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주)인디스토리 |
※ 본 인터뷰는 영화 ‘경아의 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츠W 임가을 기자] 김 감독은 ‘경아의 딸’을 감상한 관객들에게 디지털 성범죄를 겪은 여성의 고통에 대해 공감을 바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아의 딸’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엄마라는 사람은 어쨌든 기성 세대다. 그 세대는 가부장 제도를 수호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본인도 어느새 그런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내면화 되어있고 그러한 가치관을 딸한테 대물림해서 강요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다음 세대에서는 이러한 대물림을 끊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관객 분들이 ‘경아의 딸’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서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보실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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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동영상이 유출되는 일이 있기 전에는 학생들과 열린 마음으로 지내고, 학생들의 연애도 지지해 주는 편인 그런 캐릭터인데 그 일을 겪게 된 후로 사람이 고립되면서 자기가 닮고 싶지 않은 경아의 모습이 툭 나온다고 생각했다.
평생 그런 모습을 꾹꾹 눌러오면서 살려고 하지만, 벼랑 끝에 몰려 서 있었을 때 자기가 제일 꺼내고 싶지 않은 어떤 모습이 튀어나오는 거다. 그래서 아마 그 장면을 볼 때 ‘어, 경아처럼 되려나?’ 같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수는 다음 세대한테 더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아의 딸’에서 사별한 경아의 남편이 경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영화가 진행되고 나서 뒤늦게 밝혀진다. 김 감독은 이런 연출의 이유에 대해 경아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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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는 그게 당연한 삶이 되어버려서 딸은 답답해 하지만 경아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답답할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초반부나 중반부까지도 자기가 뭐가 잘못했는지 모르고 자기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도 사실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래서 초반부나 중반부 에서는 그런 것들을 별로 마주하지 않지만 중반 이후에 딸과 갈등을 겪게 되면서 스스로가 딸한테 잘못 했던 것들을 깨닳고, 본인 스스로가 겪었던 2차 가해나 그런 상처를 뒤늦게 알아간다고 생각했다.”
보통 미디어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다룰 때는 여성이 원하지 않고 억지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혀 유출당한 사건을 주로 이야기 하고는 한다. 하지만 ‘경아의 딸’에서의 연수는 합의 하에 동영상을 찍었지만 동의 없이 인터넷에 본인의 동영상이 유포되었다는 점이 보편적으로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사건의 경우와 결이 다르다.
김 감독은 이러한 설정에 대해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억지로 찍게 했을 경우에는 더 연수한테 동정이 갈 수 있겠다. 관객들이 비난도 가해자한테 더 많이 쏟아질 거고. 하지만 그걸 동의하고 찍던 안 찍던 잘못은 가해자가 한 거고 서로 연인 간에 이제 사적으로 정말 사랑했을 때 찍었던 건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연수가 동의해서 찍었고, 가해자가 유포한 게 잘못된 거다 라는 걸 방점을 찍고 싶어 그렇게 설정을 했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담담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영화임에도 긴장감 있게 감상했다는 감상평에 대해서는 긴장감을 조장하는 장치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긴장감이 생성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시는 관객들, 여성들이 일상에 어떤 공포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많은 화장실의 구멍들이 불법 촬영 카메라고, 이제는 연인이든 남편이든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그런 이제 영상물이 촬영돼서 유포되는 일이 벌어지니까. 반인륜적인 일인데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니 개개인에게 그런 공포들이 마음 한켠에 있어서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다.”
‘경아의 딸’에는 경아와 연수 이외에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조연 캐릭터는 경아가 요양보호사로서 돌보는 할아버지의 딸, 상순이다. 김 감독은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그리며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인물 또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순은 아마도 경아랑 같은 세대의 여성이지만 경아처럼 이제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 자기의 커리어나 자기의 삶이 좀 더 중요시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아가 처음에는 그런 상순을 질투하기도 하고, 서슴치 않고 혐오의 발언도 한다. 그래도 결국은 상순한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상순은 같이 연대 해주는 방향으로 엔딩이 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성들 간의 연대 그런 것도 같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경아의 딸’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묻는 말에 김 감독은 자신은 항상 엔딩을 좋아하고, 엔딩을 정해놓고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물이 도달하는 끝에 대해 고민을 제일 많이 한다고 밝힌 김 감독은 ‘경아의 딸’ 역시 엔딩 장면을 꼽았다.
“엔딩에서 엄마가 사과하는 장면, 그 부분이 사실 더 완전한 화해를 할 수도 있지만 연수가 사과를 받고, 엄마의 마음을 아는 정도로 마친다. 이 모녀가 정말 화해를 이룰지에 대해 관객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결말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 엔딩 장면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은 ‘경아의 딸’을 감상할 관객에게 “이 영화가 디지털 성범죄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모녀 이야기로 풀어내서 좀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면서 보실 수 있는 영화고 힘들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면서 따뜻한 시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을 전했다.
한편, 영화 ‘경아의 딸’은 6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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