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임가을 기자] “그림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표현할 수 있다. 작품을 농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 사진: 미디어캐슬 |
인기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으로 애니메이터로 데뷔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유려한 영상미로 주목받은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를 연출해 제 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국제경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영화 ‘항구의 니쿠코짱!’(27일 개봉)을 기념해 다시 한번 한국에 찾았다. ‘항구의 니쿠코짱!’은 항구의 배를 거처로 삼은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가진 두 모녀 니쿠코와 키쿠코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스포츠W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미디어캐슬 본사에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과 만남을 가졌다.
▲ 사진: 미디어캐슬 |
‘항구의 니쿠코짱!’은 2021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한국에서 이미 상영한 바 있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배경에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2023년 한국의 극장가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붐이 일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심정에 대해 묻자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다른 것 하나 없이 한국에서 개봉하는 것 자체가 기쁘다. 무사히 개봉할 수 있도록 관계자분들이 여기까지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며 2년 전과 변함 없는 마음가짐을 전했다.
‘항구의 니쿠코짱!’은 니시 카나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해당 소설을 읽은 일본의 유명 예능인 아카시야 산마가 직접 기획·투자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원작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하자는 아카시야 산마의 제의에 처음에는 “진심이냐”고 반응했다고 밝혔다. “사실 이 원작 소설은 실사로 만들어도 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아카시야씨가 이 소설을 애니메이션의 힘에 맡겨보겠다고 하시고 기회를 주셨다는 점에서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 사진: 미디어캐슬 |
충분히 실사로 만들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자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애니메이션과 실사화를 비교했을 때 힘을 가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감독은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온전함을 꼽았다.
“빛이 나는 부분까지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애니메이션이다. 그림으로서 표현을 하게 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애니메이션과 실사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실사 영화는 실제 장소에서 찍을 수밖에 없고 실존하는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이 배우가 완벽하게 캐릭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배우의 얼굴에는 이미 그 사람의 여러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관객의 몰입이 캐릭터가 아닌 배우 쪽으로 갈 것 같은 걱정이 생기는 거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림이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을 굉장히 농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화와 달리 소설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예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항구의 니쿠코짱' 역시 마찬가지로 작품 속에 그려지는 캐릭터의 외형은 소설의 묘사를 따랐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이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외형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래서 니쿠코는 원작 보다도 ‘니쿠코’스럽게 그려냈고, 키쿠코는 아무 치장도 하지 않았는데도 누가 봐도 예쁜 아이로 그렸다. 소설 속 니쿠코의 키와 체중에 대한 정보가 실제 설정이 아닌 개그라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실제 사람 모양이 니쿠코처럼 될 리가 없지 않나(웃음)”
▲ 사진: 미디어캐슬 |
“일단 니쿠코는 정신이 없고 안정되어 있지 않다. 입을 닫고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이 전혀 없고 모든 것에 반응을 하고 있어서 애니메이터들이 니쿠코를 그릴 때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것이 결국 니쿠코의 성격이기도 해서 정신 없이 계속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반대로 키쿠코는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많다. 생각하면서 가만히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멈춰 있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서 있는 포즈 하나에도 제대로 의미가 들어 있도록 그려내려고 했다.”
이렇듯 니쿠코와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딸 키쿠코는 극 중 또래 아이들과 갈등하며 내적 성장을 보이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아이들을 그리는 건 매우 고심한 부분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백을 두고 표현을 하고 싶었다. 어린아이들은 갑자기 성장하지 않지 않나.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에 적어도 성장을 위해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계기와 현상들은 섬세하게 그려내야 되겠다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한 계기와 현상들이 표현될 때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 했고, 아이들이 겪는 성장의 일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의 결론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하지만 저는 적어도 이번에 그려낸 아이들의 세계에 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 속에서는 오로지 아이들의 계기 만이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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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니쿠코짱'을 말할 때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작품에 참여한 코니시 켄이치 작화감독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다수의 지브리 작품을 도맡았고 키무라 신지 미술감독은 '이웃집 토토로'에 참여한 바 있기 때문에 작품에는 지브리 특유의 자연 친화적이며 편안한 감성이 잔존한다.
