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 중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사계절 중 봄과 여름은 지상에서 가을과 겨울은 지하에서 남편인 하데스와 보내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201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은 2019년 브로드웨이 진출 후 제73회 토니어워즈 8관왕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2021년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올린 후 올해 두 번째 시즌을 개막했다.
▲ 사진=에스앤코 |
지난 29일 스포츠W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샤롯데씨어터에서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 역으로 출연 중인 최정원 배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정원은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시카고’, ‘맘마미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렌트’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고,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대한민국 1세대 뮤지컬 배우다. 이번 ‘하데스타운’에서는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오르페우스에게 지하세계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헤르메스’ 역을 맡았다.
최정원은 이번 작품에서 맡게된 배역 헤르메스에 대해 “지금의 제가 딱 해야 할 나이인 것 같다”고 말하며 ‘하데스타운’은 운명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다면 이 감정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고,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면 좀 늦었을 것 같다. 제가 하는 모든 헤르메스의 대사가 마치 최정원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진다. 힘들어하는 최정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말을 제 입으로 오르페우스나 에우리디케에게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제게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인 것 같다.”
참여하고자 하는 작품을 정할 때, 바로 직전에 했던 배역과 너무 비슷한 배역은 피하려고 한다고 밝힌 최정원은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가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최정원이 이런 것도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역할도 전부 해보려고 한다. 오디션도 많이 보는데, 물론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데스타운’은 당당히 오디션을 봐서 뉴욕의 오리지널 컴퍼니에 컨펌 받고, 거의 4~5개월을 기다렸다가 연락받은 작품이다.”
최정원은 이번 ‘하데스타운’ 출연을 통해 한국에서 최초로 헤르메스를 연기한 여성 배우가 됐다. 젠더프리 캐스팅(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의 가장 큰 장점에 대해 그는 “역할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꼽고 “엄마로서의 경험을 갖고 연기하면서, 다른 성별의 배우와는 또 다른 느낌의 헤르메스가 탄생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생긴다. 이게 젠더프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사진=에스앤코 |
무대에 선 최정원의 헤르메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건 백발의 포마드 헤어스타일이다. 그는 이번 헤르메스의 외적 디자인에 대해 여자인데 남자처럼 보이도록 하는게 아니라 여성스럽지도, 남성스럽지도 않게끔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성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제 안에서 경험한 것에서 나오는 헤르메스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아주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헤르메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본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게 헤어 스타일에도 반영된 것 같다.”
헤르메스의 세세한 스타일은 최정원을 비롯해 연출, 분장팀, 프로듀서와의 회의를 통해 탄생했다. 헤르메스의 머리를 백발로 설정한 것도 그의 연륜과 경험을 반영해 만들어진 결과다.
“원래 계획 중이던 건 비욘세나 제니퍼 로페즈 같은 여전사 스타일이었다. 근데 제가 이미 비슷한 스타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 번도 안 해본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또 제가 경험이 많은 배우라 연출님이 꼭 긴 루프를 전부 경험한 것처럼 표현해 달라고 해서 연기의 방향은 자유롭게 풀어놓지만, 머리는 꼭 백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정원은 헤르메스라는 배역을 연기하면서 무대에서 정해진 것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하면서 행복감을 전하기도 했다.
“연출님이 제가 진짜 잘할 거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헤르메스는 두 연인의 만남이 처음인 것처럼 표현해도 되고, 이미 수백 번 반복된 순환처럼 표현해도 된다. 이 대사를 하면서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화를 내도 된다. 이런 부분 덕에 제가 어항 속 물고기가 아니라 바다에 나간 작은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대본을 보는데 아이디어가 막 떠올라서 옆에 다 적게 되더라. 그걸 요즘 공연 중에 실천하고 있다”
▲ 사진=에스앤코 |
이야기의 안내자이자 해설자인 헤르메스에 따스한 정을 더해 표현하는 최정원은 이야기의 두 연인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자신의 아이들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며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신의 모습을 말했다.
“제가 신이라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신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 주는 신이고 싶다. 마음이 힘들 때 조언만 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신. 그런 신이 제 주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 우리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나. 이 작품에서 제가 기도할 때 바라던 신이 되고 싶었다.”
헤르메스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닌 만큼 고난도의 연기와 노래를 요구하는 배역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하데스타운’의 재연은 거의 대부분의 초연 캐스트가 참여했고, 최정원을 포함해 3명의 주연 배우만이 새로 합류했기 때문에 더욱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최정원은 “첫 연습부터 공연 올라가기 직전까지 초연에 참여한 배우들이 너무 부러웠다. 첫날 연습을 하는데,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대본도 안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라”라고 말하며 이번 배역을 준비하면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그동안 모든 작품을 통틀어 헤르메스가 가장 대본 양이 많은 것 같다. 화음을 넣든, 나레이션을 하든, 거의 모든 넘버에 참여해서 두세 곡을 제외하면 빠지는 게 없었다. 특히 중간에 끼어들어가는 부분이 많고 유사한 대목이 많아서 헷갈렸다. 너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데스타운’ 연습을 하고 온 후 ‘시카고’에 새로 합류한 정선아 배우한테 진짜 잘해줬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서.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 작품과 오랫동안 해온 작품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처음 입문한 후배들에게 더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 저는 10년이 걸렸던 걸 1년 안에 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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