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프랭크 와일드혼은 제 빨간 머리에 대해 ‘4~50대 중년 남자 배우가 했던 역할을 네가 2~30대도 할 수 있도록 젊게 만들어줬다’고 해주셨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
뮤지컬 ‘드라큘라’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드라큘라’ 역으로 활약 중인 김준수는 지난 11일 서울 압구정 소재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W를 비롯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드라큘라’는 브램 스토커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400년 넘게 한 여인만 사랑한 드라큘라 백작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음악을 만들어 지난 2001년 미국에서 초연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초연을 올려 이후 네 시즌 동안 4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5번의 시즌을 거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김준수는 ‘드라큘라’의 초연부터 오연까지 빠짐없이 타이틀롤로 출연해 작품의 모든 시즌에 참여한 유일한 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샤큘’이라는 애칭으로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사랑 받아온 그는 기념비적인 1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전했다.
“10주년을 맞이했다는건 뮤지컬에 있어서는 뜻깊은 일이라 하더라. 1년에 수백개의 작품이 올려지고, 한번만 올려지고 잊혀지는 작품이 워낙 많다보니 ‘드라큘라’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2년에 한번 꼴로 올려졌고, 10주년을 맞이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해서 초연부터 오연까지 빠짐없이 참여했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이번 10주년 이야말로 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느끼셨음 좋겠고, 저 또한 안주하지 않고 관객분들이 ‘드라큘라’를 더 사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역할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았다는 증거이지만, 시즌마다 신선함을 선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 역시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준수는 창작 초연 작품에도 많이 참여한 만큼 성격이 다른 부담감에 대해 입을 열었다.
“초연은 무에서 유를 처음부터 배우가 만들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얼마나 좋게 보여질 지 본 무대까지도 모른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당일이 아니고서야 알 수가 없어 그려볼 수도 없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재연은 그동안 저를 봤던 분들의 기준치가 있지 않나. 아무리 잘해도 본전인 거다. 그 기준치보다 더 잘하거나 최소 그 정도의 모습을 유지해서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이런 의미에서 ‘드라큘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배우의 부담을 덜어주는 작품이다. 김준수는 ‘드라큘라’는 파면 팔 수록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요소가 튀어나온다며, 그렇게 본인이 느낀 것을 그대로 관객에게 납득시키려고 말투와 뉘앙스, 어미를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템포, 미세한 차이가 정말 크다. 그 안에서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게 된다. 새로운 캐스트랑 호흡하면 또 달라진다. 그렇게 재미 요소들을 찾아가는 작업이 즐거운 것 같다.”
‘드라큘라’는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러브 스토리를 주로 그리고 있지만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김준수는 “‘드라큘라’는 풀어져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없다. 모든 장면이 각을 잡고 화를 내거나 애처롭게 절규하면서 노래하거나다. 그런 극중에서 드라큘라가 미나에게 잘 보이고 싶고, 드라큘라에 대한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인간의 행동을 떠올리며 노력하는 장면에서 딱 한 번 풀어질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며 애드리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드라큘라와 엘리자벳사는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재밌는 추억이 많겠나. 그걸 잠시라도 상기시켜야 하는 장면이라 더 시도를 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도 길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딱 찰나만 한다. 또, 같은 공연을 몇 차례나 보시는 분들이 계신다. 물론 연기나 넘버 속에서도 회차마다 차이를 주지만 이 장면의 소소한 차이로도 좀 더 표 값에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한다. 내가 상상했던 걸 딱 보여줬을 때 관객분들이 빵 터져주면 그 희열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엘리자벳’의 토드부터 ‘데스노트’의 엘(L), ‘엑스칼리버’의 아더와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까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에서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를 연기해 온 김준수는 판타지적인 캐릭터에서 빛을 발한다는 평을 줄곧 받아왔다.
