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감독 안태진)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다. 극 중 맹인 천경수로 분한 류준열은 밤에는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는 '주맹증'을 표현해냈다. 주맹증이라는 신선한 소재 속 류준열의 맹인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올빼미' 천경수 役 류준열/NEW |
개봉을 앞두고 '올빼미' 라운드 인터뷰에서 만난 류준열은 "제 연기를 보는게 쑥스럽다. '몰입감 있었다', '박진감 넘쳤다'는 반응이 제일 좋았다. 제 영화를 재밌게 못 보는 편이다. 근데 '올빼미'는 다 알고 보는데도 흘러가는, 만듦새가 박진감 있어서 재밌게 봤다. 감사하게도 좋은 평들을 해주신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빼미'에서 중요 포인트인 '주맹증'은 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출연 결정 후 류준열은 실제 주맹증을 앓고 있는 이들과 만남을 가졌다. "모든 사람들의 증상이 같은 것이 아니다. 주맹증이 점점 안좋아지는게 대부분이라더라. 어릴 때는 점점 안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 부분을 표현하면서 가짜가 아니라는 느낌만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류준열은 "보일 때보다 안 보일 때가 어떻게 비춰지는지가 제일 중요했다"고 했다. "현장 특성상 눈을 감으면 전개가 안 된다. 시선을 한번 빼서 명확한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끔 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제가 쇼를 좀 많이 보는 편이다. 좋아한다. 탑모델들의 눈빛을 보면 명확하게 보여준다기보다는, 약간 꿈꾸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 눈을 어디서 봤나 맹인 분들 중에 시선이 바르지 않다. 그 눈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만났던 먼 친척 중에 맹인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안보는게 아니라, 우리보다 더 큰 무언가를 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우리가 당연하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감사하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철학적인 부분들이 맹인의 눈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영화 '올빼미' 천경수 役 류준열 스틸/NEW |
다만, 류준열은 핸디캡을 가진 경수 캐릭터로의 상징적인 의미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야기 구조가 궁 안에 있지만 궁 밖에 살던 평민이 궁 안에서 본 것들을 진실을 밝혀야 한다. 작고 힘없는 사람, 약자로서의 이미지로 왕족들의 일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게 표현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락적이어야 하지만 하나의 이야깃 거리로 짚고 넘어갈 수 있었으면 했다."
맹인 연기는 데뷔 전 초등학교 연극부에서 방과후 교사로 연극과 뮤지컬을 지도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배우들이 처음에 기초연기라고 해서 오감훈련을 많이 한다. 없는 것들을 만들어서 상상하고 표현해야 한다. 연극, 뮤지컬 수업을 초등학교 때 받기도 했지만, 진행하고 해본 사람으로서 도움이 많이 됐다. 아이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냄새를 못 맡게 하는 등 게임을 한다. 그때 했던 게임을 되새기며 아이들이 어떻게 표현했고 소리를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부분들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류준열의 맹인 연기는 최무성과 함께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극 중 이형익(최무성)은 경수를 의심하며 그의 바로 눈 앞까지 침을 들이댄다. 사실 반사 신경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기 마련이다. 하지만 류준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유해진 선배님도 그 장면에 대해 물어보셨다"며 웃었다. "그걸 CG로 알고 계시는데 그건 진짜 침이 있었다. 짧은 침이었다. 긴 침을 눈 앞에까지 가지 않고 앞을 늘린 것이다. 많이 긴장했는데 잘 나온 것 같다. 괜히 무성 선배님이 내 주변에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셔서 갑자기 긴장되더라. 사고 없이 촬영했다. '봉도동 전투' 때 총 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눈을 깜빡이면 안되는 역할이었다. 그런 부분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영화 '올빼미' 천경수 役 류준열/NEW |
침술사 역할이었기에 침 놓는 연습도 부지런히 했다. "침은 제가 많이 놨던 것 같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의사 모임이 있다. 그분들이 현장에도 오시고, 많이 도와주셨다. 이번에도 훈련을 좀 받았다. 종류도 많더라. 두루마리 휴지를 눕혀서 놓는 연습을 했다. 빽빼하게 될 정도로 많이 놨다. 학부 시절에 연습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 그 연습 굉장히 많이 했다. 얼마 전에도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침 놓는 클립 보여드렸더니 혈 알려주겠다고 농담도 하시더라. 현장에서 한의사분들이 팔꿈치를 대주기도 하셨다(미소)."
