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
일반적인 70대 할아버지와 72년을 묵은 소총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연기적인 차이는 어떻게 둘 수 있을까. 전성우는 “할아버지라는 이미지 자체가 주는 느릿느릿함이 있지않나. 그런 이미지만을 갖고 가면 ‘빵야’ 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 인물의 모습은 할아버지가 아닐 수 있다는 여지를 주면서도 행동이나 표현에는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7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장총의 모습은 할아버지 같은 무게의 호흡에 역사와 세월이 담겨져있는 모습과 행동을 보인다. 또 극중극으로 돌아갔을 때는 72년의 세월을 보낸 호흡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총이 됐을 때는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할아버지 같지 않게 표현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빵야’는 아픈 시간을 보낸 장총의 세월을 그대로 따라가는 만큼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극이기도 하다. 전성우는 “슬퍼서 울 수는 있지만 제가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울어버리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감정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든 것 같다“면서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확실히 하려한다고 말했다.
“심장은 뜨거운데 머리는 차가운 느낌으로 연기한다. 심장과 머리가 모두 뜨거워지면 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과 직접 해 보는건 또 다르기 때문에 연습 때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끝까지 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가봐야 절제할 수 있고 통제가 된다. 공연이 매력적인 점 중 하나가 연습 기간 중 할 수 있는 걸 다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맞고 틀린 게 없고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직접 해보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것 같다.”
‘빵야’는 폭력과 전쟁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상업과 예술사이 고민하는 창작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대와 매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전성우에게 있어서도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했다. 이에 대해 전성우는 “참 어려운 것 같다”며 “사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상업인지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예술이든 상업이든 어떤 소재나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작품을 단순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이야기를 전달하고 들려주는 사람으로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게끔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건 예술이고, 예술이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상생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작품과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고, 정성껏 만들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현재 여러 포맷의 작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성우에게 무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현장감’이라 답했다.
“연습 과정까지는 어쨌든 연출의 선이 있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은 배우의 연기의 연출인 거다. 따라서 오늘의 연기는 어제도 할 수 없었던 거고, 내일이 되면 볼 수 없는 연기이기도 하다. 내가 현재에 충실하다는 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진실된 순간이라 그 자체가 큰 매력인 것 같다. 이 점이 너무 좋아서 무대를 사랑하는 것도 있다.”
현재 연기를 통해 배우의 연출을 펼치고 있지만, 작품 자체를 연출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생각해봤던 것 같지만 지금은 쉽지 않은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기를 직접 해온 배우이기에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떤 연기를 봤을 때 배우의 입장으로보면 자신의 노선이라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해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연출은 배우들에게 똑같은 배역으로 연기를 시켰을 때 객관적으로 바라봐줘야 하는데 저도 배우를 계속하다보니 주관이 너무 세져서 과연 내가 이 배우들의 밸런스를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연출’이라는 이름만 단다고 해서 연출이 아니고, 연극의 모든 요소를 조율해야하는 게 연출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점점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영역인 것 같다.”
17년차 배우 전성우는 여전히 연기를 배워나가고 있다. 그는 “아마 선배님들도 똑같이 얘기하실 것 같다. 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라며 계속해서 연구해나가고 있음을 전했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정답에 안주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질 것 같다. 옛날에 봐왔던 연기 스타일과 요즘에 볼 수 있는 연기 스타일, 대중들이 선호하는 연기 스타일이 다 다르다보니 선호하는 취향도 바뀌고 스타일도 다양해진다. 그러다보니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다.”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특히 전성우는 연기에 있어 ‘즉흥성’을 찾으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약속이라는 게 분명 존재하고, 지금도 없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실 연기라는 게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순간에 똑같이 할 수가 없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런 약속을 했으면 약속대로만 해야 하는게 정답이라고 느꼈는데, 적당한 선 안에서만 놀면 어떻게 표현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매일 같은 사람과 연기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같은 호흡으로 다른 배우를 만나면 절대로 같이 섞일 수 없다. 그래서 즉흥성을 계속 찾으려 하는 것 같다.”
2010년쯤 작은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상대 배우에게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전성우는 그 때를 계기로 연기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그 배우가 이 장면에서 왜 이렇게 연기하는 지 의문이 들었는데 ‘내가 다르게 한 거지 틀리게 한 건 아니잖아’라는 말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근데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다양한 성향의 배우들을 만나보면서 다를 수 있지만 틀린 건 아니고, 좋아하는 방향성이 있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계획적인 건 갖고 가되 살아있는 날 것의 느낌, 즉흥적인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계속 갖고 있다.”
전성우는 필모그래피를 쌓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어딘가에 배우로서의 양분이 축적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했으니까 이건 잘할 수 있어’처럼 누르면 나오는 스킬이 아니라, 그저 어느 순간에 어떤 연기를 하다보니 튀어나온 걸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 계속 얼굴의 형태가 변하고 표현의 방식이 바뀌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쌓이는 무언가가 남지 않을까 싶다.”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아직도 배우 전성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추후 활동 방향성에 대해 묻자 그는 “너무 많다.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다”며 앞으로의 행보를 예고했다.
“사실 해보고 싶은 건 많아도 하고 싶은 건 없다.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싶다. 어렸을 때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누군가가 ‘쟤는 저거 밖에 안 될 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 상처를 받았었다. 근데 동시에 그 말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저를 바라봤을 때의 이미지를 항상 뒤집는게 제게는 재미고 즐거움이다. 또 배우로서 한 단계 발판을 디딜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다양하고 그때그때 재밌다고 느끼는 작품들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전성우는 연극 ‘빵야’를 찾을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실 수 있게 항상 노력 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많이 보러와 주시고, 저희가 정성껏 만든 이야기를 그저 오롯이 느껴지시는 대로 잘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빵야’는 박성훈, 전성우, 박정원, 홍승안, 이진희, 김국희, 전성민 등이 출연하고 오는 9월 8일까지 예스24 아트원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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