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레이서' 고다을, "카레이싱엔 남자부 여자부가 따로 없죠"

임재훈 기자 / 기사승인 : 2019-08-06 16: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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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다을 인스타그램
지난 달 15일 한국의 여성 카레이서 한 명이 대만에서 열린 국제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화제의 주인공은 준피티드 소속 '미녀 레이서' 고다을.
고다을은 지난 달 15일 대만의 펜베이 모터스포츠랜드에서 열린 'TTCC 타이완 투어링카 챔피언쉽' 'B1' 클래스에 출전해 1차 레이스에서 2위에 오른 뒤 2차 레이스에서 1위로 체커기를 받아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카레이서 가운데 한 명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카레이서의 길로 들어서 8년째 서킷을 누비고 있는 고다을은 레이서로서 뛰어난 기량 외에도 빼어난 미모로도 주목 받아왔다.
스포츠W는 최근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고다을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우선 학창 시절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아역 배우로 TV에 출연했어요.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을 만큼 어릴 때부터연기자가 꿈이었죠.”
카레이서 고다을(사진: 스포츠W)
그렇게 연기를 천직으로 삼으려 했던 고다을이 자동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어요. 아버지도 차를 좋아하셨고, 오빠도 차를 좋아했어요. 오빠는 동갑인 사촌 오빠와 공업사나 튜닝샵에 다니면서 자동차 튜닝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저도 많이 따라다녔죠. 나중엔 오빠가 제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차를 몰고 데리러 왔을 정도에요. 그렇게 오빠랑 공업사나 튜닝샵에 가서 자동차를 튜닝하는 걸 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다을은 오빠가 타던 ‘티뷰론’ 승용차를 물려 받아 타고 다녔다. 그런데 좀처럼 전공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공부나 연기 연습보다는 자동차 경주장에 가서 자동차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침 드라마에도 출연했고, 뮤직비디오 주인공도 하면서 좋아질 일만 남은 상황에서 연기를 관두고 자동차에 집중했어요”
고다을이 자신의 천직이라 여겼던 연기자의 길도 마다한 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자동차의 세계로 ‘올인’할 수 있었던 계기는 우연치 않게 거둔 성공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자동차 경주 서킷이 있다는 사실을 자동차를 타면서 알았어요. 드레그 시합(일정한 직선 거리를 달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자동차가 승리하는 경주)을 출전하다 보니까 다른 선수중에 서킷 경기를 가는 사람도 있었죠, 저도 그래서 레이서 라이센스를 따러 갔다가 연습 삼아 트랙 주행을 해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서킷 주행에 매력을 느꼈을 때쯤 고다을은 지인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서킷에서 열리는 시합에 출전을 했다. 단 한 번의 시합이 고다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너무 운이 좋게도 첫 시합에 2등을 했어요 21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포디움에 올라가다 보니까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웃음)…제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기쁨을 얻으니까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더 자동차에 빠져들었어요.”
사진: 고다을 인스타그램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20대 초반의 여성 드라이버가 단숨에 포디움에 오르자 현장의 관게자들과 미디어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고다을은 그와 같은 사람들의 관심이 카레이서의 길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연기자로서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뮤직비디오 주인공을 했어도 얻어보지 못한 주목을 받았죠. 당시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카레이싱 현장에 나타난 여성 레이서가 첫 출전한 대회에서 2위에 입상하다 보니 크게 주목을 받았던 거죠.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그런 자극이 더 많은 힘이 됐어요. 그래서 더욱 카레이서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자의 꿈을 꾸던 딸이 카레이서가 되겠다고 나서자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다.
“절대 안 된다고 그러셨죠. 어머닌 막 우시고, 아버지는 ‘다리 몽둥이를…’ 뭐 그러시면서(웃음)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러잖아요. 반대를 하셨지만 제가 끝까지 밀어 붙였어요. 부모님 몰래 대회도 나가고..."(웃음)
이처럼 고다을의 부모님이 카레이서가 되겠다는 딸의 뜻을 극렬히 반대했던 이유는 역시 안전 때문이다. 지금은 레이스 도중 사고로 사망하는 드라이버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국내 카레이싱 초창기에는 경주 도중 사고로 사망하는 드라이버가 비일비재 했다. 고다을도 그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지금 국내 드라이버들이 안전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선배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 끝에 고다을은 22살의 나이에 본격적인 카레이서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지나 8년차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지만 열악한 국내 모터 스포츠의 환경 때문에 고다을은 상당한 시간 카레이서로서 ‘개점휴업’ 기간을 겪기도 했다.
