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의 진정성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전해졌다. 안중근 의사의 저격 대상이 되는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의 전담 교도관으로 연을 맺었던 실존인물 치바 토시치 역을 일본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 배우들이 함께 한 것이다. "일본인 배역은 일본 사람을 캐스팅하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역할이다. 뮤지컬 '영웅' 제작사에 부탁드렸었다. 재일교포인 김승락 배우가 후보에 있었다. 일본의 정성화라고 하더라. '라이언킹' 같은 크고 굵직한 작품을 하는 배우인데도 하겠다고 했다고. 너무 감사했다. 또 간수 치바 토시치 역도 일본의 뮤지컬계 신성인 배우 노지마다. 검사 역할도 일본 배우다. 너무 고마웠다."
또 감독은 "사실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군들은 같이 모여서 촬영을 했다. 근데 김고은은 일본 배우들과 촬영했다. 촬영 쉬는 중간에 보니 김고은이 일본 배우들과 잘 어울리더라. 혼자 촬영하고 감독인 나는 바빠서 걱정되서 보면 이토 역의 배우와 이야기하고 있더라.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영어로 대화 하더라. 재밌는 장면이었다. 김고은은 정말 새로운 경험을 여러모로 안겨줬다"며 웃었다.
▲뮤지컬 영화 '영웅' 윤제균 감독/CJ ENM |
'영웅'에서 조우진의 등장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주요 출연진 배역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솔로 넘버도 있다. 감독은 캐스팅 비화를 공개했다. "우진씨가 되게 핫한 배우이지 않나. 우리 영화에 우정출연, 특별출연으로 모시고 싶었다. 설마 하고 시나리오를 보냈다. 회차가 많은 역할은 아니다. 모두 바빠서 안 할 것이라고 했지만 너무 함께 하고 싶었다. 근데 진짜 연락이 왔다. 나중에 물어보니 '저 노래 좀 해요'라고 하더라. 노래를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렇게 잘 할 줄 몰랐다. 100% 라이브로 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웃음)."
'영웅' 영화화를 위해 각색하면서 윤 감독은 설희 캐릭터에 초점을 맞췄다. 설희는 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목격한 궁녀 출신으로,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정보원 역할을 한다. "설희는 허구의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어 24시간 함께한다. 하지만 설희가 이토를 처단하지 못한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영화로 각색할 때는 미션을 주면서 그 전까지 죽일 수 없는 개연성을 부여했다. 또 원작에서는 마진주(박진주), 마두식(조우진) 역할이 중국인이다. 일본어와 한국어에 중국어까지 나오면 헷갈릴 것 같아서 설정을 바꿨다. 마진주는 원작에서는 안중근을 짝사랑한다. 영화에서는 유동하(이현우)와 풋풋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예쁠 것 같아서 바꿨다."
'영웅'은 모든 넘버를 현장에서 동시녹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을 믹스했다. 현장 라이브 촬영은 주변 생활소음 때문에 여간 쉬운 작업이 아니다. "파카는 촬영을 진행할 때는 입을 수 없었다. 바닥도 소리 안 나게 하려면 특수신발이 필요하다. 근데 우리는 그럴 수 없어서 헝겁으로 다 덧댔다. 야외 촬영할 때는 풀벌레 소리, 차, 경적소리 등 생활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차량통제 범위를 넓혔다. 벌레 소리는 전날 방역하는 것으로 막았다. 서로 머리를 맞대면서 촬영했다. 동시녹음에 대한 엄청난 노하우가 생겼다."
