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 킴, "포기하고 싶던 순간 '나는 상상 이상이다' 자기최면 걸었죠"

임재훈 기자 / 기사승인 : 2019-10-22 13: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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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챌린지 사상 첫 여성 시즌 챔피언 오른 카레이서 지젤 킴 인터뷰
▲지젤 킴(사진: 스포츠W)
  

지난 14일 전라남도 영암군의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는 한국 모터 스포츠 사상 세 번째 여성 시즌 챔피언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2018 엑스타 슈퍼챌린지' 슈퍼스파크 클래스에서 시즌 챔피언에 오른 지젤 킴(Gisele Kim, 팀 혜주파).


그는 이날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4위로 결승선을 통과, 포인트 15점을 추가하면서 최종 총점 78점을 기록해 이날 2위로 들어온 박영일(총점 75점)을 3점차로 따돌리고 시즌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국 모터 스포츠에서 여성 드라이버가 챔피언에 오른 것은 지난 1995년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 MBC그랑프리 현대전에서 챔피언에 오른 김주현, 2005년 BAT GT 챔피언십 시리즈 포뮬러 1800 B클래스에서 챔피언이 된 강윤수에 이어 지젤 킴이 사상 세 번째다.

 

비록 아마추어 드라이버이기는 하나 지젤 킴의 이번 챔피언 등극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그가 현재 국내 굴지의 모바일 유통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으로 주말도 없이 사무실과 서킷을 오가는 강행군 끝에 카레이스 입문 불과 1년 만에 단일 대회도 아닌 시즌 챔피언의 자리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시즌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스파크를 몰고서는 단일 대회 우승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또 다른 경차인 모닝을 타고 첫 참가한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의 모닝 챌린지 레이스에서는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포츠W는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지젤 킴을 만나 카레이싱 입문과 성장 과정, 그리고 여성 카레이서로서 처음으로 슈퍼챌린지 시즌 챔피언에 오른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여성 드라이버로서 한국 모터 스포츠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사진: 지젤 킴 인스타그램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사실 조금은 힘들었죠. 데뷔 시즌에 정말 여러가지 일이 많았어요 리타이어 하고 싶은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분명 상상 이상이다’ 라고 스스로 자기최면을 걸었던 것이 결국엔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 속에서 상상 그 이상을 보여드릴 수 있던 것 같아요."

시즌 챔피언에 오른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난 1년은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수동운전도 할 줄 모르던 제가 무작정 차를 사서 감히 1등하고 싶다고 시작했던 말도 안되는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그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만들어 주신 혜주파 팀원들과 함께 달려주신 모든 선수분들께 감사해요."

지젤 킴은 이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코칭은 물론이고 멘탈까지 잘 챙겨주신 김대욱 감독님과, 전년도 시즌챔피언으로 올해 시즌 2위에 오른 박영일 선수, '페이스 메이커' 홍성우 선수, 함께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투어 팀으로 옮겨 더 큰 레이스를 경험하며 가끔 무전을 잡아주는 태희 언니, 마지막으로 팀에서 레이스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권영륵 대표님께 감사드려요."

그는 특히 올 시즌 2위를 차지한 전년도 시즌 챔피언 박영일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있었다. 시즌 챔피언 등극 당시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멘트가 포함되었던 것. 

"박영일 선수는 작년도 챔피언이셨고, 저한테도 항상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양보도 많이 해 주시고...그래서 무척 고맙고 그런 분이에요. 그런데 우승 당시 나간 인터뷰 보도자료가 오해의 소지가 있게 나가서 너무 죄송하고 힘들었어요." 

지젤 킴의 카레이싱 입문은 말 그대로 '친구따라 서킷 간' 케이스였다. 

"서킷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를 따라 KSF를 놀러갔다가 여성드라이버 최 자스민 선수를 보게 됐어요. 제 눈에는 예쁜 레이싱 모델들보다 땀에 젖은 여성 드라이버의 모습이 더 예쁘고 멋있어 보였죠. 마음 속으로만 여성 드라이버를 동경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우연히 유투브를 구경하다 여성 드라이버인 박혜연 선수가 스파크 레이스에 참가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 참여하게 됐어요." 

 

▲사진: 엑스타 슈퍼챌린지
 

서킷 입문을 결정한 지젤 킴은 경주용으로 만들어진 중고 스파크 차량을 구매했다.

"레이스는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스파크는 출력도 높지 않고, 사고 위험도도 클 것 같지 않았어요. 수리비 등의 측면에서 부담이 적을 것 같아, 무작정 스파크 경기차를 중고로 구입했죠."

경기용 차량까지 구입한 지젤 킴은 국내 최정상급 카레이스인 ‘슈퍼레이스 슈퍼6000 클래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프로 드라이버인 정연일이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드라이빙 스쿨에서 서킷 주행의 기초부터 탄탄하게 기량을 다질 수 있었다.

