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현우, '서박사'는 여전히 켜켜이 쌓아가는 중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2-26 13: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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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대한민국 씨네필이라면 배우 서현우를 모를 수 없다. 하지만 체중을 증량하고 감량하는 것에도 과감없는 변화무쌍한 배우다. 이에 매 작품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연기 능력자다.


서현우는 지난해 방영된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는 매니저 팀장 김중돈으로 분해, 리얼리티를 더했다. 또한 지난 1월 18일 개봉, 2월 15일 VOD 서비스를 시작한 영화 '유령'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자신의 반려묘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천계장으로 분해 관객들을 만났다.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시작으로 무려 13년만에 주연으로 활약하며 '서현우'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에 알리는 중이다.

 
▲영화 '유령' 천계장 役 서현우/CJ ENM
 

그 중 서현우가 첫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렸다. 당시 '헤어질 결심' 제안을 받고 증량 중이었던 서현우에 또 다시 볼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귀여운 이미지의 천계장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서현우는 "영화가 가진 분위기와 인물들은 비장했고 시대의 사명감도 높았다. 여기에 이 인물이 숨통을 제공하긴 해야하지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미움을 받지 않고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천계장은 유령 색출 작전의 설계자 카이토(박해수)로 인해 호텔에 감금된다. 그는 반려묘 하나짱을 위해 꼭 집에 돌아가야만 하는 인물이다. 시대적 배경상 인물의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지만 착장을 하고 수염을 붙이는 등 소품등을 이용하다보니 이미지가 갖춰졌다. 무엇보다 천계장은 총독부 통신과 암호해독 담당이었기에 유령으로 의심을 받았던 인물. 서현우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도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다루는 모습에 집중했다. 실제 영화 초반에는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심하고 섬세한 천계장의 모습이 담겼다. "암호를 쓰고 해독집을 펼쳐내고 자를 대고 컨버스, 각도기를 돌리는 소스 촬영을 굉장히 정갈하게 하더라. 소품에도 영혼이 담긴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소품 촬영할 때 긴장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제 손톱만 나오는데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런 한 테이크 한 테이크가 천 계장을 표현해주더라. 이게 감독님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천계장은 극 중 유일하게 유리코(박소담)에 호감을 보이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 반말은 기본, 목적을 알 수 없게 그는 이곳 저곳을 살핀다. 마치 고양이가 새로운 거처를 맞았을 때의 모습과 닮아있다. 서현우는 무릎을 탁 치며 "유리코를 반려묘 대하듯이 했다"고 했다. "유리코가 군인들에게 따지고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때 나라도 가봐야지 생각을 한다. 전화기도 혼자 고치고 있다. 그게 마치 고양이가 어지러 놓은 것을 뒤치닥거리 하는 것 같았다."
 

▲영화 '유령' 천계장 役 서현우 스틸/CJ ENM
 

실제 반려묘와 반려견이 있기 때문에 천계장의 마음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반려묘도 있고 반려견은 18살로 이제 풍도 오고 그랬다. 어릴 때부터 저희 집에는 항상 반려동물이 있었다. 그 감성을 천계장으로 표현하는데 거리낌없이 너무 좋았다. 천계장이 집에 가야한다고 하고 하나짱 사진을 보면서 울지 않나.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집 밖에 못 나온다. 그런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집사를 기다릴텐데 생각을 하니 정말 눈물이 났다. 그래서 첫 테이크 때 펑펑 울었다. 컷 하고 나서는 주변에서 다른 스태프들이 괜찮냐고 할 정도였다."

서현우의 깊은 캐릭터 해석에 비해 분량은 아쉽다. 주연이라고는 하지만 전반부에서 끝나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서현우는 "천계장의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까지가 저의 임무였다. 초중반의 천계장을 밀도감 있게 채우고자 했다. 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전반전을 마무리 짓는 역할로 최선을 다 했다"고 말했다.

서현우에게 '유령' 촬영장은 잊지 못하는 촬영현장이다. 첫 주연으로 활약했고, 평소 동경해 온 선배 설경구의 연기를 보고 현장에서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쥰지(설경구)가 총을 쏘려는 저를 말린다고 멱살 잡고 돌리는데 제가 살을 찌웠는데도 선배님께 들리더라. 선배님깨서 그건 사고였다고 하셨었다. 선배님과의 작업은 너무 든든하다. 반말하는 씬이 있다. 그 씬이 선배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서 '연기 하고 싶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현장에서 마주한 선배님 눈은 고요했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뭐든 받아주시겠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푸근하고 든든하고 너무 감사했다."
 

