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룹'은 내 자식들을 위해 기품 따윈 버렸다!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로, 최종회 최고 시청률이 20.1%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드라마 '슈룹' 귄의관 役 김재범/SM C&C |
종영 후 스포츠W와 만난 김재범은 "섭섭한게 아무래도 크다. 수염 붙이러 가야할 것 같은데 허전하고 그렇다. 저는 아직 드라마 경험이 많이 않아 익숙한 현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그 순간은 즐거웠다. 섭섭한 마음이 크다"고 종영소감을 전했다.
김재범은 '슈룹'에서 동궁 담당 권의관으로 분했다. '슈룹' 방영 전, 그의 소개는 딱 한 줄이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할수록 동궁 담당 어의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서 극의 중심에 섰다. 시청자에겐 반전이었지만 김재범은 자신이 극의 중심이 되는 때인 13회를 기다렸다.
"처음 미팅 할 때 감독님께서 권의관은 뒤에 뭐가 있다고 하셨다. 출연 결정을 하면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미팅이 끝난 후 결정하고 다음날 만나서 캐릭터의 이름이 이익현이라는 사실과 함께 결말에 대해서 들었다. 배우로서 서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7회까지 대본을 받았을 때는 동궁 담당 어의 였기에 분량이라고 할 정도도 안됐다. 하지만 13회부터는 굵직굵직한 이야기가 나와서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그때를 기다렸다."
▲드라마 '슈룹' 귄의관 役 김재범 스틸/tvN |
"감독님께서 이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연기력은 있어야 하는데 얼굴은 새로워도 된다고 하셨다. 저는 김혜수 선배님이 추천해주셨다고 들었다. 지난해 '인질'에서 눈이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저는 평범하게 쳐다봤을 뿐인데 어릴 때부터 오해를 샀었다(웃음). 이익현은 속내를 숨겨야 하는 인물이니, 감독님이 어떤 모습을 보시면서 이 역할을 제안하고 선택해주셨는지 고민했었다."
'슈룹' 촬영은 8개월 동안 진행됐지만, 김재범은 짧게 등장하며 준비 기간을 가졌다. "짧은 촬영이어도 수염을 하나하나 다 붙여줘야 했어서 너무 죄송했다. 정보만 전달하는 씬에도 권의관 입장에서는 내면에 많은게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내면 연기를 했었다. 너무 많이 보이면 안된다. 씬을 하고 컷 하기 전까지 대본에 없는 시간이 있다. 그때 눈알을 굴린다던지, 씬을 채웠다. 감독님이 몇 컷은 쓰셨더라(미소)."
13회부터 화령은 권의관이 세자를 독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곁에 둔다. 김재범이 주가 돼 된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회 엔딩에서는 자신의 모친 폐비 윤씨(서이숙)과 애틋한 재회를 하며 본격 서막을 알린다. "연기는 무대나 어디나 다 똑같이 해야한다. 뭔가 다른 표현을 더하고 싶었다. 누구나 하는 연기에서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튀면 안되고 자칫 이상해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민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 역할에 집중하고 사극의 정석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제가 하는 사극 자체가 차별성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기다렸으니까 즐기면서 하자 싶었다. 감독님이나 스태프 여러분들 배우분들이 굉장한 힘을 주셨다. 공진단 같은 존재였다."
14회 엔딩에서 이익현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화령과 내의원 서고에서 마주한다. 김재범은 "김혜수 선배님도 굉장한 에너지를 주셨다. 선배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했다. 사실 저는 신인이다. 먼저 다가갈 수는 없으니 대본에 집중하고 리액션에 충실하자는 생각이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선배님께서 계속 얘기를 걸어주셨다. 익현의 마음을 물어봐주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봐주셨다. 그 씬을 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며 감사해했다.
▲드라마 '슈룹' 귄의관 役 김재범 스틸/tvN |
이익현은 15회에서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 아들 의성군(강찬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익현은 굉장히 긴 시간 준비했지만, 사실 그 전부터 실패의 길에 섰다. 세자를 죽인 것도 그러면 안되지만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의 목표를 되새긴다. 감정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때부터 큰 의심을 받는다. 15회에서는 막다른길이다. 황원형(김의성)과 함께 궁에 들어가면서부터 난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폭주한다. 이렇게라도 복수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15회 내내 마라톤을 하다가 갑자기 100m 달리기를 한 느낌이었다."
김재범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눈물을 참아내는 것이었다. 사실 화령과 마주한 내의원 서고씬도, 어머니와 재회 씬, 황귀인(옥자연)과의 마지막 씬에서도 그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익현은 세자를 죽였다. 어떤 이유던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참고참고 카메라가 저를 비추지 않을 때 울더라도 꾹 참자 했다. 그래도 못 참고 흘렸는데 감독님이 눈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내의원 서고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장면에서는 안 울 수가 없다. 억울함, 분노, 미안한, 설움이 북받쳤다. 화령이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안 울 수가 없었다. 여러번 테이크를 간 끝에 방송에는 눈물이 고인 정도로만 비춰졌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재회한 씬에서도 눈물 참기가 힘들었다. 13회 엔딩에서도 눈물을 참아냈다."
