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길복순' 변성현 감독 "설경구 슈트, 이젠 벗길 것"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4-19 19: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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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변성현 감독이 넷플릭스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냈다. 한국영화의 낭만시대로 불리는 2000년대 영화와 배우들 팬이라는 변성현 감독은 자신의 최애 설경구, 전도연에 이어 생각지도 못하게 황정민까지 자신의 모니터에 담아냈다.


변성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지난달 31일 공개, '길복순'(감독/각본 변성현)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공개 3일만에 글로벌 영화부문(비영어)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알렸다. 공개 2주차에도 1위를 기록, 20일째(4월 19일 한국기준)에도 글로벌 3위를 차지하며 순항 중이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변성현 감독/넷플릭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킹메이커' 등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변성현 감독은 '길복순'으로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스페셜(Berlinale Special)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일찌감치 전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길복순'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국내외 언론과 시청자들에 호평 받았다.

'길복순'은 킬러의 세계를 그려내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계급을 설정했다.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은 이 세계관 최강자로 '전설'로 불린다. 이같은 모습은 실제 배우 전도연이 속한 세계관과 닮아있다. "등급이나 계급은 어디나 존재한다. 길복순이 자존감이 있다면, 한희성(구교환)은 열등감이 있을 것이다. 엔터 업계를 비유해서 썼다. 스태프들끼리는 서로 작품 페이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녹여냈다. 이것도 사회 생활이다. 물론 사람 죽이는 일을 하지만, 하는 일을 빠면 똑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변성현 감독은 한국영화의 낭만시대인 2000년대를 가장 좋아하는 시기라고 말하며 '전도연의 전성시대'라고 했다. 설경구에 이어 자신의 최애 배우와 호흡한 것이다. 감독은 전도연으로부터 작품 연출 제안을 받은 후 자신이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함께 작업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전도연을 생각하며 완성한 글이 '길복순'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보여주신 면모가 있다. '무뢰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에 희생 당하거나 굉장히 처연함을 갖고 있거나 그런 것을 많이 쓰임 당하셨다. 제가 실제로 아는 도연 선배님은 굉장히 다가가기 힘든 존재다. 먹이 사슬에 가장 최상위 층에 있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늘 생활감 있거나 그런 것보다 가장 현실적인 연기를 하신다. 만화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선배님 작품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한다. 처음 역제안을 제안 드렸을 때, '감독님이 쓰는거 나랑 하자'라고 하실 때도 불안했다. 제가 너무 잘해냐야 할 것 같았다. 경구 선배님한테도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더 컸다. 하루하루가 예민해 있었고 전쟁같았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스틸/넷플릭스
 

동경하고 존경하는 배우들과의 호흡에 고난이도 액션 씬도 촬영해야 했다. 변성현 감독은 '길복순' 이후로 다시는 액션 영화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다. 그는 액션 씬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괴로웠지만, 그것을 요구해야하는 자신도 싫었다. "감정이면 얘기해서 풀지만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할 떄까지 오케이를 못냈다. 사람이 한계가 있다. 20대 배우의 액션도 안 된다.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 된다 싶었다. 촬영감독닝랑 다시는 애견영화 하지 말자고 했다. 더 독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상아식당 액션씬은 무려 1달동안 촬영했다. 함께 화기애애하던 킬러들은 한 순간에 목표를 길복순으로 두고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을 한다. "이 영화할 때 목표가 있었다. 액션 영화보면 주인공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모두 캐릭터끼리만 싸운다. 이걸 배우들이 전부해야한다. 액션 스쿨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연기만 해온 배우들이 소화해야 했다. 전부 액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성이 그림자이지만 무명의 사람들과 싸워왔다. 그 통속적인 것을 조금씩 비틀자싶었는데 인간성의 한계가 느껴졌다."

