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사람들도 나미처럼 겉으로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속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행동을 망설이는 나미의 모습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공감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우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지옥만세’는 천국을 꿈꾸는 대신 지옥에 굳건히 서기로 한 쏭남과 황구라의 여정을 담았다.
극 중 주인공 ‘나미’를 연기한 배우 오우리는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스포츠W와 만남을 가졌다.
▲ 오우리 [사진=찬란] |
특히 오우리는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을 수상하며 영화 제목이 아닌, 배우의 이름으로 상을 수상했다.
오우리는 “제가 잘해서 받았다기보다는 감독님이 저를 잘 캐치해 주셨다. 동시에 저보다는 제가 맡은 나미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캐릭터가 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신났던 것 같다.”며 영화 속 나미와 임오정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개봉 전후로 평단과 대중의 좋은 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지옥만세’는 독특하고 과감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영화답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우리 역시 이에 대해 짚고 넘어가며 “그래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본인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서 많이 공감하시기도 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가져주시는 게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 '지옥만세' 스틸 [사진=찬란] |
‘지옥만세’는 신인 배우를 주연으로 적극 기용해 화제를 모은바 있다. 임오정 감독은 200명 정도의 신인 배우들의 프로필을 검토했고, 그중 “익숙한 듯 하지만 새롭고, 캐릭터의 입체성이 잘 드러나는”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를 선택했다.
“필름메이커스라고 배우들이 자주 사용하는 오디션 사이트가 있다. 12시에 마감인 오디션 공고를 11시쯤에 발견하고 프로필을 넣었는데, 영화 측에서 제 이미지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당시에 코로나가 유행했던 시기라 비대면 오디션을 위해 독백 영상을 찍어달라고 했었다.”
앞서 스포츠W와 인터뷰를 진행한 임오정 감독은 오우리와의 비대면 오디션에 대해 언급하며 당시 그가 선보인 2분 30초 가량의 독백에 극찬한 바 있다.
“비대면 오디션에서 나미가 자살을 시도하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채린의 소식을 듣고 선우에게 걔 인생에 기스 한번 내러 가보자고 주장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그 장면이 적힌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제 평소의 말투와 모습을 떠올리면서 자유롭게 연기 했었다.”
▲ 오우리 [사진=찬란] |
‘지옥만세’의 어떤 점이 그를 사로잡았을까. 오우리는 극 중 가장 마지막 대사 ‘웰컴 백 투 헬이다’라는 대사와 나미라는 캐릭터 자체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 대사를 보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참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미라는 사람 자체가 제가 이전에 안 해봤던 캐릭터여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걸 표현할 수 있나? 하는 의문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극 중 나미는 괄괄하고 거친 겉모습을 지니고 있는 만큼, 언행에 있어서도 거침없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부분을 연기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어려워 보여서 걱정한 것보다는 연기하면서 ‘너무 많이 욕하는 것 같은데? 과한 건 아닌가?’하는 고민과 동시에 듣기에 거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중학교때 ‘너 욕 되게 못하잖아’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그 한을 푼 느낌이었다.”며 웃어보였다.
그간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속으로 삼키는 인물을 주로 연기해 온 오우리에게 있어서 나미라는 캐릭터는 매력적이면서도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노력에 대해 그는 “예전에는 지금의 나로서 생각하고, 상황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었다면, 나미는 초등학생 때 저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나미는 초등학생 때 저랑 되게 비슷하다. 그 때는 직관적으로 움직이고 사람들 앞에서 보여지는 걸 좋아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좀 차분해졌다. 그렇지만 요즘은 ‘지옥만세’를 통해 예전의 모습을 다시 연기하다 보니까 섞여서 과거와 현재의 제 모습이 섞여있는 것 같다.”
▲ '지옥만세' 스틸 [사진=찬란] |
초등학생 때의 자신이 떠오른다고 한 오우리의 말처럼, 극 중 나미는 어린아이처럼 쉽게 설득당하고 판단을 내릴 때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성적인 성질과는 거리가 먼 나미에 대해 “사실 저도 어렸을 때 친구들 또래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에 이기적 선택을 할 때도 있었고, 실수를 하거나 평소 나보다 더 이상한 짓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미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지는 않았다.”며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을 설명했다.
“다만 채린이가 나미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논리를 찾기 어려웠다. 영화에서 나미가 ‘용서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는 대사를 하지 않나. 저도 나미처럼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이랑 같이 관객들한테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또, 나미는 강한 척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기에 관객에게 공감과 이입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도 나미처럼 겉으로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속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행동을 망설이는 나미의 모습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공감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우리는 이번 ‘지옥만세’를 통해 임오정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그는 “감독님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연극을 좋아하고, 그래서 배우들의 앙상블을 중요시 한다는 얘기를 하셨다. 이전의 현장에서는 내가 하는 연기만, 내 눈빛과 내가 느끼는 생각들에 집중했었지만 임오정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진짜인 것처럼 더 넓게 활용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며 이번 작업을 통해 새롭게 얻게된 것을 설명했다.