첫 뮤지컬 영화였지만 '해운대' 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다. 당시 바다 촬영을 위한 수조 세트가 없어 미국에서 특수 촬영을 진행했다. 하지만 특수촬영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방식이었다며 감독은 '콜롬버스의 달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극 중 설희의 기차 씬 촬영 방식이 가장 획기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뮤지컬 영화 '영웅' 윤제균 감독/CJ ENM |
"설희의 기차 씬에는 강풍기가 필요하다. 근데 노래도 해야하니 강풍기 소음이 문제가 됐다. '해운대' 경험이 없었다면 전문가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미국가서 파도가 들이치는 씬을 찍을 때 드럼통에 미끄럼틀을 대고 표현하더라. 그 경험을 떠올렸다. 기계는 최대한 밖으로 둔 채 호수를 연결해서 강풍기를 틀어 바람을 냈다. 그 방식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미소)."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의 넘버 중 '장부가'를 최애곡으로 꼽았다. "재촬영까지 포함하면 정성화가 30번은 불렀을 것이다. 본 촬영을 했는데 아쉬워서 재촬영을 진행했다. 오케이 나왔는데도 재촬영을 했다. 한번 촬영할 때마다 10번씩 불렀다. 그렇게 3번을 나눠서 촬영했다. 맨 마지막에서는 탈진해서 쓰러질 뻔했다. 빙의가 된 듯, 뭔가에 씌인 듯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정말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설희 역의 김고은이 '영웅' 촬영의 스타트를 끊었다. 윤제균 감독은 김고은의 넘버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를 최애로 꼽고는 "나도 현장에서 울었다"고 회상했다. "설희가 정보원으로 변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씬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궁녀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받았을 충격과 분노, 울분, 상실감 등이 담겼다. 이 장면이 감정이입을 시키지 못한다면 설희의 이후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해서 힘을 많이 줬다. 김고은이 노래할 때 나도 울었다. 정말 내가 만나본 여배우 중에 최고다. 인간적으로도 배우로도. 현장에 와서는 친근하고 쾌활하게 인사한다. 근데 설희 분장으로 오면 설희가 된다. 분장이 끝나고 오면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다. 감정이입을 그렇게 하는 걸 보면서 천상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또 감독은 "이 영화 촬영의 최대 피해자는 김고은이다"고 비화도 전했다. "고은이가 가장 첫 촬영을 했다. 동시녹음도 처음이다. 현장에서 라이브 할 때 마이크를 대고 했는데 인이어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초소형 이어폰을 꼈다. 보청기 같이 생겨서 CG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 CG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단점은 잘 안들린다는 점이었다. 무선으로 사운드가 나와야 노래를 부르는데 잘 안들린다고 하더라. 볼륨을 최대한 키우고 해서 김고은이 혼자 고군분투했다. 근데 정성화가 그걸 끼고는 이렇게 하면 촬영 못한다고 하더라. 정성화는 10년을 넘게 '영웅' 뮤지컬을 했다. 반주가 안들리면 음정, 박자, 제대로 못 맞춘다고 가수들은 인이어 큰거 써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성화 말대로 촬영했다. 그 사실을 김고은은 회식 때서야 알았다. 뮤지컬 배우도 아니고 프로도 아닌데 그렇게 촬영하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뮤지컬 영화 '영웅' 윤제균 감독/CJ ENM |
하지만 어렵게 촬영한 기차 씬은 그마저도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기차 씬은 재촬영을 진행했다. "처음 기차씬은 지금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다이내믹한 느낌은 없었다. 화물칸에서 불렀는데 마음에 안 들었다. 카메라 워크를 찾고 새로운 길을 생각해낸 게 축구장에서 쓰는 4축 와이어다. 카메라에 4개의 와이어를 연결해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면서 촬영한다. 영화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어서 프리 비주얼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무려 한달동안 프리 비주얼을 준비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근데 열차 세트가 그걸 수용하기엔 작더라. 그래서 춘천에 운동장만한 세트장을 만들어서 원씬 원테이크로 찍었다. 배우는 힘들어했지만 만족하는 장면이 나왔다."
코로나19 여파로 오랫동안 개봉날만 고대하던 '영웅'은 이제 윤 감독의 손을 떠났다. 감독은 처음으로 뮤지컬 영화를 연출했지만 아직까지 부족함이 더 많아 보인다고 했다. "물론 부족한게 아직도 많이 보인다.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배우 그대로 다시 찍으라고 한다면 찍을 수 있지만 더 잘 찍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려운 시국, '영웅'을 통해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다. "최근 한국 영화계가 굉장히 어렵다.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오셔서 가슴이 뜨거워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의 이야기를 더 깊이 알았으면 좋겠다. '영웅'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다. 힘든 시기지만 영화를 통해 힘들게 살다 간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 느끼고 조그마한 위안 받길 바란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