▲영화 '유령' 천계장 役 서현우 스틸/CJ ENM
 

또한 학교 후배인 박소담과의 호흡도 잊지 못한다. "소담이랑은 학교 선후배고 학교도 같이 다녔고, 독립영화도 같이 했다. 서로의 연기 방식같은 것들도 알고 있다. 아는 사람끼리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는데, 소담이가 많이 성숙해있더라. 현장에서 소통하는 모습들이 저보다 선배처럼 느껴졌다. 기분좋은 긴장을 유지하고 부끄럽지 않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소담이의 발을 보고 연기할 줄이야. 하하. 근데 너무 편안했다. 동문들이 많이 웃는다. 서로에 대한 믿음 자체가 오랫동안 구축이 돼 있어서 좋은 케미를 만든 것 같다."

전 작품들에서 주로 센 캐릭터를 맡아왔던 서현우이기에 '천계장' 역할은 너무 소중하다. "저도 이런식으로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해주셔서 이해영 감독님께 너무 감사하다. 서현우라는 사람의 소스도 실어냈던 것 같다. 저는 천계장에 비해 배려가 많은 편이다. MBTI가 ENFJ다. 정의로운 사회 운동가다. 거절도 잘 못하고 인류애가 짙은 편이다. 눈물도 많다. 근데 작품에서는 주로 센 캐릭터만 해왔다. 배우들의 숨겨진 다른 면을 꺼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한다. 이 작업 자체가 저한테 너무 귀한 작업이었다."

서현우는 또래보다 연기를 늦게 시작했다. 그는 손에 꼽히는 수재만들 간다는 전국단위 개방형 자율학교인 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국민대학교 영어 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해외파 학생들이 넘쳐났다. 방황하던 끝에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줬던 연극반을 떠올렸다. 당시 학교에서 근무했던 연극반 지도교사에 연락했다. 교사 역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서현우는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늦게나마 입학했다. "그때 선생님도 교육연극전공으로 가셨더라. 저는 부모님 몰래 입학하고 시험 보고 나중에서야 알렸었다. 그때는 연영과 교수를 목표로 한다고 했었다. 졸업공연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눈치채셨다. 그런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기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화 '유령' 천계장 役 서현우/CJ ENM
 

한예종 재학시절 후배들은 서현우를 '연천'(연기천재), '연신'(연기의 신)으로 불렀다. '유령'에서 함께 호흡한 박소담 역시 후배다. 그는 서현우를 '연천' '연신'으로 기억하며 웃었다. 하지만 동기들은 그를 '서박사'라고 불렀다. "저는 일반고등학교 출신이다. 공부하던 버릇이 있어서 항상 메모했다. 메모하는 습관을 보면서 예고 출신 동급생들은 몸으로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근데 시험 기간이 되면 제 필기를 빌리러 오더라(웃음)."

서현우의 정공법은 시험결과로 증명됐다. 여기에 그의 연기를 본 후배들은 '연천', '연신'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4년간 과탑을 유지했고, 졸업 때는 연기상을 받았다. "저는 생각이 나면 무조건 쓴다. 낙서도 많이 하는 편이고 무엇이든 쓰는 버릇이 있다. 제가 그렇게 필기할 때는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고 했던 친구들이 시험 기간에는 제 필기를 빌려갔었다. 지금도 대본에 뭘 계속 적는다. 마음적으로 정리가 안될 때는 제가 그 글을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언젠가는 '서박사의 연기이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웃음)."

2022년에만 무려 7개의 작품에 출연, 대체불가 연기력으로 대세 반열에 오른 서현우는 지난 24일 개최된 '제2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영화부문 올해의 새로운 남자 배우상을 수상했다. '디렉터스컷 어워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주최하는 영화상으로, 한국영화 감독들이 선정하고 시상하는 영화 시상식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영화 '헤어질 결심' 철성 役 서현우/CJ ENM
 

서현우에 수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서현우는 극 중 철성이로 분해 동남 방언을 구사하고 탕웨이의 뺨을 때리는 강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모습과 달리 위압적인 체구의 서현우는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서현우는 '헤어질 결심'으로 그렇게 또 한번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라는 반응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때 박찬욱 감독님이 살 얘기를 조심스러워하셨다. 재밌던 부분은 철성이라는 캐릭터가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 캐릭터의 입체감을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천계장도 나는 살고 싶은데 하나짱이라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붙여 주셔서 감사했다."

현재 극장에 '마루이 비디오'가 개봉됐고, 차기작으로 '킬러들의 쇼핑몰', '삼식이 삼촌'을 준비 중이다. 데뷔 13년만에 주연으로 우뚝 섰지만 조급함은 없다. 그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을 뿐이다. "연기적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적인 톤이나 매너로 인해 불안함을 제공하는 배우는 힘든 것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제껏 한 작품들 보면 다 다르더라. 천계장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 전에는 혼자 많이 구축하는 버릇이 있었다면, 혼자가 아닌, 여러 소품과 각 파트의 스태프, 감독님들이 제공하는 무한한 소스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든든하다. 혼자 고립되지 않고 같이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하다. 새로운 질감과 색채, 인물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 만큼 저를 기분좋게 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그 말이 과찬인 것 같다. 기분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경험이 켜켜히 쌓여서 제 안에서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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