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한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인조실록에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는 기록을 중심으로 인조와 소현세자, 소형조씨 등 역사적인 인물들과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다.
▲영화 '올빼미' 안태진 감독/NEW |
안태진 감독은 '올빼미'를 4년 전 제안을 받고 3년동안 시나리오 수정 단계를 거쳤다. "저는 장르물을 좋아한다. 처음 '올빼미'를 제안 받았을 때는 스릴러 사극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맹증이라는 소재도 신선했다."
감독은 처음 주맹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서치를 했으나 '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단순한 뜻만 얻었다. 맹인 카페에 글을 올리고 실제 주맹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정보가 많이 없어서 결국 실제 주맹증을 앓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았다. 하나의 기준이 정해진 게 아니라 증상이 모두 다르더라. 보이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인터뷰를 통해 경수의 주맹증 설정의 기준을 찾아나갔다."
첫 촬영때 슬레이트는 이준익 감독이 직접 쳐주기 위해 왔다. "'왕의 남자' 이후로 이준익 감독님과는 17년동안 꾸준히 연락했다. 시나리오 재미없다고 해주셔서 계속 수정할 수 있었다. 그때 류준열 배우에 수염을 제안해주셔서 첫 촬영이 수염 때문에 3시간이나 딜레이 됐다. 첫 촬영이라 떨리기보다는 정신없이 지나갔다(웃음)."
▲영화 '올빼미' 메인 포스터/NEW |
17년만의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있었기에 마지막 촬영 때는 감정이 동요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촬영을 마쳤다. 첫 촬영 때와는 달리, 그때는 진짜 뭔가 감정이 올라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완성된 '올빼미'는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된 신인 감독답지 않은 디테일한 연출과 미쟝센에 대한 후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톤앤 매너는 '올빼미'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배가시켰다. "스릴러 분위기를 위해 전체적인 색감을 찾아나갔다. 경수의 시선으로 보여드려야 하기때문에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톤을 찾았다. 그게 지금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됐다."
주연을 맡은 유해진과 류준열의 캐스팅은 든든했다. 안태진 감독이 그린 인조는 극 중 문틈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면 속 모습이었다. "제가 생각한 인조는 품위있고 그런 왕의 모습이 아니라 의심과 불안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역할의 전복성과 더불어 캐스팅의 전복성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유해진 선배님께 제안을 드렸다. 출연한다고 말씀해주셨을 때는 정말 기뻤다."
▲영화 '올빼미' 안태진 감독/NEW |
감독의 바람처럼 유해진은 그의 필모 최초로 왕을 연기, '올빼미'를 통해 기존에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다. 특히 감독은 인조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올렸던 문틈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면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수를 떠올렸을 때 디테일한 연기에 중점을 맞췄다. 류준열 배우가 디테일한 표현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경수는 류준열 배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잘해줄 것 같았다. 엔딩의 경수의 얼굴에는 제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감성이 들어있다. 그 표정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올빼미'는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 부부가 귀국하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며 본격 영화의 전개가 펼쳐진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그린 장면은 가장 힘들었던 촬영으로 기억됐다. "그 장면에서 김성철씨는 침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 인조 피부를 대고 있었다. 새벽 2시부터 분장해서 그걸 붙이고 있어서 빨리 떼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경수가 불을 켰을 때와 컸을 때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보여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영화 '올빼미' 안태진 감독/NEW |
시나리오 단계에서 힘들었던 씬은 인조와 최대감의 정전 씬이다. 이 장면은 무려 100가지가 넘는 버전이 존재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장면이 왜? 라고 하실 수 있다. 원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장면이 쓰기 어려운 법이다(웃음).100가지가 넘는 버전이 있다. 정말 촬영 전날까지도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선정된 장면은 자연스럽다. 근데 이전의 버전들은 뭔가 읽다보면 턱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소현세자로 분한 김성철은 캐스팅 때부터 사실 걱정이 있었다. "김성철 배우가 사극이 처음이다. 발성이나 분장이 어울릴지 몰랐다. 현대극에 나온 것을 보니 왠지 잘할 것 같았다. 막상 의상을 입리고 촬영하니 사극 톤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이 정도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대사를 내뱉으면 세자 같더라. 류준열 배우와 함께 찍을 때는 정말 너무 합이 좋았다."
소현세자의 분량이 적어 아쉽다는 반응도 다수다. 소현세자와 경수로 스핀오프 제안이 온다면 연출하겠냐는 물음에 안태진 감독은 "반응이 좋고 두 배우분도 함께 하신다면 하겠다"며 "'올빼미'의 스핀오프니까 '부엉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 '올빼미' 안태진 감독/NEW |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의 조연출을 한 후 17년동안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진했다. '올빼미'는 그에게 첫 상업 영화다. 그 기간동안 묵묵히 응원해준 가족들에 미안하기도 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가족들이 무던한 성격이라서 그냥 묵묵히 곁에서 응원해줬다. 수고했다고 해줬다. '올빼미'를 가족들에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시사회를 통해 볼텐데 재밌게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차기작은 SF 스릴러다. 시나리오는 직접 안 쓰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은 또 직접 쓰고 찍는 것을 택했다. "장르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히치콕 영화 많이 본다.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은데 모두가 말리더라. 하지 말라고(웃음). 지금은 평소 메모를 해뒀던 것 중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끄집어 내서 쓰고 있다. 아직 시놉 단계다.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를 쓸 것 같다."
연출가로서 목표를 묻자 안 감독은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손에 땀을 쥐었다', '미쳤다' 반응이 제일 좋다"며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