특히 비가 오는 와중 버스 정류장에서 나란히 서있는 장면은 ‘이웃집 토토로’를 한번이라도 감상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아챌 수 있을 만한 오마주다. 그러한 이유로 니쿠코의 거대한 몸집과 큼지막한 입, 해맑은 인상은 마치 토토로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추측을 그대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에게 물었을 때 그는 “잘 눈치챘다”며 미소와 함께 인정했다.
“일단 이 영화의 그림을 담당하신 분이 지브리 쪽에서 일을 하신 분이지 않나. 그러니까 ‘이웃집 토토로’는 따지고보면 그 분의 스승님이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랑 비슷하게 가겠다라고 했을 때 ‘스승의 작품인데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영화가 ‘이웃집 토토로’를 오마주한 것과 별개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반가울 만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운동회 때 어떤 할아버지가 소설책을 건네지 않나. 그 할아버지가 누가 봐도 거장(미야자키 하야오)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야 이건 안 하면 안되냐’ 얘기를 했는 데도 패스가 됐다. 사실은 오마주 요소를 티가 나지 않게 넣고 싶었다. 그냥 아는 사람 알고, 모르는 사람 모르는 정도로 넣고 싶었는데 지금 보면 그냥 다 그쪽 만화를 가지고 왔구나 생각을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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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니쿠코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음식이다. 극 중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애니메이션이 끊이지 않고 등장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생명이 생명의 근원이 된다라는 것이 음식을 그려내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작품 속 음식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요리를 하는 행위를 농후하게 그려냄으로써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먹는다는 행위가 인물 간의 농후한 연결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 하고 있다. 그런데 애니메이터한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너무 깊이 생각해서 이상해진다. 그래서 애니메이터한테는 단순히 맛있어 보이게 그리라고 디렉팅 하는 편이다.”
음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가 오프닝이다. 과거의 니쿠코에게서 남자가 떠나갈 때마다 고기(일어 발음으로 니쿠)를 썰어내며 막을 구분짓는 듯한 연출에 대해 그는 도입부를 위해 기획한 ‘고기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적인 규범이나 설정이라는 것은 굉장히 지루해지기 마련이라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본격적인 이야기까지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고기 투성이로 가자는 생각으로 일명 ‘고기 작전’을 세웠다. 그 힘들고 지루한 장면을 고기로 극복하자. 고기를 잘라내는 연출을 통해 지루한 설명들을 확 넘어가고 바로 키쿠코의 이야기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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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이름에 일어로 고기라는 뜻의 ‘니쿠’가 들어가있는 것처럼 극 중에는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과 한자를 이용한 개그가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서 작품을 상영할 때는 언어권이 달라 유머 코드나 말장난, 개그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는 우려 또한 존재했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거다”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번역가 분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 속 슬랭을 개봉하는 나라에 따라 맞춘다고 하더라도 화면에 말장난을 설명하는 그림이 나와있지 않나. 때문에 그대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니쿠코만의 이상한 어휘가 존재하지 않나. 세세한 것까지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어휘를 통해 그가 매우 밝고 특이한 사람이라는 정보가 전달 된다면 괜찮을 것 같다.”
유쾌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성우진 또한 작품에 걸맞는 이들로 이루어졌다. 아카시야 산마의 주변인, 즉 코미디언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성우진에 대해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목소리 연기에 있어서 성우나 배우, 코미디언이 크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캐스팅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인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캐스팅 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연기하는 사람에 대해 직업 별로 카테고리를 나누어서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이 영화를 잘 만들겠다’ 라는 마음이 존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모두가 힘을 합하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아카시야씨를 중심으로 해서 모여준 분들이 좋은 방향성과 함께 더빙을 해 주셔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항구의 니쿠코짱'을 관람할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따스한 마음을 갖게 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따스한 마음을 갖게 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한국의 관객 분들께는 '항구의 니쿠코짱'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꼭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