특히 황귀인은 권의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자신을 단 한번도 여인으로 본 적 없냐고 묻는다. 이에 익현은 그저 자신의 핏줄을 탁란할 사람이 필요했다고 답하면서도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진심을 짐작케 했다. "처음에 사랑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용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나중에 아들 의성군한테 '이런 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미안해한다. 사실 황귀인은 권의관 앞에서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 미안했을 것 같다. 그런 모습에 미안해져서 황귀인에 더 잘해주려고 했을 것 같다. 황귀인이 여인으로 느낀 적 없냐고 할 때는 말을 못하겠더라. 근데 감독님은 여기서도 눈물을 허락치 않으셨다. 옥자연씨에 미안함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칼에 영상 대감의 피라고 할 때는 그렁그렁 하다가 결국 흘렀는데 그게 방송에는 땀처럼 보여서 다행이었다."
인간 김재범도 눈물을 참는 편이라며 "어디서 봤는데 눈물은 방어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성적인 접근이라 생각했다. 이익현은 가슴 아파서 보지 않을 자격 조차도 없다. 이익현도 형제들이 죽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살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지키면서 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걸 보면서 독해져서 이런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세자를 죽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가혹한 인생이었던 것 같다"며 안쓰러워했다. 또 그는 "옥자연씨가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촬영이 끝나고는 공연도 보러 와주시고 그랬다"며 호흡 소감도 덧붙였다.
▲드라마 '슈룹' 귄의관 役 김재범/SM S&C |
15회는 김재범에도, 드라마에서도 중요한 씬이었다. 하지만 그 즈음 김재범은 그동안 잘 피해왔다고 생각했던 코로나19에 감염돼 일주일 촬영이 지연되기도 했다. "저는 제가 코로나19 슈퍼항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촬영 2~3씬을 앞두고 감염됐다. 일주일 안에 촬영이 끝나야하는데 몸이 좀 이상하더라. 저는 소리를 많이 질러서 목이 아픈가 했다. 병원에 갔는데 감기라면서 약을 주더라. 다음날 혹시 몰라 자가키트로 검사했다. 근데 두줄이 뜨더라. 다시 그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확진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전날 자신이 했던 말에 시치미를 떼더라. 그래도 엄청 아프지는 않았다. 목소리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심하지 않았다. 근데 오히려 디션이 좋지 않은 목소리가 이익현의 감정에 도움이 됐다. 아슬아슬하게 촬영을 잘 마쳤다."
김재범은 지난 2018년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뮤지컬, 공연 무대에서 영상 매체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18년차 베테랑 배우이지만 영상 매체에서는 신인이었다. 이어 2021년에는 영화 '인질'로 스크린에 도전,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상 후보도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한 시기인 지난 5년간은 김재범에 더 큰 원동력이 됐다.
"사실 처음 할 때는 모든 것을 걸자는 마음이 아니었어서 절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고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서 너무 바빴다. 무대 하다가 기회가 오면 하는 정도였다. 물론 당시 '시그대'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더 두드려보겠다는 마음은 적었다. 근데 '인질' 이후에 제가 좀 더 본격적으로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때 너무 신기했다. 시상식은 매번 TV에서 보던 장면인데 제가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마음은 10분 정도 됐고, 계속 박수만 쳤던 기억이 있다. '인질' 개봉 이후 좋은 반응을 주시니 더욱 두드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과거에는 뮤지컬, 연극 무대에서 왔다고 하면 특유의 연기 톤을 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체 구분이 없어지고 이정은, 김신록, 김선영, 이규회 등 관록의 배우들이 대세로 떠오르며 편견을 깨고 있다. 김재범은 선배들의 활약에 감사해했다.
"선배님들의 활약은 너무 많은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뮤지컬을 하고 연극을 했으면 선입견을 가지고 보고, 똑같이 해도 그렇게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걸 많이 깨주신 분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저는 나이도 좀 있으니까 연기하는데 있어서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덜 하는 편이다. 연기는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잘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보는 사람의 취향이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다르게 받아들이 수 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내 연기에 집중한다."
최근 김재범이 출연한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형사록'이 시즌2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올 한 해의 마무리는 '슈룹'으로 한다. 김재범은 "긴 시간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바랐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연극 '아트'라는 공연을 하고 있다. 이순재 선생님, 백일섭 선생님, 노주현 선생님도 함께 나오신다. 저도 선생님들의 나이가 되면 '아트' 같은 작품을 친구들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오래 배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슈룹'으로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셨지만 저는 아직은 매체에서는 앞날이 창창한 신인이다(웃음). 내년 한해도 바빴으면 한다. 그리고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일이 많으면 지칠테니까 그걸 한번 이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