실제 경기가 벌어지는 서킷에서의 연습은 힘들고 위험한 상황을 이겨내는 과정이었다.

"다 같이 연습을 할 때 차가 너무 느리니까 사실 많이 힘들어요. 고사양의 차들에게 길을 비켜 주기도 해야 하고...그런데 비켜 주더라도 그럴 수 있는 코스나 자리가 있는 것인데 쉽게 추월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무리하게 추월이 들어오거나 할 때는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경주는 지젤 킴에게 분명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신나게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정말 솔직한 것 같았어요. 제가 조작하는 대로 차가 움직이는 거니까...솔직하게 소통하는 기분이 좋았았어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자동차 경주 현장에서 여성 드라이버로서 경쟁한다는 것은 경주 자체도 힘들지만 경주 외적인 면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부 팀에서는 신예 드라이버로서, 그것도 여성 드라이버인 지젤 킴이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올리자 차량에 '부적절한 행위'를 한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저희는 언제든 차를 검사하자고 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순정부품 대신 그보다 더 좋다는 평판을 가진 부품을 한 두개 씩 끼워 넣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는 혹시나 그런 말들이 나올까봐 볼트 하나 엔진 오일까지 순정품만 사용했죠."

스스로 관심과 재미를 느껴 시작한 자동차 경주였고, 이런저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지만 차근차근 한 시즌을 치러낸 결과 시즌 챔피언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돌이켜 보면 경쟁이라는 상황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첫 경기 빼고는 모든 경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고, 사고도 있었고, 실력을 키우고 하는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죠.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 자체가 저를 성장시켰던 것 같고, 동료들과 함께 하고 감독님께 배우고 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지젤 킴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제스쳐를 가지고 있다. 손가락을 일자로 펴서 뿔처럼 정수리 위에 올리는 제스쳐다. 시즌 챔피언이 결정됐을 때도 포토그래퍼들을 향해 어김 없이 이 제스쳐로 포즈를 취했다.

 

"영국 탑기어 MC 제레미 클락슨이 프로그램 중에 펼치는 대결에서 승리했을 때 상대를 놀리려고 손가락으로 '루저(Loser)'의 이니셜 'L'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올려요. 거기에서 생각해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의미는 아니고 IT업계에서는 스타가 된 기업을 '유니콘 기업'이라고 하는데 '카레이스계의 유니콘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유니콘의 뿔을 세운 것처럼 하는 동작을 하고 있어요. 남들이랑 같은 동작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 고민 많이 했어요.(웃음)"

여성 카레이서를 여자친구로 둔 남자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지젤 킴에게는 올해 초 연인이 된 네 살 연하의 '그'가 있다.

"남자친구가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서 말렸어요. 그리고 (서킷은) 남자들이 많은 곳이잖아요. 그래서 질투도 많이 하고...그런데 제가 계속 잘 해 나가고 가끔 언론에 기사도 나고 하니까 지금은 응원해 주고 있어요."

그렇게 남자친구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남자친구와는 또 달랐다.

"사실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이하세요. 그래서 이번 시즌 끝나고 저한테 '잘 했는데 올해까지만 하는 것은 어떠냐'라고 하셔서...현재 잘 설득하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언제까지 서킷에서 카레이서로 활동할 수 있을것 같냐는 물음에 지젤 킴에게서 '탈 수 있는 만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시작할 때는 '타 봐야 얼마나 타겠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탈 수 있는 만큼 타고 싶어요. 마음만 먹으면 마흔까지도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차를 타면서 저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에요."

올해 아마추어 드라이버로서 서킷 입문 1년 만에 경차를 몰고 우승을 차지한 만큼 지젤킴은 내년에는 좀 더 상위 레벨을 경험해보고 싶다.

"아직 어느 클래스에 참여해 볼 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내년 시즌에는 스파크, 모닝을 비롯해 상위 클래스 차량도 섭렵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이제 막 한 시즌이 끝났지만 지젤 킴의 시선은 벌써 내년 시즌을 향하고 있다. 마음이 가는 만큼 새 시즈에 보완해야 할 부분들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레이스는 남녀가 함께 경쟁을 펼치고 경험이 중요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많이 부족해서 남들 몰래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아직도 몇몇 코너는 완성이 되지 않아서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계시즌 때 마저 완성하고 내년 시즌을 맞이하고 싶어요." 
▲사진: 지젤 킴 인스타그램
데뷔 시즌에 시즌 챔피언이라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된 지젤 킴은 내년에는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타이틀을 방어해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서킷에 나서야 한다.  내년 시즌 지젤 킴이다시 한 번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유니콘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자신의 바람대로 상위 클래스의 차량을 타고 상위 레벨의 대회에서 기량을 뽐앨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지젤 킴은 팬들에게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각오를 전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더 성숙한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작년 이 맘 때 1등을 꿈꾸던 저와 같은 슈퍼 루키들에게 귀감이 되는 국내 최정상의 여성 드라이버로 더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지젤 킴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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