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드림팰리스’ 이윤지 “‘수인’은 나와 가장 가깝게 느껴진 캐릭터...어느 때보다 아팠다”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6-01 22: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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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임가을 기자] “같은 역할을 반복해서 하더라도 제 연기가 다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훨씬 더 하고 싶은 영역이 많아진다. 제가 계속 달라지고 있으니까 스스로 기대가 되고 배우로서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면 좋겠다. 제 삶이 역할로 잘 쓰이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2003년 MBC 드라마 ‘논스톱4’를 통해 데뷔한 이윤지는 그간 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왔다. 스크린보다는 브라운관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었던 그는 이번 영화 ‘드림팰리스’를 통해 강렬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배우 이윤지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 사진: ㈜인디스토리
 영화 ‘드림팰리스’는 남편의 목숨 값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은 소셜 리얼리즘 드라마로 가성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윤지는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 두 명을 기르며 살아가는 수인 역을 맡았다.

이윤지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W를 바롯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이윤지는 ‘드림팰리스’의 시나리오를 받고, 책장을 넘겼을 때 그 다음 장을 빠르게 넘기고 싶었던 시나리오라 말하며 캐스팅을 제안 받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시나리오 받고 ‘드림팰리스’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아파트 이름이라는 걸 읽으면서 알게 됐다. 내용의 무게에 비해서 장이 굉장히 빨리 넘어가더라. 가끔 아이들 동화책 읽어줄 때 이야기가 재미있다 보니까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은 급한 마음에 아이들이 읽는 속도를 생각 못하고 되게 빨리 읽어버릴 때가 있다. 그것처럼 ‘드림팰리스’도 빨리 그 다음 장이 궁금한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구성이 재밌고 탄탄했다. 그래서 캐스팅에 대한 답을 빨리 드리게 되었다.”

 

영화는 아파트 할인 분양, 산업재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극 중 수인은 이러한 사건에 누구보다 깊게 연관되어 있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이윤지는 가성문 감독과 리서치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독님과 시나리오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사건에 대해 같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는 경험을 갖게 됐다. 영화에 참여하기 전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뉴스를 볼 때 마음이 아프다, 상황이 불편하다처럼 시청자로서 볼 수 있는 그런 마음들 뿐이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입장을 파고들어가는 건 이번 경험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 사진: ㈜인디스토리
 

‘드림팰리스’의 시나리오는 2019년 하반기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시나리오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이에 따라 각본을 쓴 가성문 감독은 첫 장편 연출의 기회를 얻었다. 작품은 두 가지 무거운 사회적 문제가 교차되며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목을 끈다.

“감독님이 직접 쓰시고 시나리오로서도 먼저 인정을 받으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독님이 원래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가? 생각도 하게 됐던 것 같다. 유가족 문제와 미분양 문제, 두 가지의 큰 덩어리를 한 영화에 담기가 너무 버거울 것도 같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두 문제 사이에 살고 있는 여자 두 명이 나타나서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거운 주제에 주목하며 긴장한 상태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서 풀어지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극 중 수인은 산업재해 유가족이며, 아파트 할인 분양 사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게를 저울로 잴 수 없는 만큼 수인을 연기한 이윤지 또한 무게의 이동을 언급하며 두 가지 입장에 처한 수인에 대한 생각을 꺼냈다.

“처음에는 유가족 입장에 처하게 된 게 연기하기 조심스럽고, 무게감도 컸다. 세 글자 만으로도 굉장히 큰 무게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영화에서는 뒤로 갈 수록 할인 분양 이야기가 비중있게 다뤄진다. 마치 시소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영화가 시작했는데, 뒤로 갈 수록 앞으로의 삶의 무게가 더해져서 위로 떠있는 반대 편을 누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 수인을 연기할 때는 유가족의 입장을 중점으로 마음을 쓰면서 끌고 갔다면 뒤로 갈수록은 살아남아야 하는 수인의 눈 앞에 벌어진 장애물에 대해 더 크게 감정을 느끼면서 연기했던 것 같다.” 

 

▲ 사진: ㈜인디스토리
 

극 중 수인은 고요하면서 굳건한 성정으로 모진 세상을 여린 몸으로 버텨낸다. 이윤지는 자신이 연기한 수인에 대해 “지금까지 만났던 역할들 중 저와 가장 가깝게 느껴진 캐릭터”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나 자식들을 기반으로 서있는 무게감도 그렇고, 삶을 대하는 자세도 그렇다. 제가 느낀 수인은 세게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피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저라는 사람이 수인을 연기하다 보니까 수인이 불가피하게 작은 체구의 사람이 됐는데 그런 수인이 견뎌내기에는 큰 사건이고, 무게감이라 최선을 다해 버티는 모습이 이 영화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상황들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수인이라는 삶의 태도가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나서 감정 만큼은 어느 때보다 많이 이해했고, 많이 아팠던 것 같다.”


수인은 혜정과 반대로 기업과 합의하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드림팰리스에 입주하기로 마음 먹는다. 현실적인 결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굳은 마음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윤지는 합의라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두며 설명했다.

