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특별한 목적 없이 심심해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박하경 여행기'는 그저 무료함을 잊기 위해 백색소음처럼 틀어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화법이 담담하지만 진하고 묵직한 울림도 있고, 판타지인 듯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박하경 여행기'는 배우 이나영과 꼭 닮은 작품이었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박하경 여행기'(연출 이종필, 각본 손미, 제작 더 램프㈜)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선생님 박하경(이나영)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로 지난 5월 24일 공개, 총 8부작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 役 이나영/웨이브, 더 램프㈜ |
이나영은 '박하경 여행기'를 통해 무려 4년만에 복귀했다. 오랜만에 작품을 공개한 소감을 묻자 "대단한 큰 결심은 없었다. 공백기를 깨기보다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편이다. 계속 시나리오는 받고 있었고, 이 작품을 봤을 때 너무 좋았다. 모든 게 다 완벽했다. 구성 자체가 독특했고 이 안에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에 지금 시대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다 좋아서 너무 하고 싶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처음 이나영은 쉽게 생각했다. 그는 '멍때리기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쉽게 1차원적으로 접근했다. "누구를 만났을 때 톤이나 말, 속도 등 어색함까지도 다 다르다. '박하경 여행기'의 톤은 '뭘 하지말자'였다. '덜어내자'. 감독님과 시나리오 회의 때 막연한 말로 거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멍때리면서 보는 와중에 자기가 꽂힌 대사나, 감정, 생각으로 가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 만나는 인연들로는 서현우, 선우정아, 우정원, 한예리, 신현지, 구교환, 박인환, 길해연, 조현철, 심은경 등이 함께 했다. 정해진 틀이 없기에 '멍때리기'만 잘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던 이나영은 점차 캐스팅 라인업이 갖춰지고 내레이션 별 의견을 나누면서 현타를 맞았다고 털어놨다. "캐스팅이 다 돼가고 있어서 이분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채워가야 하나, 흐름이 있나? 현타가 왔다. 너무 걱정이 많이 앞 섰다. 캐릭터도 국어 선생님이라는 설정 말고는 정해진 게 없다. 현장과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만났던 사람도 있으니까 그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에 집중하면 되겠다 싶었다. 현장 가서 봐야는거라 제가 준비할 감정이라는 게 없었다. 감정씬은 제가 아침부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서 부딪히면 됐다."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포스터/웨이브, 더 램프㈜ |
반면 매화 새로운 분위기의 새로운 캐스팅이었기에 부담감은 없었다. 이종필 감독에 많이 기댔다. "여행하듯이 너무 좋았다. 감독님이 부담을 조금 덜어주셨던 것 같다. 배우들끼리의 호흡도 재밌지 않나. 현장에서 카메라 의식도 안하고 했던 장면이 많았다. 감독님이 굉장히 많이 열어주셨다. 포커스가 나가는 장면까지 허용해주신 것은 배루오서는 엄청 큰 경험이다."
또 이나영은 "제가 촬영 중에 모기를 잡았다고 하더라. 전 기억도 안난다.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현장 분위기가 그만큼 열려있었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게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이 주는 편안함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정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3회에서는 '메타멜로'라는 제목으로 구교환과 특별한 로맨스를 펼쳤다. 부산국제영화제 시즌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찍은 에피소드다. "부산영화제 때문에 세 번째 에피를 먼저 찍었다. 욕심나는 씬도 있었다. 유일한 메타멜로고 구교환씨와의 호흡도 제가 기다려왔다. 대화에서 긴 호흡이 있다. 그에 대한 이상한 엇박자와 이상한 화학작용이 있었으면 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보면서 준비했다."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 役 이나영/웨이브, 더 램프㈜ |
작품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났을까?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이나영은 "찍느라 바빴다. 찍을 때는 정신 없어서 모르고 빠져 나와서 에피소드를 생각해봤다. 뭐가 에피인지 모르겠더라. 나중에는 판타지일수도 있고 진짜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스태프분들이 되게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어서 그것도 재밌었다"며 웃었다.
4회 에피소드에서는 속초로 떠나서 과거 가족여행을 회상한다. '돌아오는 길'이라는 주제로, 속초에서 돌아오는 길에 박인환을 만난다. 이나영은 대선배 박인환에게 가장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박인환 선생님과 싸울 때 말고, 버스 안에서 서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손녀딸과 이야기하는 씬이 있다. 그 장면은 사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어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 표정이 나오는데 어떡하지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까지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시는구가 싶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분위기와 캐릭터가 다르니까 같은 기준으로 둘 수가 없다. 감정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잘 조절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소한 자극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서로 디벨롭되서 잘 넘어간 것 같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 정말 흘러가는대로 담겨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나영 역시 '박하경 여행기'를 따라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희안한 경험을 많이 하긴 했다. 정해진 캐릭터가 없으니까 무방비한 자유로움과 감독님한테도 엔지나는 장면이나 어색할수록 더 재밌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잘 안 짜여지는 것 자체가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 役 이나영/웨이브, 더 램프㈜ |
이나영은 "2회 군산 에피소드 '꿈과 우울의 핸드드립'에서는 노래만 잘해야겠다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한예리씨랑 찍는데 너무 많이 울었다. 심지어 못 쓸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경이의 복잡한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것 같아서 많이 누르는 느낌으로 했다. 5회 '춤추는 캥거루'에서 춤추는 씬은 감독님이 그런 표정을 표현해줬으면 하셨다. 흥에 겨워서 막 따라 추는 것. 일단 뭔지 모르지만 어색하게 뭘 했다. 처음에는 좋게 나왔는데 두번째는 안 좋더라. 학교 복도에서 춤추는 씬은 연습했었다. 원래 못췄는데 몇번 가니까 익숙해져서 잘 춰지더라. 먼저 보고 오라고 했었는데 현장에서 연습해서 따라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박하경 여행기'는 이나영을 닮은 느낌이다. "지인들은 제 평상시 모습을 안다. 진짜 이나영이랑 얘기하는 것 같은데? 라고 하더라. 저의 리액션까지도 진짜 같다고 하더라. 하하."
이나영에게 '박하경 여행기'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그는 "너무 좋아하는 구성에 스스로도 재밌었다. 여행이라는 매개체로 저도 사람을 만나러 다닌 이야기기인 것 같아서 좋다. 저도 굉장히 세상을 본 느낌이다. 공간도 사람도. 선을 두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나온 연기와 표정 감정도 너무 좋았다. 경계가 없었던 것에서 열어놓으니까 감정이 자유자재로 불현듯 나올 수 있는게 인간이구나 느꼈다."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울릉도다. "하루만에는 어려울 것 같다. 저는 여행가면 조금 더 계획적이긴 하다. 촬영할 때 첫 씬이 기차씬으로 목포가면서 찍는건데 진짜 잤다. 다들 걱정했는데 저는 괜찮다고 했다. 목포에 도착해서 스태프 감독님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보니, 오히려 새벽에 출발해서 하루가 길더라. 여유가 엄청 많더라. 당일치기 너무 괜찮다고 느꼈다. 저는 최소 2박, 3박은 가야지 둘째날은 핸드폰을 멀리하고 놀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 찍으면서 설득이 된 부분이다. 제주도 당일치기도 생각해보게 되더라. 숙제같은 것을 덜어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