이러한 이유를 ‘목소리’라고 꼽은 그는 “굳이 변주를 주지 않아도 나오는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너무나 튀니까 인간이 아닌 역할을 했을 때 좀 더 납득을 시키지 않나 싶다.”며 “인간이 아닌 캐릭터는 특징이 액션이 많다. 인간처럼 하면 안되니까. 저는 아이돌 출신으로 젊은 날에 춤을 췄어서 그런 것까지 가미가 됐을 때 강점, 매력으로 봐 주시는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판타지적인 역만 맡는 것은 아니라 말한 김준수는 최근 대극장에서 흥행하는 뮤지컬과 판타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대극장에서 흥행하는 뮤지컬은 대부분 판타지가 조금이라도 가미되어있다. 세계적인 추세도 역시 그렇다보니 그런 작품에서 연기한 게 더 부각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제 목소리가 특히 인간 답지 않은 역할을 했을 때 시너지가 맞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양쪽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준수는 ‘드라큘라’가 1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미장센’을 꼽았다. 뮤지컬에서는 무엇보다 보여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한다는 그는 ‘드라큘라’의 무대 세트에 대해 한 명의 관객과 팬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드라큘라’의 압도적인 무대 세트는 샤롯데씨어터가 비좁아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테크 리허설(배우들의 동선과 무대의 기술적인 부분을 함께 맞춰보는 리허설)을 하면서 느꼈지만 보면서 이게 10년 전에 만든 세트인게 말이 안된다 생각했고, 지금의 그 어떤 대극장 세트와 비교해도 거의 최상급의 무대세트라고 생각한다. 10년 전부터 센세이션 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정한 검정 포마드 헤어가 보편적인 드라큘라 백작의 상징인 반면, ‘샤큘’의 상징은 피처럼 붉은 빨간 머리라 할 수 있다. 무려 10년 간 빨간 머리로 배역에 본인만의 특별한 요소를 더한 그는 어느덧 세계에 위치한 젊은 드라큘라 백작의 모티브이자 레퍼런스로 자리잡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프랭크 와일드혼 조차도 ‘드라큘라’를 다른 나라에서 공연할 때마다 제 빨간 머리 사진을 보여줘서 다른 배우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하더라. 프랭크 와일드혼은 제 빨간 머리에 대해 ‘4~50대 중년 남자 배우가 했던 역할을 네가 2~30대도 할 수 있도록 젊게 만들어줬다’고 해주셨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샤큘’의 빨간머리는 초연 드레스 리허설 3일 전에 결정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했다. 당시 제작사와 회사 모두 모 아니면 도라며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무대에 오르고 난 후 곳곳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판타지는 열린 마음으로 관객들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블랙 머리도 중후한 매력이 있지만 색감적으로 백발의 노인이 젊음을 얻고, 빨간 머리를 흩날리면서 나오는 순간이 백번 되새겨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한두 번 해보고 아니면 바꾸겠다고 해서 빨간 머리로 무대에 올랐는데 첫공을 올리고 제작사 쪽에서 잘했다고 해 주셨다. 근데 그게 저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웃음)”
실제로 그는 ‘드라큘라’의 새로운 시즌이 찾아올 때마다 빨간 머리를 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5~7일에 한번씩 염색을 해야하고 베개와 수건을 갈아치워야하는 고충이 있다.
“그래도 초심을 잃었다는 말이 나오거나, 제작사 쪽에서 ‘이럴 거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라고 할까봐 계속 해 왔다(웃음). 10주년이라는 건 모든 역사를 되풀이하고 총정리 같은 느낌이 나지 않나.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까 이번 시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한다. 빨간머리 드라큘라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창작 초연과 다를 것 없는 ‘드라큘라’의 한국 공연은 김준수를 비롯해 여러 배우들의 의견이 부합된 결과물이다. ‘드라큘라’를 두고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던 배우가 아닌 나의 의견을 어필했던 첫번째 뮤지컬’이라고 말한 그는 작품의 대표 넘버 ‘She’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She’에서 노래를 부르며 긴 대사로 400년간의 과거를 설명을 했었다. 그 부분에서 장황하게 두번씩이나 얘기하는게 지루하다고 느껴져서 다른 설명 필요 없이 노래로만 전달하면 안될까하는 의견을 전했더니 그대로 받아들여주셨다. 연출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제 의견이 반영된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서 평가받을 때 뿌듯함이 있다보니 제 자신이 조금 덜 부끄러워졌던 것 같다.”
어느덧 연예계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김준수는 가수, 뮤지컬 배우일 뿐만이 아니라 소속사 팜트리아일랜드의 수장이기도 하다. 많은 뮤지컬 배우들을 이끌고 있는 그는 소속사 수장으로서의 목표 역시 착실히 이뤄냈다.
“뮤지컬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콘서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작년에 이어서 올해 일본에서까지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계속 대중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설사 잘 안될 지라도 두들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체 콘텐츠라는 것도 투자해서 해봤고, 뮤지컬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캐럴을 해보고 싶었는데 오는 13일 공개가 된다. 올해 봄부터 구상했던 건데 하나하나 해온 게 뿌듯하고 감사하다.”
▲ 사진=오디컴퍼니(주) |
곧 공개를 예정하고 있는 신곡 ‘MY CHRISTMAS WISH(마이 크리스마스 위시)’는 팜트리아일랜드가 첫 번째로 선보이는 캐럴송으로 김준수를 비롯해 김소현, 정선아, 손준호, 진태화, 서경수, 양서윤까지 소속 뮤지컬 배우 전원이 참여해 완성시켰다. 특히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선물한 곡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케이팝 작곡가가 아닌 뮤지컬 작곡가한테 받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는데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이 흔쾌히 응해줬다. 프랭크 와일드혼도 뮤지컬 작품이 아닌 개인적인 하나의 넘버를 써주는 건 처음이거나 오랜만이라고 얘기를 하셨다.”
데뷔 후 20년 간 쉴 틈없이 달려온 김준수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달려온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매번 뮤지컬, 콘서트를 1년을 쉰 적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했었고,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많은 사랑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린다는 말을 진부하지만 해야 할 것 같다. 이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저는 항상 이걸 기적이라고 얘기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너무나 복받았다는 생각이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항상 팬분들이 계시기에 가능한 거라 생각한다. 항상 보답할 수 있는 자리 계속 만들어보도록 하겠고 내년에도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한편, 김준수와 함께 전동석, 신성록, 임혜영, 정선아, 아이비, 손준호, 박은석, 진태화, 임준혁, 이예은, 최서연, 김도현, 김도하가 출연하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내년 3월 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