때문에 현재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로서의 활동이 고다을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처음에 소개할 때 카레이서라고 소개하면 ‘레이싱모델이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많아요(웃음). 아직 여자 드라이버가 생소하니까요. 어쨌든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로서 차에 대한 정보도 드리고 하다 보면 저도 차에 대한 이해도 더 생기는 것 같고 도움이 많이 돼요. 물론 ‘생계’라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고요”
카레이서 고다을(사진: 스포츠W)
고다을은 프로 카레이서로 데뷔한 이래 아직 국내 대회에서 포디움에 서보질 못했다. 그런 결핍은 고다을에게 카레이싱의 묘미를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으로 갖게 만들었다.
“레이싱의 묘미는 아쉬움인 것 같아요. 매 경기가 끝나면 남는 아쉬움 너무 크죠.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데서 묘미를 느껴요.”
레이싱 경기를 펼치는 중에 고다을을 짜릿하게 하는 순간은 역시 앞서 가던 차를 추월할 때다.
“경기장에서는 어느 차가 빠르다고 할 수 없어요. 주최 측에서 정한 규정에 맞게 나오는 차들이기 때문에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차들은 그야말로 조건이 같은 동급 차량이죠. 그렇게 때문에 쪽 같은 조건의 차를 추월할 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짜릿해요”
고다을은 카레이싱이 여성이 남성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서 승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레이스 자체가 남자부, 여자부가 없어요. (포디움에 오르기 위해) 남자를 이겨야 하죠.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몸을 사용해서 하는 운동이 아니고 자동차를 조작해서 결과를 내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체력 자체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지는 않아요. 더위를 버틸 수 있는 기본 체력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만 가지고 있다면 남자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카레이싱이죠”
‘빈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남자 선수들이 포디움에 올라가는 빈도가 여성 드라이버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역시 수적인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 고다을의 생각이다. 그리고 일정 부분 카레이싱이 남자 선수들보다 여자 선수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드라이버들은 운동으로 근육을 키워서 몸이 커지면 둔해져요. 그래서 마르고 왜소한 드라이버가 섬세하고 민감해서 잘 타죠. 성격적으로도 여자들의 장점은 남자 선수들이 '욱'하는 '흥분하는 경향이 심한데 비해 대부분 여성 드라이버들은 상당히 침착해요.”
사진: 고다을 인스타그램
고다을은 영화에서처럼 자동차들이 과격하게 타이어가 밀리는 드래프트를 하거나 급한 코너링을 잘해야 경주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네 바퀴가 지면에 붙어서 최대한 미끌림 없이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좋은 랩 타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레이싱은 과격한 운동이라기보다는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꿈의 경주’라고 불리는 포뮬러원(F1) 경주부터 다양한 형태의 카레이싱 대회 중계방송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TV를 통해 나타나는 자동자 경주는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굉음이나 스피드감을 그대로 느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TV 중계를 통해 카레이싱 경기를 시청할 때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긴데 응원하는 선수가 있어야 해요. 응원하는 사람 없이 경기를 보면 드라이버인 저희도 졸아요.(웃음) TV 중계화면은 선두권 차량들이나 경합하는 차들을 많이 잡아주는 경향이 있어요. 응원하는 선수가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아도 화면 상단에 나타나는 순위표를 보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앞서 가던 차량을 추월했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보면서 응원도 하면서 지루함을 없앨 수 있죠.”
고다을은 현재 '2018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GT클래스 경쟁에 참가 중이다.
지난 달 3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네셔널서킷(KIC)에서 열린 4라운드 결승 경기에서 고다을은 총 17대의 출전 차량 중 7위를 차지했다.
총 9라운드 중 4라운드를 소화한 현재 고다을은 GT클래스 25대의 차량들 가운데 중간 순위 10위에 올라있다.
종합 성적으로 포디움에 오를 수 있는 3위 선수와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는 만큼 종합 순위에서 포디움을 노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개별 라운드에서는 한 번이라도 포디움에 오르는 것이 고다을의 목표다.
사진: 고다을 인스타그램
“한국 무대에서 우승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포디움이 올라가면 눈물을 쏟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대만 시합에서는 우승해서 기쁘긴 했지만 눈물 날 정도로 기쁘진 않았었나 봐요. 한국 무대에서 꼭 포디움에 올라가보고 싶어요”
사실 국내 무대에서 여성 드라이버로서 포디움에 선다는 의미는 남성 위주일 수밖에 없는 국내 카레이싱계에서 보이지 않은 차별과 무시를 이겨냈다는 의미에서 더욱 더 감격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외국 대회 포디움에서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국내 무대 포디움에서는 쏟아질 것 같다는 고다을의 이야기 속에서 그 동안 트랙 안팎에서 겪어야 했던 여성 드라이버로서의 설움이 느껴졌다.
고다을은 오는 11일 인제 스피디움에서 펼쳐지는 '2018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5라운드 나이트레이스 GT클래스에 출전한다.
2018년 여름밤의 폭염을 날려버릴 시원한 질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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