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취미생활’ 하명미 감독 “삶을 다시 되찾아가는 여정 함께해 주셨으면”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7-08 05: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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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섹션’월드 프리미어 상영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불합리하거나 불평등한 조건 안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할 권리나 의무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어떤 식으로든 아무도 안 볼 때 살짝 꼬집기라도 하면서 자신의 것을 다시 쟁취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음 하는 바람이 있다.”


‘그녀의 취미생활’은 폐쇄된 공동체 마을에서 천덕꾸러기로 살고 있는 ‘정인’(정이서)이 마을에 새로 이사온 이웃집 언니 ‘혜정’(김혜나)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미스테리 범죄 드라마로, 서미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섹션’에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 하명미 감독 (사진: 웬에버스튜디오)
 

작품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하명미 감독은 지난 4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스포츠W와 만남을 가졌다.

영화는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꼽혔다. 3회의 상영 일정은 온라인 예매가 열리자마자 모두 매진됐고, 감독과 배우들은 꽉 찬 관객석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하명미 감독은 “너무 놀랐다. 되게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들의 팬이 많은 것도 있고, 원작 소설 독자분들이 오래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해 하셨는데 그 분들이 영화제를 찾아 주셔서 봐 주신게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랑이 더해져서 매진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하명미 감독은 부천 영화제와 긴밀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앞서 단편 영화 ‘도르래’(2016)를 통해 이미 부천 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감독은 장편 데뷔작 ‘그녀의 취미생활’을 통해 다시 한번 부천 영화제와 함께하게 됐다.

“‘도르래’는 코믹 호러 장르 였고, 굉장히 이상한 영화였다. 그래서 이상한 영화들이 많은 미국의 ALTER라는 호러채널에 상영 되기도 했었다. 그 채널을 시청하시는 분들은 아직도 ‘도르래’를 좋아해 주신다. 미국에 ALTER가 있다면 한국에는 부천 영화제가 있다. 여기는 내가 이상해도 괜찮은 곳이다. 당시 제 영화를 초청해 주신 것에 감동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장편 또한 부천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 사진: 책 끝을 접다


서미애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부터 다루고 있는 주제에 관심이 갔다고 전한 하명미 감독은 극 중 내용처럼 도시에서 이주해 폐쇄된 공동체 속에 들어가 살아본 경험이 있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 역시 존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나와 내 친구들의 얘기를 잘 녹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매력이 있었다.”며 영화화의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말했다.

폐쇄된 공동체 속에서의 폭력이 실제 농촌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큼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특정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기 보다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정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조직, 사회의 폐쇄된 공동체 안에 놓인 최약체. 불합리하거나 불평등한 조건 안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할 권리나 의무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어떤 식으로든 아무도 안 볼 때 살짝 꼬집기라도 하면서 자신의 것을 다시 쟁취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음 하는 바람이 있다.”

본인의 경험을 녹여낼 수 있는 주제인 것과는 별개로 감독은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삶을 빼앗긴 사람들이 다시 되찾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창작자로서 매력을 느낀 부분을 말하기도 했다.

“사실 원작에서는 ‘정인’의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공간을 제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다시 되찾는 과정을 그리면서 제가 원하는 주제가 나올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사진: 트리플픽쳐스
 

원작에서 그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창작해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는 반면, 원작 속 글로 묘사된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마음 또한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하명미 감독에게 있어서는 ‘정인’의 각성 단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과밭이 그러했다.

“원작에서는 사과꽃이 피고 농익는 순서에 따라 계절감을 보여주고, 그 안에 정인의 각성 단계들이 잘 보여진다. 근데 저희는 촬영을 여름에 했고 계절감을 다 영화에 담기가 힘들어서 그게 좀 아쉬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원작에 나오는 색감들을 잘 표현하려 노력했다. 영화 속에서도 처음에는 사과꽃을 피우고, 작은 사과로 시작을 하는데 복수에 치달을 때가 되서는 다 익어있는 사과밭이 나온다.”

농익어가는 사과밭의 풍경이 ‘정인’의 감정선을 그리기 위한 방법이었다면, 애호박 농사를 짓는 장면은 ‘정인’이 폐쇄된 공동체 속에서 억눌려있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작에 정해진 크기로만 자라게 하는 애호박 농사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애호박이 작게 열렸을 때 비닐을 씌우면 그 크기만큼만 자란다.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비닐하우스를 찍고, 그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정인이 안에서 애호박 농사를 하고 있는데 그 손 안에는 또 다시 작은 애호박이 비닐에 담겨있는. 마트료시카처럼 가둬놓고 있는 환경을 보여주는데에 힘을 많이 들였다. 첫 상영 때 그 질문이 나오길 바랬지만 아무도 얘기를 안 하더라(웃음)”

‘그녀의 취미생활’은 ‘정인’과 ‘혜정’을 주축으로 한 버디 무비로 여성 서사를 그리고 있다. 기존에 여성 서사 영화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냐는 질문에 감독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 영화 너무 좋아한다. 최근 들어 점점 많아지면서 제가 이런 얘기를 듣고 즐길 때마다 해방감 느낀다는 걸 알게 됐고, 여성 서사가 더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여성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다. 제가 남자면 남자 얘기를 했을 거다(웃음) 요즘 여성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 입장에서는 아직 부족하다.”

