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젠틀맨스 가이드’ 정상훈 “1인 9역, 관객이 헷갈릴 때 가장 기분 좋죠”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8-16 16: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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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가난한 청년 ‘몬티 나바로’가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문의 백작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보다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로이 호니먼의 소설 ‘이스라엘 랭크: 범죄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돼 지난 7월 6일 네 번째 시즌을 무대에 올렸다.
 

▲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젠틀맨스 가이드’의 ‘다이스퀴스’역을 맡아 출연 중인 정상훈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소재의 한카페에서 스포츠W를 비롯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1998년 SBS 시트콤 ‘나 어때’로 데뷔한 정상훈은 무대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3년 tvN 예능 [SNL 코리아 시즌 4]부터 크루로 합류해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캐릭터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품위있는 그녀], [빅 포레스트] 등에 출연해 활약했고, 이번 ‘젠틀맨스 가이드’를 통해 4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정상훈은 “무대가 너무 좋다.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면서 ‘아, 내가 이렇게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대 복귀 소감을 전하고 “무대는 정말 솔직하다. 연습하고 고민한 만큼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라고 덧붙여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젠틀맨스 가이드’로 무대에 복귀한 정상훈이 직전에 참여한 마지막 무대 작품도 ‘젠틀맨스 가이드’다. 복귀작으로 같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때는 관객들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면서 코로나19로 초토화됐던 당시 공연계를 회상했다.

“코미디 공연인데 마스크를 쓰고 비말이 튀기 때문에 웃는 것을 자제하고 박수만 치라고 했다. 그런데도 전염이 더 심해지니까 한 자리씩 건너뛰다가, 나중에는 두 자리씩 건너뛰면서 공연을 해야 했다. 그렇게는 코미디 공연을 진행하는 게 힘들어서 제가 온라인 생중계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온라인 생중계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이후에도 너무 상황이 심각해져서 결국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한 달간 공연을 중지하기로 했다. 그때도 연습을 많이 했는데 아쉽고 아까웠다. 그래서 다음 시즌에 다시 참여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또 다른 스케쥴과 겹쳐서 못 했고, 이번 시즌에는 무조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
 

▲ 사진=쇼노트

 

팬데믹이 종식된 지금, 관객들은 4년 전과 달리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됐다. 정상훈은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 “정말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하다”면서 만족을 드러냈다.

“제가 고민해서 만들어낸 코미디들이 때로는 과할 때도 있고, 때로는 조금 부족할 때도 있지않나. 그런 것들을 무대에서 검증받을 수 있다. 어떤 걸 빼고 살리고, 템포를 조절하거나 캐릭터 변화를 좀 더 주는 류에서 제가 했던 계산들이 때로는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안 맞아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들이 참 재미있고, 그래서 무대에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정상훈이 맡은 배역은 ‘다이스퀴스’로 이는 이름이 아닌 성씨이다. 총 1인 9역을 소화하는 그는 다이스퀴스 혈통을 지녔지만 나이, 성별, 성격이 각기 다른 9명을 한번에 연기한다.

정상훈은 “지금도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데 가장 기분 좋은 건 9명이 다 다른 사람인 걸로 헷갈려하시는거다. 2층에서 아무 정보 없이 보신 분들은 나중에가서야 같은 사람이라는걸 깨닫게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하며 ‘높낮이’를 통해 배역의 차이를 둔다고 설명했다.

“높낮이로 앞에 나온 캐릭터와 뒤에 나온 캐릭터가 같은 사람이 연기한 건지 아닌지 판단을 흐릿하게 만든다. 자세의 경우 인물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똑바로 서 있거나 어깨를 매끄럽게 돌리고, 안짱다리로 서 있거나 만화 캐릭터처럼 손모양을 바꾸면서 디테일을 신경 쓴다. 목소리도 앞 캐릭터가 낮은 목소리였다면 다음 캐릭터는 높은 목소리로 내면서, 로우하이 법칙을 지킨다. 의상이 받쳐주긴 하지만 목소리와 제스처가 바뀌면 인물이 더 밀도 있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더 변화시킬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 사진=쇼노트


특히 정상훈은 ‘다이스퀴스’로서 무대에 설 때 직관적인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한다고 전했다. 이는 꼭 ‘젠틀맨스 가이드’뿐만 아니라 그간 많은 멀티 역으로 무대에 올라 본 정상훈이 터득한 노하우다.

