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개혁을 위해 민간합동으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첫 권고안을 내놨다.
지난 1월 8일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이후 입법부인 국회에서 스포츠 윤리센터 설치, 비위자 처벌 강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12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한 건의 처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행정부 차원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에 대한 권고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권고안이다.
이번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의 핵심은 체육계가 배제된 독립적 스포츠 인권 기구의 설립이다.
이 기구는 체육계와 분리된 별도의 신고·상담 시스템을 구축, 연중 24시간 운영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신고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이는 지난 오랜 세월 ‘침묵의 카르텔’ 속에 스포츠 성폭력 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원인이 그 동안 체육계 인권 문제를 다루는 각종 위원회나 기구에 예외 없이 체육계가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강력한 실천 방안을 내놓는 대신 매번 비슷한 알맹이 빠진 대책을 내놓는 선에서 문제를 덮어왔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리듬체조, 쇼트트랙, 바둑, 태권도, 유도 등 사실상 체육계 전반에 걸쳐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지만 사건이 해당 경기단체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면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는 솜방망이 징계 후 원직에 복구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고, 가해자는 온갖 2차 피해를 당한 끝에 해당 분야에서 매장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혁신위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속한 종목의 경기단체나 체육계 학연, 인맥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상태에서 오로지 그 행위의 성격과 심각성을 판단해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고, 이를 체육계가 반드시 실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진 기구가 뿌리 깊은 ‘침묵의 카르텔’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판단, 이번 권고안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혁신위는 이번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스포츠 세이프’를 언급했다.
최근 미국에서 별도 입법을 통해 출범한 인권 기구인 스포츠 세이프는 스포츠 내부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 구성된 조직으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조사, 징계 요구권을 지니고 있으며, 체육단체 등이 조사 및 징계를 거부하거나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체육계를 배제한 상태에서 공정한 조사와 사후 조치를 취한 다음 그와 같은 조치에 해당 체육단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이행 강제 장치를 함께 가짐으로써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이룰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조직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과연 이런 조직의 출범과 원만한 운영이 가능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우선 체육계 개혁에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대한체육회를 위시한 체육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체육계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수들과 체육인들의 인권 문제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런 논리가 통할 수 없어야 한다.
결국 이번 혁신위의 권고안이 실현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부, 특히 문체부의 의지다.
혁신위는 문체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에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해 권고안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또한 9월까지 스포츠 인권 보호 기구 등 설립안을 마련해 예산을 확보해 2020년까지는 기구가 운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혁신위의 대책에는 정부 여러 부처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결국 문체부가 이 문제와 관련, 얼마나 크고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느냐에 스포츠 인권 보호 기구의 조속한 출범과 제자리 찾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연은 아니다.
사실 전임 도종환 장관 시절 문체부는 무능과 무사안일의 극치를 보여줬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의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한 처신과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에 대해 주무부처로서 어떤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한 채 끌려 다니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혁신위의 이번 권고안에 대해 정부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강력한 실행력을 통해 체육계의 뿌리 깊은 ‘침묵의 카르텔’을 끊어냄과 동시에 체육계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국 체육계는 이제 ‘스포츠 강국’보다는 ‘스포츠 선진국’을 추구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인권 문제를 공명정대하게 다루게 될 한국판 ‘스포츠 세이프’의 온전한 출범과 조기 정착은 스포츠 선진국을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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