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제가 연기를 쉰 지 오래됐다. 최종 관문에서 여러 차례 떨어지면서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시간들이 오래 있었다. 계속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더 글로리'를 만났다. '더 글로리'는 저에게 영광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넘어야 할, 깨야할 퀘스트다."
공개 3주차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비영어권 작품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연출 안길호)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손명오 役 김건우/넷플릭스 |
김건우는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아역 정지소)을 괴롭히는 박연진(임지연/아역 신예은) 무리인 가해자 중 한명이다. 재준(박성훈)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재준과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 남의 고통에 앞장서 왔다. '더 글로리' 파트2에서는 일명 동은오적(문동은 가해자 5인방)이 문동은의 덫에 걸려들며 권선징악의 결말이 그려졌다. 특히 손명오는 학창시절에 자신이 악랄하게 괴롭히던 문동은의 지시를 받아 발로 뛰어다니며 문동은을 도왔다. 이는 서서히 가해자 무리의 균열이 생기는 시초가 된다.
앞서 공개된 코멘터리 영상에서 김은숙 작가는 오디션 영상을 보고 처음부터 김건우를 손명오 역으로 점찍었다고 밝힌 바. 김건우가 받은 손명오 연기 디렉팅은 '생동감'이었다. "명오는 살아있는 생동감 있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추가한 것은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어딘가에 있을법한 양아치 느낌이다. 덩치가 커서 오는 위압감이 아니라 뭔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안 좋은 질감이다. 격투기 선수 중에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은 그런 스타일의 선수가 있다. 그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레퍼런스 삼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손명오 役 김건우/넷플릭스 |
손명오는 동은오적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인물이다. 빈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외적인 스타일링은 장발 설정까지도 모두 시안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었다. 특히 양아치의 면모를 위해 쉐입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대사로 표현하는게 1차원적이라고 하면, 고유의 모습은 행동과 움직임이다.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장면이라던지, 사탕을 콱! 깨문다든지, 주여정(이도현)과 마주치는 장면에서의 걸음걸이라던지, 국밥을 먹을 때도 깍뚜기나 김치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동작 등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더 글로리' 속 모든 가해자를 연기한 배우들처럼 김건우도 손명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본에만 집중했다. "단면적인 모습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 캐릭터를 사랑해야 한다. 애정도를 찾아가야 한다. 순수함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순수한 캐릭터다. 동은이의 계획에 잘 따라준다. 잘못인줄도 모르고 눈 앞에 있는 것을 쫒는 순수함이었다. 그런 지점을 찾아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손명오는 전재준에 무시당하면서 왜 그와의 연을 끊지 못하는 것일까. 김건우는 "명오가 아니라 재준이가 못 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오는 재준이의 손발이다. 사실 명오는 연락이 잘 안되지 않나. 하하. 재준이가 저를 못 끊는 것이고, 만나면 때린다. 안 좋은 연결고리인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손명오를 연기한 후 후유증도 있었다. 김건우는 "한동안 욕이 좀 늘었다. 욕을 차지게 하려고 많이 연습했다. 어떻게 하면은 욕도 맛있게 들릴 때가 있다. 맛있게 들렸으면 했다. 하루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했다. 한동안 습관처럼 베어나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손명오 役 김건우/넷플릭스 |
김건우는 문동은을 연기한 송혜교와 떡볶이 가게 씬부터 촬영했다. 첫날 첫씬이었고, 너무 중요한 씬이었다. "선배님께 너무 감사했다. 너무 대선배님이다. 저는 신인에 가깝다. 저한테도 중요한 씬일텐데 자기 페이스로 가져오려는 마음이 없고 좋은 씬을 만들기 위한 자세로 임했다. 선배의 의미를 넘어서 어른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명오와는 달리 김건우가 촬영이 끝난 후 대선배 송혜교에 90도로 인사하는 메이킹 영상은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걸 찍은 줄도 몰랐다. 오히려 다 받아주고 열어주셔서 쑥 빨려들어갔다. 그래서 더 커 보인 것 같다. 내가 준비한 것이 있으니 맞춰달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러힞 않고 하고 싶은대로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더 커보였던 것 같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동은오적 멤버들과는 자연스럽게 돈독해졌다. 하지만 김건우는 그 중 가장 막내로, 일명 '몰이'의 주요대상이 됐다. "촬영 기간에도 너무 자주 만났다. 휴차 때마다 봤던 것 같다. 술도 한잔 하면서 굉장히 친해졌다. 혹시나 결과가 안 좋더라도 우리는 이 친밀함이 오래 유지될 것 같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고 했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되서 관계가 너무 좋다. 지금도 단체 대화방이 너무 활발하다. 항상 피드백이 온다."