 

▲ 사진: 트리플픽쳐스


정이서, 김혜나 두 배우를 ‘정인’과 ‘혜정’으로 캐스팅 한 이유도 들어볼 수 있었다. 하명미 감독은 정이서에 대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생각한 ‘정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명 같은 첫 만남과 함께 정이서를 통해 얻은 영감을 전했다.

“첫 인상부터 밝고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그 모습을 보고 정인이라는 캐릭터한테 이서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같은 결말로 이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인은 타인에 의해서 빼앗겨진 삶을 사는 인물 아닌가. 그래서 이서 배우에게서 에너지를 제한했을 때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밝은 모습을 향해서 여정을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이어 하명미 감독은 ‘정인’을 이끌어주는 언니 ‘혜정’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캐릭터 구축부터 난항을 겪었다고 밝힌 그는 “잘못 그려지면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피상적인 모습의 '센언니', 아니면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언니처럼 보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은 공감을 많이 못 얻어낼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감정도 없고 인간적이지 않은 사이코패스의 모습 또한 그리고 싶지 않았다.”며 당시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깊은 고민을 거친 감독이 ‘혜정’의 얼굴로 김혜나를 선택하게 된 가장 첫번째 이유는 김혜나의 ‘서정적인 눈빛’이었다. 배우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극 중 ‘혜정’의 대범한 언행이 맞물렸을때 느껴지는 이질감에 초점을 맞춘 감독은 김혜나가 ‘혜정’을 연기해 줬기에 캐릭터가 입체화 되었다고 말했다.

“혜나 배우는 워낙 따뜻하고 정이 많아서 굉장히 인간적인 부분이 많다. 이런 사람이 어떤 아이러니한 상황때문에 변화된 계기가 있었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독한 여자가 됐다고 했을 때 충돌되는 이미지 안에서 히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나 배우의 이미지로 독한 말을 하거나 냉정하게 얘기했을 때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내면하고 보여지는 면이 달라지는 지점들이 재미었다.”

감독은 촬영하기에 앞서 ‘정인’과 ‘혜정’의 테마 컬러를 잡아두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혜정의 색깔은 하양과 빨강으로 잡았었다. 분노하고 안에 들끓는 화가 있지만 그걸 차분하게 가라앉혀 놓고 감추고 있는 느낌. 정인은 초록과 파랑이였다. 초록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상쾌함을 주는 색이 아니라 갑갑한 시골의 색을 입히고 있는 초록이다. 그런 눅눅한 색에서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푸른색으로 가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생각했다.”며 대비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를 컬러로 표현했다.

  
▲ 사진: 트리플픽쳐스

‘정인’과 ‘혜정’의 교류는 둘만이 아는 뒷 산의 지름길로 시작된다. 촬영 장소가 기존에 존재했냐는 질문에 하명미 감독은 “새로 구현을 한 거다. 제가 직접 했다. 막내랑 땡볕에서 잘라내고 동그랗게 뜯어내서 통로를 만들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줬다.

“사실 그 장소를 세트로 만들고 싶었다. 큰 나무 속의 토끼굴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서 콘티도 다 짜놨었는데 예산상 세트로 구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픈 세트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나뭇가지 같은 것을 엮어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지름길을 만들었다. 혜나 배우도 지름길을 사용해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 찍을 때 길이 없는데도 길이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연기했다.”

‘그녀의 취미생활’은 오는 8월 말 극장 개봉이 예정되어있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가 있냐는 물음에 감독은 “한 시간을 얘기할 수 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그녀의 취미생활'은 '힐링 스릴러'다. 처음 상영한 날 GV에서 건진 말인데 너무 좋아서 요즘 꽂혀있다. 저희 영화 너무 예쁘다. 풍경과 자연을 아름답게 담아서 큰 스크린으로 만나보셔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감독은 “무엇보다도 저희가 크게 자랑할 만한게 음악”이라며 “클래시컬한 음악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데, 이걸 극장 사운드로 경험해야만 영화를 완전히 느끼실 수 있다. 집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으면 안된다. 5.1채널로 최고의 스태프들이 붙어서 후반작업 해주셨다. 너무 좋은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극장에서 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곧 극장에서 ‘그녀의 취미생활’을 만나게 될 관객에게 인사를 전했다.

“정인과 혜정이 서로 연대했듯이 관객분들이 두 여성한테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자기가 주인공일 수 없었던 삶을 다시 되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해 주셨음 좋겠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이 여정에 동참해서 같이 연대한다는 마음으로 영화 봐 주셨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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