▲ '지옥만세' 스틸 [사진=찬란] |
감독이 중시했던 ‘앙상블’은 ‘지옥만세’ 촬영 현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오우리는 “극 중 나미랑 선우가 책상 옆에 숨어서 집단에 있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 몰래 훔쳐보는 장면이 있다. 따로 찍은 게 아니라 실제로 숨어있으면서 옆에 선배님들이 연기하는 걸 지켜봤는데 그걸 보면서 저것이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앙상블이구나를 느꼈다.”며 감탄했다.
‘지옥만세’는 나미와 선우가 채린에게 복수하러 가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오우리는 영화가 담고 있는 나미와 선우의 여정 중,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서울로 떠나기 직전 버스 정류장에서의 장면을 꼽았다.
“소문과 다른 선우의 가정을 목격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너 왜 얘기 안했어. 애들이 너 구라쟁이라고 하는 거 아니였음 아니라고 얘기하면 됐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미로써 내가 너무 일부분만 보고 이 사람을 판단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나미는 어리석기도 하고 자기중심적인 시선이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선우를 통해 나미의 그러한 시선을 조금씩 깨나간다고 생각한다.”
극 중 나미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캐릭터가 선우인 만큼, 나미를 연기한 오우리도 선우를 연기한 방효린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우리는 방효린과 오디션 장에서 처음 마주친 기억에 대해 말하며 나미와 선우, 오우리와 방효린의 닮아 있는 관계성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신기했던게 나중에 들어보니까 저는 나미가 선우를 보듯이 보고 있고 효린 언니는 선우가 나미를 보듯이 보고 있었다. 처음에 저는 언니가 말도 조곤조곤하게 해서 유약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도와줘야하고 끌어줘야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반대로 저는 거침이 없고(웃음). 근데 효린 언니는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 약하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닌데?’ 라고 반응했지만, 점점 서로를 알아가면서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 '지옥만세' 스틸 [사진=찬란] |
오우리는 방효린을 알아가며 그를 ‘강한 사람’이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방효린에 대해 멘탈이 강하고, 마인드가 좋다고 말한 오우리는 그와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배우니까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내가 실패한 건지, 잘못된 게 아닌지 생각하지 않나. 효린 언니랑도 관련된 얘기를 했는데 언니가 저한테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사람마다 어떤 시기가 있어’ 하고 조언해줬다. 그 외에도 저한테 명언을 정말 많이 날렸다. 또, 현장에서 감독님이 디렉팅을 하시면서 연기에 대해 새로 방향을 요구할 때도 있지 않나. 그럴 때 저는 ‘내가 틀렸어, 어떡하지?’하고 생각한다면 효린 언니는 피드백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연기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흐려버리지는 않는다. 똑 부러지는게 있더라.”
오우리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단편 영화 3편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 약으로만 작용할 것 같았던 연출 경험은 의외로 어려움을 주는 부분도 존재했다.
“연출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은 시야를 넓게 가져야하지 않나. 그래서 감독을 했다가 다시 배우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맡은 인물에만 집중하는 게 헷갈린다고 친구랑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감독과 배우는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다르다고 느꼈다.”
▲ 오우리 [사진=찬란] |
감독 오우리로서 배우 오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는 “좀 더 다양한 역할들을 많이 해봤으면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막 장편 영화의 주연을 두 번 맡아본 그는 여전히 다채로운 인물과 이야기에 목이 마르다. 그 중 그는 연기해 보고 싶은 장르로 로맨스를 꼽았다.
“단편 영화랑 독립영화에서 많이 했었던 캐릭터들이 사회적인 이야기, 메시지를 주는 캐릭터인 경우가 많았다. 로맨스를 하게 되더라도 퀴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었고. 그래서 그냥 사랑만 다루는 이야기는 어떤 건지 궁금하다. 그 깊이를 한번 경험 해보고 싶다. 로맨스 중에서는 로코가 좀 더 연기하기 편할 것 같은데, 그래서 오히려 멜로를 해보고 싶다.”
어느덧 데뷔한지 6년이 지난 오우리는 그간 영화에만 참여해 왔다. 그는 “사실 일부러 영화만 고집했던 건 아니다.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다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제가 영화에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었다.”며 새로이 도전해 보고 싶은 매체로는 OTT를 꼽고, 한 캐릭터를 길게 연기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우리는 극장과 영화제에서 ‘지옥만세’를 만날 관객에게 인사를 남겼다.
“저는 나미가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서 ‘지옥만세’와 같은 길을 걸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약간 나쁜 면이 있지 않나. 그래서 죽고 싶더라도 같이 나의 나쁨을 인정해 줄 친구 한 명이 있고, 돌아와줄 친구가 있다면 지옥이라도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