“배우가 한 인물을 맡을 때는 서브 텍스트도 쓰고 전사도 그리면서 인물을 단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다이스퀴스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등장할 때부터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 대해 직설적으로 바로 느끼게 해야 하고, 캐릭터의 특징을 10초 안에 관객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빨리 몰입해서 그 인물에 빠져들게 만든다.”

1인 9역을 선보이는 다이스퀴스 역 배우들은 15초만에 의상, 가발, 분장을 바꿔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퀵체인지(Quick Change)를 시도 때도 없이 수행해야 한다. 정상훈은 이미 ‘김종욱 찾기’, ‘구텐버그’ 등으로 단련된 ‘퀵체인지 스페셜리스트’로 자신만의 요령을 연구해냈다.

“이번 작품 하면서 팔에 땀이 많아서 소매가 잘 안 들어가는 바람에 퀵체인지에 5, 6초 정도를 뺏기게 되더라. 5, 6초가 초과되면 정해진 시간보다 늦어진다. 그래서 골프장에서 쓰는 팔토시를 사용해 봤는데 쑥쑥 잘 들어가더라. 이제는 다 그걸로 하고 있다. 예전에는 멀티 역할을 할 때 3초 만에 갈아입어야 했는데, 그때도 의상 디자이너 선생님이랑 어떻게 하면 의상을 빨리 벗고 입을 수 있을지 연구해서 같이 의상을 만들었었다.”

특히 정상훈은 몬티에게 죽음을 당하는 8명의 인물을 하나의 혈통과 배우로 묶은 극본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어둠을 갖고 있고,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어둠을 소재로 갖고 있는데 그걸 정말 머리 좋게 풀어냈다”면서 “우리 가족들도 보면 어디 하나씩은 닮았지않나. 그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서 한 혈통이라는 설정으로, 비슷한데도 조금씩 다른 9명의 캐릭터를 만든 게 정말 기발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간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고, 돈과 권력을 쥐고 싶어 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런 부분에서 몬티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몬티가 다이스퀴스를 죽이고 올라갈 수록 점점 더 멋있게 변해가지 않나. 그러면서 관객들도 본능적으로 묘한 희열을 느끼고 몬티를 응원하게 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인 다역의 구조를 사용한 것 같다. 생판 다른 인물들이 각각 죽었다면 이건 잘못된 거라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판단하게 됐을 거다. 아무리 탐욕이 있어도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텐데, 1인 다역을 쓰는 순간 다른 결의 이야기가 되고 ‘아, 재밌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 사진=잼엔터테인먼트

 

많은 연구를 거쳤지만 라이브로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정해진 대본이 아닌 애드리브도 자주 등장하는데, 정상훈은 이번 작품에서의 애드립은 무조건 ‘젠틀맨스 가이드’라는 극에 맞춰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드리브가 극에서 벗어나면 SNL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그 정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제가 옷을 갈아입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늦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수염이 제대로 붙지 않아서 늦었다. 그럴 때 짜놓은 애드리브는 ‘왜 이렇게 힘들어 하십니까?-오해하지 말게. 저 계단으로 올라와서 그렇네’같은 대사가 있고, 또 립스틱이 안 지워져서 늦었을 때는 ‘근처에 체리가 너무 맛있어서 늦었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애드립이 극 속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정상훈이 다이스퀴스로서 주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은 몬티 역의 송원근, 김범, 손우현이다. 몬티 역을 맡은 배우들에 대해 정상훈은 정말 다양해서 너무 재밌다. 어떤 한 사람이 유독 잘한다기보다는, 그 다양함 자체가 너무 재밌다. 서로 호흡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재미가 정말 크다“고 말했다.


“우현이 같은 경우에는 장난꾸러기면서도 개구진 면이 있다. 또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니까 정말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반대로 범이는 원래 귀족이었는데, 뺏겼던 자기 자리를 찾으러가는 같은 느낌. 얼굴에서 그런 게 보이지 않나 싶다. 원근이는 워낙 뮤지컬 경력이 길어서 경력직들끼리 서로 맞붙었다는 느낌이다.”