인조로 분한 유해진과는 '택시운전사', '봉오동 전투'에 이어 세번째 만남이다. 언론 시사 후 간담회 당시 유해진의 "한층 굵은 배우가 됐다"는 칭찬에 류준열이 울컥한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가지 감정들이 교차했다. 기존 작품들과 다른 분위기인 것은 확실했다. 웃고 떠들기보다는 묵직한 분위기에서 촬영하다보니 배움들이 생각나고 해진 선배님은 신인일 때 '택시 운전사'로 뵙고 '봉오동전투'에서 또 뵀다. 제 연기 생활 중간중간에 만나면서 해주셨던 좋은 이야기가 겹치면서 울컥했다. 연락도 많이 받았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가 아니다. 절 아시는 분들은 좀 의외라고 하시더라. 그만큼 감동이 컸다."
극 중 인조는 경수에 치료를 맡겨, 경수는 인조와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등 뒤에서 침 치료를 한다. 타인에게 등을 보인다는 의미는 속내를 보여준다는, 빈틈을 보인다는 의미다. 류준열은 인조가 경수를 인간 이하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했다.
▲영화 '올빼미' 천경수 役 류준열/NEW |
"저는 눈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이번 작품에는 더 신경을 썼다. 사극이고 평민이다보니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일이 없다. 뒤에서 이야기한다는게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신하들도 뒷걸음질 쳐서 나간다. 등을 보여준다는, 속내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것조차 불편하지 않은 절대권력, 등을 쉽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 이하'의 느낌도 있었다. 엔딩에서도 사실 그 장면이 그 외침이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 장면을 찍을 때도 왕과 대화하고 이야기하는게 상징적으로 다가오면서 표현하는데 애를 썼다.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관객들에 다가가서 뿌듯하다. 배우와 배우가 눈을 보지 않고 대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연기의 시작이다. '대충 알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연기였다. 몇개의 놀라운 순간 중의 하나였다. 저는 그런 순간이 몇개만 있어도 너무 좋게 받아들인다."
소현세자로 분한 김성철과의 장면은 서늘한 분위기의 '올빼미'에서 유일하게 따스함을 안긴다. 촬영 비화가 궁금했다. "성철씨, 은진씨, 은서씨, 예은씨, 제 동생들이지만 같이 작업한 것에 대해서 영화 보고나서 더 감사하다고 느꼈다. 성철씨 같은 경우는 그 씬을 알고 봤지만 너무 재밌게 봤다. 연기가 너무 좋았다. 큰 대화없이 촬영했는데 의도한대로 잘 나온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영화 끝나고 나서 서로 통화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가슴 벅차고, 다들 엄청 고민들을 갖고 현장에 왔다. 제 긴장감은 하찮아질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올빼미'로 첫 호흡을 맞춘 안태진 감독은 류준열에 편견을 깨줬다. "안태진 감독님은 갖고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난 다 좋아'라고 하시지만 좋지 않을 때마다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신다. 감독님의 힘은 글인 것 같다. 글이 주는 힘이 있고, 애를 쓰고 하나하나 신경을 썼는가 확신이 생기더라. 그거대로 찍으니까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 저력을 알게 됐다. 만나서는 더 할 나위없이 좋은 이야기 해주셔서 확신이 들어서 함께 하게 됐다. 이번에 하면서 다른 신인 감독님과도 하고 싶은 생각,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작업해서 남들이 늦었다고 하는 순간에도 집중하고 완성해서 나온다는게 쉬운 일이 아닌가. 그것만으로 높이 살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도 조심스럽게 여쭤봤다(웃음)."
'올빼미'는 인조실록에 쓰여진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한다. 하지만 현대극이어도 무리없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스릴러다. 사극과 스릴러의 묘미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꼭 사극이 아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대적인 스릴러다. 궁중의 암투라던가 그 시대의 고유의 언어를 사용해서 애를 쓰면서 만든 이야기는 아니다. 의혹이나 미술적인 부분은 신경썼는데 이야기 흐름이나 전개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을 많이 뺐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기존 작품을 답습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신경을 썼다. 그게 스크린에 티가 나서 봐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
그러면서 류준열은 "작은 소리 하나로 관객들에 무언가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이 있었다. '보인다고 해서, 안 보인다고 해서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것. 그게 과연 옳은가. 그렇게 살아야하나'라는 물음으로 다가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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