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은 표정의 나아름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이클 여제'라 불린 우리나라 사이클 간판 나아름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아름은 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달 대구시청 사이클팀에서 코치 제안이 와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전부터 부상이 이어지고 훈련, 경기 도중 사고가 자꾸 나니까 은퇴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20년 넘게 선수로 페달을 밟았는데 이제 지도자로 출발한다"고 말했다.
나아름은 10년이 넘게 여자 사이클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2010년 3월 덴마크에서 열린 세계트랙선수권대회 3㎞개인추발 경기에서 3분39초518로 한국 기록을 4초 단축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때 나이가 스물이었다.
이듬해에는 국제사이클연맹(UCI) 제1차 트랙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여자 포인트 경기 금메달을 땄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 도로독주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사이클에 귀중한 금메달을 안겼다.
기세가 오른 나아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무려 4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 도로 종목에 출전, 139.7㎞ 구간을 3시간36분07초 만에 통과했으나 간발의 차로 은메달을 땄다.
직후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금메달 4개를 목에 걸며 기량을 과시했다.
여전히 최고 선수지만 나아름은 오는 7월 열리는 파리 올림픽 출전권도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박수칠 때 떠난 것"이라며 웃은 나아름은 "전국체전 성적이 너무 좋아서 나도 흔들렸다. 사실 파리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려오자고 생각했는데, 투르 드 오키나와 대회를 치르며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나아름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비로 인해 도로가 미끄러워지는 등 악조건을 겪었다는 나아름은 "경기 중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 그만두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렇게 애매한 마음이면 40, 50살이 돼도 계속 병원을 다니면서 위험하게 운동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고 덧붙였다.
각종 수상 실적을 빼고도 나아름은 '입지적 선수'다.
나아름은 2019년 이탈리아 여자프로사이클팀 알레-치폴리니에 입단했다.
한국 선수의 세계적 명문 프로팀 입단은 2012년 호주 '오리카'에 합류한 구성은 이후 나아름이 두 번째다.
사이클계의 중심인 유럽 무대에도 도전해본 나아름은 선수 생활에 미련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어린 선수들이 한국 사이클의 최전선을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나아름은 "조금이라도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우리나라도 세계 무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그 선수들에게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이 내 꿈이라고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게 나 하나만은 아니다"라며 "우리 대구시청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선수들의 연령대도 어린데 다들 열심히 해서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스포츠계에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휘하 선수들이 현역 시절 자신만큼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와 사정 등을 좀처럼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나도 그게 걱정"이라고 웃은 나아름은 "그래도 내가 부상도 많이 당하고 나이가 들어 지쳐서 은퇴하는 만큼, 다른 선수들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로그 등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해온 나아름은 지도자가 된다고 해서 자신의 '자전거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아름은 "선수는 아니지만 코치로서도 할 일이 많다. 날 계속 응원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