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오드 |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영화 ‘성덕’의 제작 과정은 2019년 정준영 등 불법촬영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을 계기로 기획을 시작해 2022년 9월 막바지 개봉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고향은 부산이지만 학교는 서울에 위치해 있는 오세연 감독은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친구들이 부산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포항, 창원에도 있었다. 여러 지역들을 오가면서 찍었는데 영화를 실질적으로 촬영하는 기간 동안에는 부산에 1년, 서울에 1년 이런 식으로 있었다. 그래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찍었고 실제로 영화도 기행문처럼 나온 것 같다.”
기행문처럼 쓰인 영화에는 유독 기차가 많이 등장한다. 오세연 감독은 많고 많은 교통수단 중 굳이 기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학창시절 추억을 꺼내서 설명했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여행처럼 찍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덕질 할 때도 부산에 사는 중학생이었으니까 좋아하는 가수의 스케줄 때문에 서울, 울산 등등 다양한 지역들을 기차를 타고 오갔다. 그 시절에 기차를 되게 자주 탔던 경험이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기차를 타게 됐다.”
“그 시절과 지금의 마음, 또는 그 시절과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게 재밌더라. 씁쓸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기차를 타면서 하는 생각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그전에는 기차만 타면 설레고, 긴장되고, 두근거리고 그랬다면 이제는 슬프기도 하고 … 그런 감정이나 상황들이 변화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 사진 : 오드 |
‘성덕’은 관객석에서 시시때때로 웃음소리가 터져나올 만큼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오세연 감독은 작품을 기획했을 때부터 이 영화는 웃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원래는 내 자신이 진지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진지한 영화, 서정적인 영화를 찍을 거라고 상상했다가 계속 영화를 쌓아올리다보니 웃겨지니까 이게 이래도 되나 싶고, 괴리감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웃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했었던 것 같다.”
오세연 감독의 재치있는 유머 감각은 연출 방식과 인터뷰 내용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영화 전반에 깔리는 나레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일기장, 편지 등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독의 수려한 글 솜씨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이 왜 꼭 다큐멘터리 영화여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일단 내가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라서 (웃음) 나한테는 영화라는 게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되게 많았다. 내가 성공한 덕후였고, 이제 그 시절의 영상 자료들도 되게 많았고.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에 훨씬 용이한 조건이었던 것 같다.”
“인터뷰 집을 낼 수도 있었지만 인터뷰이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말을 할 때의 표정들 또는 제스처들에서 오는 그런 감정적인 표현 방식이 잘 보였던 것 같아서 팬들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그 면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책도 나오긴 한다. 10월에 ‘성덕 일기’라는 제목으로 이봄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성덕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로 썼던 일기들, 제작기와 인터뷰, ‘성덕’이라는 영화와 덕질에 대해서 쓴 에세이 이렇게 3개의 챕터로 엮었다.”
▲ 사진 : 오드 |
감독은 직접 쓴 나레이션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나레이션 중, 많은 사람들이 감동 포인트라고 꼽았던 나레이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그 나레이션을 들으면 가끔씩 뭉클하다. 스스로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나레이션이 군더더기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때의 감정들을 잘 살려서 쓴 것 같다”
그동안 K-POP의 팬덤이라는 주제를 던졌을 때,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팬덤에 속해있는 각자의 모습이 아닌 열광하는 군중을 떠올리는 것이 보편적이다. 오세연 감독은 ‘성덕’을 통해서 ‘팬덤’이라는 집단이 아닌, ‘팬덤’에 속해있는 개개인을 비추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를 밝혔다.
“팬덤이라는 것이 꼭 긍정적으로만 비춰지지는 않지 않나. ‘빠순이’라는 말도 많이 쓰였고, 대부분 어린 여성들로 구성이 되어 있으니까 무시당하는 경향이 많이 있었는데 ‘팬들이 이렇게 복합적인 생각을 하고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합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단톡방 사건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이다. 팬이 아니었던 대중들은 그 사건을 보고 그냥 손가락질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팬들은 그 뒤에 남아 있는 상처나 다양한 생각들이 있으니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또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팬들이 가장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팬들한테 약간의 위로 또는 약간의 웃음을 주고 싶었다.”
▲ 사진 : 오드 |
보편적으로 젊은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는 팬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덕’인 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열 명의 인터뷰이는 모두 여성으로 이뤄져있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의 팬이었던 입장으로 인터뷰에 응한 아홉 명의 인터뷰이는 감독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모두가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은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구성된 게 맞다. 아무래도 영화에 나오는 출연진들 자체가 나와 원래부터 친구였거나, 동료였거나 어쨌든 지인이었던 관계들인데 지인이었던 사람들로 구성을 하게 된 건 좀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서였다.”
“꼭 반드시 여성만을 섭외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 연예인 또는 공인들이 범죄나 사건 사고를 저지른 경향이 많지 않나. 그러다 보니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의 팬이었던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양성을 위해서 남성 인터뷰이를 섭외했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초반에는 들었는데 나중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K-POP 산업을 주로 소비하고, 이끌고 있는 것은 여성 팬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팬덤은 시대를 거쳐가며 꾸준히 멸시당하고 희화화 당하는 입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팬덤에 속해있었고, 팬덤에 속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해 왔던 오세연 감독은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전했다.
“사업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영향력이 큰 소비자이기도 한데, 좋아하면 을이 되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은데 언젠가부터 다른 이들도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덕질이라는 것 자체 또는 팬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을로 취급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요즘 새로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들을 봐도 명확하게 젊은 여성들을 타겟팅을 하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이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여성 팬덤이라는 집단이 가진 위상들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좀 더 사회적으로 폄하하는 시선이 좀 더 사라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이 연예인 또는 아이돌이라고 해서 왜 그렇게 무시당해야 되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