명오는 연진의 약점을 잡고 그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연진의 강렬한 일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명오의 죽음에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진짜 결과가 알려지기 전까지 많은 상상력을 불러오게 했다. 특히 명오가 맞았던 위스키병은 중고거래 어플에까지 올라오며 많은 화제가 됐다. 김건우는 해당 씬 촬영이 신기했다고 회상했다. "신기한 촬영이었다. 대본으로는 굉장히 호흡이 길었다. 준비도 많이 했다. 정말 힘들겠다 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촬영이 끝났다. 신기할 정도로 빨리 끝났다. 지연 누나랑 연기해서 너무 재밌었고, 너무 잘 받아줬다. 평소에는 저한테 거칠게 하지만 연기할 때는 참 선배다운 모습으로 리드르 잘 해준다(웃음)."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손명오 役 김건우/넷플릭스 |
김건우는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도 박서준이 연기한 고동만과 라이벌로 등장, 악역 이미지가 강렬했다.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된 '더 글로리' 손명오 역시 학교폭력 가해자이고, 악의 이미지였다. 대중에는 악역 이미지로 고착될 우려도 있다. "악역도 한 드라마에서 너무 중요한 캐릭터다. 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역할이다. 악역은 표출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서 오는 통쾌함과 시원함이 분명히 있다. 이미지 고착에 대한 우려는 없다. 언젠가 만날 또 다른 역할로 변신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다.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실제 김건우의 성격을 묻자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애정표현도 많고 귀여운 구석도 있다. 손명오와는 너무 다르다. 사람도 잘 챙긴다. 열심히,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편이다"고 말했다.
김건우는 내로라하는 연기 천재들이 모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12학번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현실은 굉장히 싸늘했고, 노력 끝에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격투기 선수 김탁수를 연기, 강렬하게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라이브', '나쁜형사'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1', '유령을 잡아라' 등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왔다. '더 글로리'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드는 시점에 만난 작품이다.
"제가 연기를 쉰 지 오래됐다. 최종 관문에서 여러 차례 떨어지면서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시간들이 오래 있었다. 계속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더 글로리'를 만났다. 내가 연기를 똑바로 하고 있구나 느끼게 해줬다. '더 글로리'는 저에게 영광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넘어야 할, 깨야할 퀘스트다. 좋은 캐릭터로 깰 수 있을까 기분좋은 의구심도 들고 동기 부여도 된다. 김탁수를 깨고 싶었다. 언젠가는. 한동안 손명오로 많이 불릴 것 같다(웃음)."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손명오 役 김건우/넷플릭스 |
김건우는 '더 글로리' 촬영이 끝난 후인 지난해 9월 첫 개인 SNS를 오픈했다. 4일 기준 팔로워는 20.3만명을 기록하며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는 타이밍이 절묘하지만, '더 글로리'를 의식한 것은 안니다.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SNS였다. 서른이 되면 한번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타이팅 좋게 '더 글로리'가 잘되서 팔로워가 늘고 있다. 사실 엄청나게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근데 제 캐릭터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분들에게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고 싶었다. 촬영중 셀카 같은 것도 올려보고 싶은 마음에 하게 됐다."
SNS를 통해 받은 메시지 중 기억나는 것이 있냐는 물음에 "매일 저에게 결혼해달라고 하는 분이 계신다. 다 읽지는 못하지만 그분은 눈 여겨보고 있다. 처음엔 장문의 메시지였다. 근데 점점 간소해지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결혼해달라' 이런 식이다(웃음)."
'더 글로리'로 글로벌 스타덤에 오른 김건우의 차기작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김건우의 차기작은 오는 5월 13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빠리빵집'이다. 대중은 의외라는 반응이지만, 김건우는 모든 활동에 있어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즐겁게 연기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제 목표다. 즐거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 나 자신이나 인생이. 초반에 캐릭터를 만들 때는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연기하고 싶은 게 목표다. 빠른 시일 내에 무대도 병행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받는 희열과 느낌은 카메라 앞에서와는 또 다르다.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좋은 시기에 만나서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