몬티 역을 맡은 세 배우는 정상훈의 후배 배우들이기도 하다. 선배로서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적인 조언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런 조언들이 오히려 배우의 자율성을 막는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용기를 주는 거다. 물론 아이디어를 줄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방해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만약 간섭이 들어가면, 후배는 선배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게 제일 무서운 거다. 그래서 연출이 말하는 것을 따르는 게 가장 평화롭고 좋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는 거다.”

 

▲ 사진=쇼노트


그동안 많은 무대를 거친 정상훈은 2004년부터 모든 매체를 접고 대학로에서 활동했던 5년 간 연기에 대해 한층 더 알아가게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나서 알았다. 관객을 의식하는 것도 잘못된 거지만, 나 혼자 하는 것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함께 가는 미묘한 유기적인 호흡이 있어야 한다. 무대를 하면서 관객과의 거리 조절, 함께 즐기는 법을 익혔다. 캐릭터 분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시간 내내 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백 회 공연이 있으면 그 캐릭터를 백 번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캐릭터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나아질 수밖에 없다.”

무대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던 정상훈이기에 그는 후배 배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무대 연기를 권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SNL’을 같이 하고 있는 윤가이에게도 무대에 꼭 서보라고 했다. 무대는 정말 내추럴하고 솔직한 내 모습을 관객에게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다.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아야 하니까 나도 그만큼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물론 매체에도 큰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무대는 작품을 보기로 돈을 내고 선택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그만큼 무대는 아주 솔직하고, 그래서 관객들과 만나는게 부담스러우면서도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가까이서 만나는 관객들의 평가에 대한 질문에 정상훈은 “호평과 혹평은 관객의 몫”이라며 “반만 설득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무조건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저 배우가 정말 모든 에너지를 우리에게 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건 관객들이 알아준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금방 드러난다. 연기의 표현을 떠나, 진심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은 관객을 감동하게 만든다.”
 

▲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지금도 열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정상훈은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 정상훈은 또 다시 자기자신을 더 발전시켰다. 그는 “이번에 정말 노래에 많이 투자했다. 많은 시간을 노래에 쏟았고,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연인 사이인 거미, 조정석에게서 레슨을 받은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거미 씨랑 정석이한테 2시간 동안 레슨도 받았다. 거미 씨는 우리나라 최고 보컬이고, 정석이도 노래를 정말 잘하면서 무대에서의 노하우가 있지않나. 그분들한테 많은 걸 배웠다. 예전에는 감정을 담으면 소리가 안으로 들어갔다. 뮤지컬도 감정을 담아야 되니까 마찬가지였는데 거미 씨가 소리를 앞으로 붙여도 감정을 담을 수 있고, 그러면 훨씬 더 전달도 잘 되고 목도 덜 상할 거라고 조언해줬다. 정석이도 호흡법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알려줬고, 덕분에 신세계를 만난 것 같다.”

타인을 웃기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말한 그는 코미디의 원천이 ‘농담’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상훈은 “농담이 사람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결국 풀어지면 더 즐거워진다. 저는 그런 농담들이 풍부해야 코미디를 할 수 있고, 남들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요즘 들어 나이가 들었는지 자꾸 웃음에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점점 웃음에 의미를 부여해보면 어떨지, 좀 더 고급스러운 웃음을 줘야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고급스러운 웃음이 어디있나, 웃기면 장땡이지. (웃음) 쇼츠나 릴스를 볼 때도 웃기니까 웃고, 그게 기분을 좋게 만든다. 웃음은 그냥 흘러가도 되는 거다.”

‘젠틀맨스 가이드’의 이번 시즌은 약 2달이 남았다. 정상훈은 마음을 다해서 애정을 가진 작품의 순항을 바랬다.

“다른 거 없이 ‘젠틀맨스 가이드’가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다. 앞으로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행복함이 영원히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한편 ‘젠틀맨스 가이드’는 송원근, 김범, 손우현, 정상훈, 정문성, 이규형, 안세하, 허혜진, 류인아, 김아선, 이지수 등이 출연하고 오는 10월 20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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