“돈에 타협을 했다기 보다는 결국에는 돈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 선택이 맞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합의를 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인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속에서 스스로 갈등하다가 입장을 바꾸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 과정을 표현한 게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주 짧은 컷이지만 천막에 가서 아직 남아 있는 유가족들한테 인사를 할 때, 도저히 허리를 필 수가 없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난 나의 선택으로 합의했지만 유가족의 입장과 마음을 아니까. 마음 같아서는 더 몸을 낮추고 싶었다. 죄송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드림팰리스’에서 이윤지는 김선영과 더불어 섬세한 감정선으로 가슴에 와닿는 연기를 선보인다. 방범 창살을 가운데 두고 아이가 깰까 목소리를 낮춘 채로 감정을 주고 받는 장면은 특히 돋보인다. 

 

이윤지는 “촬영 중 엎드려 울고 싶은 적이 많았다”고 말하면서 김선영과 연기합을 맞추며 감정적으로 강하게 몰입했던 경험을 전했다.

“창살 씬을 찍었을 때 긴 테이크로 이어진 컷들도 있다. 선영 언니가 밖에서 뒤를 돌았을 때 차마 끊지 못하는 감정들이 막 밀려오니까 감독님이 기다려주셨다.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제가 창문을 닫아버리니까 선영 언니가 뒤돌아서서 많이 우시더라. 너무 선명하게 선영 언니의 모습이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저도 창문을 닫고 뒤를 돌아봤는데 아역들이 자고 있는 연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 촬영 시점이 늦은 밤이라 진짜 잠들어 있는거다. 그리고 그 방 안에 모기가 있어서 아이들을 물까봐 깨우지 않기 위해 내리치지도 못하고 손을 휘저어서 쫓았다. 너무 슬펐다. 그 벌레마저도 짜증이 나더라. 너네까지 얘를 물어? 하는 마음이 들어서.”

 
▲ 사진: ㈜인디스토리
 ‘드림팰리스’의 결말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수인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상상의 여지로 남겨둔 수인의 이후 행보에 대해 이윤지는 “일단 제가 마음이 놓였고 감사한 건 그 난리를 치고 입주했고, 아빠 목숨으로 받은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집이 있다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수인은 한동안 과거는 묻어두고 현실에 집중하면서 매일매일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과거를 헤집지 않고 살아가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아파트가 아빠 목숨 값이라 생각하면서 살지 말고, 들어왔으니까 그냥 잘 지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영화 결말 뒤로는 힘든 순간보다는 웃고 가는 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앞으로 수인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힘든 순간들은 남들이 힘든 정도랑 비슷했으면 좋겠다. 하나도 안 힘들 수는 없으니까. 결말 이후로는 더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내용이 수인에게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드림팰리스’는 결국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스크린에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는 이윤지는 본인이 생각하는 집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의미를 말하기도 했다.

“집이라는 단어는 공간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집에 가면 보호받는 느낌이고, 안정감을 느꼈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을 키워보니까 집은 아이들을 데리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반 같은 것들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한테도 좋은 이미지의 집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드림팰리스’까지 통틀어서 이윤지는 주로 선한 역할을 맡아오며 대중들을 만나왔다. 그는 “바라봐주시는 이미지로 스타트를 하게 되는 것 같고,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선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역할들을 많이 하고는 하지만 가끔 유혹들을 느끼는 씬을 연기할 때는 너무 통쾌하다. ‘맞아, 왜 아니야 얘도 인간인데’ 이러면서 흔들리는 것들을 표현할 때 간질간질하면서 시원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으로 사는 것이 내 스타일이지’ 이런 마음으로 연기할 때가 많은 것 같다.”

  
▲ 사진: ㈜인디스토리

그럼에도 그 또한 연기자이기 때문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색깔의 배역에 대한 갈증은 없을 수 없다. 특히 어린 시절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배역이 많았다고 말한 이윤지는 앞으로 걸어나가고 싶은 연기 인생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새로운 배역에 대한 갈증은 어렸을 때 더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젊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제는 보통 엄마들이 ‘너 참 좋겠다 먹고싶은 것도 많고’ 그러지 않나. 나이가 들 수록 더 느긋해지는 것 같다. 같은 역할을 반복해서 하더라도 제 연기가 다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훨씬 더 하고 싶은 영역이 많아진다. 제가 계속 달라지고 있으니까 스스로 기대가 되고 배우로서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면 좋겠다. 제 삶이 역할로 잘 쓰이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이윤지는 ‘드림팰리스’에 대해 거울 같은 영화라고 비유했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입장에서 이입한 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며, 깊게 이입할 수 있는 몰입감 또한 더할 수 있었다.

“처음에 큰 스크린에 선영 언니 얼굴이 등장한다. 한 여자 얼굴로 시작하는 이 영화가 모두에게 공감을 줘서 되게 신기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드림팰리스’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가 들어갈 여지가 많이 있다. 스펙타클한 느낌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더 내 마음을 담아서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생각나는건 영화제에서도 그렇고, 공감하는 연령층이 너무나 다양했던 것 같다. 아마 다 각자의 입장에서 봤던 것 같다. 꼭 극장에 가셔서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 자신을 봐라’같이 말하는 심오한 영화가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거울처럼 봐진다.”

마지막으로 이윤지는 ‘드림팰리스’를 감상할 예비 관객들에게 작은 팁을 전했다.

“영화를 볼 때 물이나 음료는 필요할 지 모르겠다. 속타면 마셔야 한다. 휴지도 한 두장 챙기는 게 좋다. 그런데 팝콘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웃음). 극장에서 드시면 목이 메여서 기침이 나오실 것 같다. 하하호호 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분명히 아닌건 맞지만 걸쭉한 눈물이, 혹은 생각들이 관객분들이 피하지 못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영화 ‘드림팰리스’는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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