’을 만들게된 계기는 감독의 주변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감독은 “이 사건을 겪고 너무 충격이 커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너무 재밌다’, ‘영화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그게 동력이 돼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었다.”
“주변에서 응원도 많이 해줬었고, 소재가 워낙에 또래 친구들이 많이 공감하고 재밌어 하는 소재다 보니까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나는 자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자신 있게 ‘이건 된다’고 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 사진 : 오드 |
‘성덕’은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는 극 영화와는 달리 감독 본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품을 연출하고 제작하는 과정은 단순한 창작의 고통과는 결이 다른 시련이 있었다.
“내가 직접 출연하고 내 생각의 변화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까 처음 영화를 기획하고 시작할 때는 오히려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까지 힘든 과정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작업 하면서는 자기 검열도 많이 하게 되고, 계속 내 자신을 알아봐야 되는데 나도 내 자신을 모르겠어서 고민이 많았다.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또한 범죄자가 된 연예인을 좋아했었던 과거의 자신을 끄집어내 남들 앞에 보이는 작업은 두려운 감정과 고민을 동반할 수밖에 없지만, 오세연 감독이 안고 간 두려움과 고민은 다른 쪽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몇분짜리 단편 영화 하나 만들어본 적 없었던 신인 감독에게 있어 장편 영화 제작이란 그 자체가 대담한 도전이었다.
“학교 과제 외에는 단편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내 의지로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 하고 만드는 그런 워크숍이 아니라 정말 ‘연출 입문’, ‘3분짜리 세 명이 나오는 영상물을 만들어 보세요’ 이런 것밖에 안 해봤었다. 이제 편집 할 때쯤 가니까 ‘너무 간이 컸다’, ‘처음부터 긴 호흡의 영화를 하려고 했던 내가 너무 밉다’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었다.”
▲ 사진 : 오드 |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도 물론 고민되는 부분들이 되게 많았지만 아무래도 첫 영화다 보니까 이 긴 레이스를 완주해본 경험이 없어서 ‘이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컸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거의 한 두세 달 정도 촬영도 편집도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가 한 두 번 정도 있었는데 한 번은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절이었고, 한 번은 이제 정말 편집을 해야만 하는 그런 시기였는데 못하겠더라.”
‘편집을 하기 위해 거의 한 2년 넘게 촬영한 것들을 쭉 보려니까 그게 일단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약간 완벽주의자다. 지난 시절에 온갖 실수들을 하면서 촬영했던 것들을 보려니까 그게 너무 두려웠고, 나의 수준을 직접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또 편집을 하면 영화라는 게 완성되는 건데 그러면 정말 이것으로 끝나는 거고 ‘이게 20대 초반의 오세연의 전부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마무리를 하기가 또 싫은 거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겠다’ 이건 또 아닌데 그래서 이제 뭔가 영화를 완성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결국 용기를 갖게 된 건 마감 때문이긴 했다. 마감이 영감이라고 (웃음) 영화제를 내봐야 되니까 하기는 했는데 그게 나한테는 되게 두려운 일이었다. 첫 영화를 만드는 거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