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간판 지소연 "화장실·천막서 탈의, 미국이면 큰일 나"

연합뉴스 / 기사승인 : 2025-11-13 09: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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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협회장으로 연합뉴스 인터뷰서 "이젠 바뀔 때…기본 틀 갖춰야"
미국·영국·일본·한국 다 경험한 지소연 "우리만 정체돼 안타까워"
▲ 지소연 [대한축구협회 제공]
 

"우리 선수들은 라커룸이 없는데도 당연하게 화장실이나 천막 아래에 들어가 그냥 옷을 갈아입죠. 이게 미국이면 큰일 나는 일이거든요."

우리나라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시애틀 레인)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회장을 맡은 이유를 묻자 여자 선수들이 처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각종 대회 중 선수들이 마땅한 장소가 없어 화장실, 버스나 대충 가려놓은 천막 아래 들어가 유니폼을 갈아입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여자프로축구(NWSL) 2024시즌을 마친 지소연은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같은 '천막 탈의'는 외국이라면 난리가 날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선수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소연은 "항상 그래왔으니 그러는 거라지만 이제 바뀔 때"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당장 뭐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어린 친구들에게는 지금보다 좋은 환경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의 열악한 시설과 부실한 운영이 실사에 나선 선수협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국 61개 팀이 참여한 이 대회는 국내 여자축구대회 중 최대 규모이나 폭염 속 경남 창녕스포츠파크에서 진행된 올해 대회에서는 여러 필수 시설이 부족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탈의실이나 라커룸이 없어 선수들은 천막 아래에서 가림막도 없이 옷을 갈아입는 상황이 연출됐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탈의실로 쓰였으나 줄이 길어지자 지친 이들은 천막으로 향한 것이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도 그달 9일 홈페이지에 '폭염 속 최대 규모 대회에 나선 여자 선수들, 사람들이 있는 데서 옷 갈아입어야'라는 제목의 글로 열악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공유했다.

"사실 한국 여자축구의 문제가 이뿐만 아니다. 여러 가지로 정말 머리 아프다"고 혀를 내두른 지소연은 남자축구를 책임지는 이근호 회장과 공동회장 신분으로 선수협을 이끌고 있다.

2011년 고베 아이낙(일본)에 입단, 국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지소연은 첼시 위민(잉글랜드)을 거쳐 2022년 수원FC 위민에 합류해 국내 여자 실업축구 WK리그도 경험했다.

올해 시애틀 레인으로 이적해 세계 최고 리그라는 미국 무대에도 진출했다.

일본, 영국, 미국 등 여자축구가 발전한 지역을 두루 경험한 지소연은 그간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혹여나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거나 부정적 여론이 조성돼 여자축구 행정에 방해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외 사례를 참고한 지소연의 쇄신론에 '현장을 모르는 소리만 한다'며 반감을 가진 지도자도 있다.

지소연은 "목소리를 내서 욕을 먹는 건 당연한 거다. 이제는 정말로 현실을 깨달을 때가 됐다"며 "WK리그와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지금은 천양지차"라고 말했다.

WK리그와 WSL의 원년은 각각 2009, 2010년으로, 오히려 우리나라가 1년 빠르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산하 기관인 여자축구연맹이 운영하는 WK리그와 달리 WSL은 처음부터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직접 책임지고 키워내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22-2023시즌 FA 재무 보고서를 보면 2023년 FA는 예산 1억5천300만파운드(약 2천752억원) 가운데 20%가량인 3천만파운드(539억원)를 여자축구에 배정했다.

지소연은 영미권에서 나오는 '남녀 선수 동일 임금'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결코 남자랑 돈을 똑같이 달라는 게 아니다. 그게 욕심인 건 나도 안다"며 "리그든, 대표팀이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틀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밖에서 보니까 느끼는 게 더 많다. 다른 나라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만 그대로인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지소연이 '정체됐다'고 평가하는 WK리그는 지난 15년 동안 수익 모델을 짜는 데 실패했다.

올 시즌 한 경기 평균 관중은 261명이었다. 가장 적은 창녕WFC는 146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최다 관중팀은 군국체육부대인 문경상무로, 평균 455명이었다.

사실 국외 리그에서 경쟁해온 지소연은 WK리그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얽매여 있지 않다.

"우리나라 환경을 바꿔도 내게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너스레를 떤 지소연은 "WK리그 선수들 연봉이 10년째 멈춰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대체 누가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목상 WK리그 최고 연봉은 5천만원이다. 신인 선수들은 1차 지명 시 3천만원, 4차 지명 이후라면 2천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말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23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명이 '연봉 2천만원' 처지인 4차 이하 지명으로 선발됐다.

지소연은 "변화 시기를 놓친 건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선수협 등이 노력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다들 여자축구가 '안 될 사업'이라 하지만 '해볼 만한 사업'으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소연의 뜻에 공감하는 선수협은 남자들에 비해 열악한 여자 선수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자체 시상식'을 연다.

14일 오후 1시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 호텔 노벨라홀에서 열리는 2024시즌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시상식을 통해 베스트 11, 최우수선수(MVP) 등을 선정한다.

2022년부터 두 차례 시상식을 진행한 한국여자축구연맹과 별도로 한 시즌 고생한 선수들을 격려하겠다는 게 선수협의 계획이다.

지소연은 "다들 여자축구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게 근본적 문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인식 자체부터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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