반면, 설경구와는 벌써 세번째 호흡이다. 사실 두 사람은 같이 하자고 약속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차기작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설경구의 팬을 자처하는 변성현 감독이지만, 페르소나라는 표현에는 선을 긋는다. "일반적으로 감독이 한 배우와 작품을 많이 하면 페르소나라고 한다. 저는 한번도 저를 투영해서 선배님의 캐릭터를 만든 적이 없다. 저랑은 멋있는 역할만 하셨다. 저는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제작발표회에서 더 설명을 드리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좋게 흘러 가고 있어서 더 설명하지 않고 가만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스틸/넷플릭스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때부터 설경구와 호흡을 맞춰 온 과정도 전했다. "불한당' 때는 엄청 싸웠고, 또 많이 혼났다. 후반부 쯤에는 제가 대들기 시작했다. '킹메이커' 때도 싸웠었다. 이번에는 선배님이 저를 안 건들이시더라. 제가 워낙 예민해져있었다. 이전 작업에서는 선배님과 의견이 많이 부딪혔다면, 이번에는 선배님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사실 '길복순'은 전도연 원탑 작품으로, 설경구의 분량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설경구가 분한 차민규는 길복순이 속한 MK Ent.의 대표로, 길복순의 재능을 알아보고 대적할 자 없는 킬러로 길러낸 스승이자 보스다. 길복순에게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외 모든 상황과 관계에서는 매서운 인물이다. 그의 액션 장면에 호랑이 울음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되게 짐승 같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코믹북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너무 유치한가 생각했는데 이런 게 유치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믹싱실에서 사운드를 올렸다. 경구 선배님과 제가 세번째 작품을 하고 있어서 '불한당' 이미지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더라. '불한당'의 한재호는 화나면 차가워지는 캐릭터인데 민규는 그 순간에 뜨거워지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변성현 감독의 설경구에 대한 팬심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을 대표하는 아이콘 설경구에 슈트를 입히며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안겼다. 설경구와 농담처럼 10작품을 같이 하자고 얘기했지만, 이제는 한 만큼 한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다. "저는 설경구라는 배우를 워낙 좋아한다. 연기를 너무 좋아한다. 얼마 전 '변성현, 설경구 조합 이제 지친다'는 반응을 봤다. 근데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다음에 또 나이대에 어울리는 역할이 있으면 제안을 드리자 싶다. 저는 선배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한국에 보통 아저씨들의 느낌을 빼고 싶었다. 근데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슈트는 안 입힐 것 같다. 제 작품 이후에는 계속 슈트만 입고 나오시더라. 가끔 선배님 팬들을 만나면 더 멋있게 해달라고 한다. 다음 작업은 배신감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불한당' 이전의 선배님을 보여드리고 싶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변성현 감독/넷플릭스


전도연, 설경구에 이어 황정민과의 호흡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황정민은 '길복순'에서 일본 야쿠자 오다 신이치로 등장, 액션 영화로서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했다. 황정민은 전도연의 제안에 대본도 보지 않고 특별출연을 흔쾌히 승낙한 것이다. 변 감독은 "선배님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호흡 소감을 전했다. "너무 감사하다. 선배님께서 오프닝 카메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 못했다. 도연 선배님이 문자를 주셨다. 그날은 대답이 없었다. 역시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자고 자는데 문자를 받았다. 황정민 선배님께서 연락을 줄거라고 연락이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데, '안녕하세요 배우 황정민이라고 합니다'라고 인사 하셔서 너무 놀랐다. 끊고 확인해보니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하신다고 하셨다. 통화하고 시나리오를 드렸다. '영화의 톤을 잡아주는 역할이네'라고 하셨다.연극 하시는 와중이었다. 해외 촬영 갔다가 연극 준비하시고 하면서도 되게 죄송했던게 세트를 지었는데 문을 열어놓고 짝었어야 했다. 기차에 조명기를 달아서 해야하니까. 영하 7도였다. 물을 뿌르면 바로 어는 날씨였다. 선배님 스케줄이 안되서 할 수 없이 그 해 가장 추운 겨울에 찍었다."

자신의 최애 배우를 모니터에 담은 소감은 그야말로 감개무량하다. 전도연, 설경구의 투샷을 다시 찍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설정까지 바꿔가면서 두 배우를 한 모니터에 담아냈다. "두 분 다 진짜 연기 너무 잘한다고 느꼈다. 두분이 그렇게 많이 안 만난다. 민규가 재영(김시아)한테 전화했을 때 복순이가 전화를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었다. 이후 만나자마자 액션으로 부딪히는 것이었다. 전화통화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으로 바꿨다. 전화통화를 하면 따로 담아야 한다. 한 화면에 오래 담고 싶어서 만나서 대화하는 씬으로 바꿨다. 설경구 선배님과는 세번째 작품이신데 저한테는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러고 싶었다."

변성현 감독에게 '길복순'은 여러 의미로 남다른 작업이었다. 그는 촬영이 끝난 마지막날을 회상했다. "촬영 끝나고 원래 늘 술을 먹는데 이번에는 집에 혼자 갔다. 뭔가 쏟아부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스태프들이랑 늘 밤새 술 먹는데, 처음으로 끝나는 날 집에 갔다. 만족감이 아니라 허탈함이나 허함이 제일 컸던 것 같다. '킹메이커' 때는 코로나19가 겹쳤을 때다. 개봉 때는 '길복순'을 찍고 있을 때였다. 스태프들이 같다. 기운들이 다 빠져있더라. 약간의 연기가 필요했다. 나는 이런 것을 신경 안 쓴다는 듯이 연기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심적으로 초반에 되게 많이 힘들었다. 저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큰 흥행은 아니어도 또이또이 맞출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은데 두 번을 연달아 못했다. 이번에도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아서 굉장히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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