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데뷔 26년차 김현주, '정이'로 연니버스 중심에 서다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2-07 04: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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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지금은 적절히 밸런스가 맞춰진 상태다. 이런 밸런스로 계속 가준다면 외롭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

 배우 김현주는 1996년 김현철의 '일생을'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데뷔, 90년대를 대표하는 하이틴 청춘스타다. 그는 연기력과 비주얼을 동시 겸비하며 20여년간 큰 트러블이나 구설수 없이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안방을 사로잡아왔다. 로코, 멜로 뿐만 아니라 시대극에서도 연기력을 입증받으며 남녀노소 할것 없이 대중에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통상 그 나이대의 여배우라면 지금쯤 누군가의 엄마 역할이 주를 이루는 반면, 김현주는 연상호 감독을 만나 연이은 도전 중이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정이 役 김현주/넷플릭스
 

지난달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는 종말이 닥친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AI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팀장이 내전을 끝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이끈다. 자신의 어머니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던 군인의 뇌를 복제하는 프로젝트를 그렸다. 한국 영화계에서 아직까지는 생소한 SF 소재와 멜로 장르가 결합된 SF 멜로다.

김현주는 '정이'에서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이자 뇌복제 실험의 대상이 되는 A.I. 정이를 연기했다. 김현주는 평범한 인간일 때와 뇌복제를 통해 A.I.로 재탄생했을 때의 '정이'의 세세한 차이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하며 전 세대로부터 호평 받고 있다.

김현주는 연상호 감독에 처음 '정이'를 제안받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연상호 감독님은 왜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캐릭터는 나한테 덧씌우려는 건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본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봤을 때는 너무 흥분됐다. 출연을 결정하고 집중할 때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서 참여만으로 너무 재밌을 것 같았다. 책임감도 있지만 그 마음이 더 컸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메인 포스터/넷플릭스
 '정이'는 공개 3일만에 넷플릭스 공식 차트 비영어권 작품 기준,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공개 2주차에도 전 세계 87개국에서 TOP 10을 기록하며 글로벌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앞서 '지옥'도 글로벌 1위를 차지했던 바. 김현주는 '정이'가 공개되기까지 노심초사 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그냥 좋았으면 했다. 어떤 작품이던지 많은 스태프들이 함께하지만, 이번에는 CG나 이런 촬영 이외의 작업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스태프들이 동원됐다. 故강수연 선배님의 오랜만의 복귀작이기도 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 '정이' 오픈 날은 촬영장에서 집중도 안되고 노심초사했다. 결과에 이렇게 연연한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많이 기대하기도 하고 걱정했다. 아침 저녁으로 계속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너무 기쁘다."
 

'정이' 속 김현주는 인간보다는 로봇일 때의 모습이 더 많이 등장한다. 김현주는 대한민국 여배우 최초로 A.I. 로봇을 연기했다. 정이는 매번 깨어날 때마다 고통스러워한다. "정해진 표정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기계적인 표현을 주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신경썼다. 감독님께서 호흡이 멈춰있어서 물 속에서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있다가 숨이 터지는 것처럼 호흡을 뱉어내면서 깨어나길 원하셨다. 기계 정이일 때의 감정선 연결이 쉽지 않았다. 제가 애니메이션 '월·E'(2008년)를 너무 좋아했다. 걔는 깡통 로봇인데 눈동자가 단순한데도 감정이 읽어졌다. 초반에만 잘 잡고 가면 정이의 감정선을 잘 갖고 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기계 일때의 감정선 중 엔딩은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특히 김현주의 얼굴이 아닌 온전한 로봇의 얼굴에서 김현주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현재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기계적인 정이를 표현하기 위한 어려움이 있었다. 기술적인 것도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그것까지 염두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서현(강수연)과의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다. 저는 딸인지 모른다. 그런 감정으로 정면을 보는 상태였다. 제가 감독님께 말씀드린 것은 보이지 않지만 서연과 눈맞춤할 수 있었으면 하고 제의를 드렸다. 그날 감정도 너무 좋았고 선배님 연기하는거 보면서 이미 울컥한 상태였다. 공기와 습도와 모든 감정이 다 맞춰진 날이었다. 현장에서 저는 그걸 몰랐다. 모니터 한 분들이 너무 좋았다고 해주셔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정이 役 김현주/넷플릭스
 반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A.I. 정이의 상반신만 등장하는 씬에서의 어쩔 수 없는 노출이다. "제가 비주얼적으로 영향을 받는 편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연기가 안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테 너무 예쁜 옷을 입는다던지, 그럼 연기가 잘 안 된다. 상반신만 있을 때는 수트를 벗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해서 CG를 입혀야 했다. 너무 부끄럽더라. 내가 아닌 느낌이었다. 정이 연기를 해야는데 너무 정이같지 않아서 그날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 씬 찍고나서 다시 수트를 착장했는데 너무 힘이 나더라. 차리리 무게감이 나았다. 제자리에서 뛰는 장면도 있었다. 세트 안에서 실험할 때 뛰는 장면은 러닝머신에서 뛰었다. 손이 묶인 상태에서 뛰러고 하니 쉽지 않았지만 노출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미소)."'
 

'정이'는 故강수연의 복귀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지만, 공개 이전인 지난해 5월 강수연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촬영은 물론 후시녹음까지 모두 끝마친 상태였지만 갑작스러운 부고에 많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강수연은 '정이'에서 윤서현으로 분해 A.I. 전투용병 정이의 개발을 전담하는 팀장이자, 딸로서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사실 선배님은 저한테는 상상 속의 인물이다. 지나다도 뵌 적 없는 한국 영화계의 대들보같은 분이다. 마주보고 연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볼일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겁이 좀 났다.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선배님이 너무 편하게 대해주셨다. 저희를 너무 좋아하고 예뻐해주셨다. 저도 연차가 좀 되다보니 선배님도 계시지만 후배들을 만난다. 어른인 척 하는 상황들이 생긴다. 어른처럼 보여야하는 부담감도 있어서 쉽지 않다. 근데 선배님이랑 가치 하면서 귀여움 떨 수 있고 기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윤서현 役 강수연/넷플릭스
 

'정이'가 공개된 후 함께 촬영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픈 됐을 때도 선배님 반응을 생각해봤다. 아마 우리는 같이 만나서 봤을 것이다. 그 기분을 함께 하고 싶었을 것 같다. 떨림, 기대감, 설렘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들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선배님은 만족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늘 불만족하면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오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 스스로는 작품적인 것이 아닌, 일희일비하시는 분이 아니고 경험이 너무 많으신 분이다.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경수하고도 얘기했는데 우리 계속 칭찬해줬을 것 같다는 얘기는 했었다."

강수연과의 촬영 중 잊지 못할 씬은 극 중 서현이 정이에게 탈출 계획을 알리는 귓속말 장면이다. "서현이 저한테 귓속말로 해주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로봇이라 반응하면 안되는데, 뒤에서 체온이 느껴지면서 귓속에 대사를 하시는데 너무 울컥했다. 선배님도 똑같이 느낀 것 같았다. 계속 눈물날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장면만 보면 현장이 기억나서 오히려 그 씬이 슬펐던 것 같다.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뒤늦게 느껴졌다."

류경수와는 '지옥'에 이어 만났다. 류경수는 정이의 뇌복제 실험을 꼭 성공시켜야 하는 크로노이드 연구소장 상훈을 연기했다. 두 사람은 차기작인 '선산'에서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류경수 배우는 감독님과 죽이 너무 잘 맞는다. 개그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정이' 속 그 캐릭터를 mbti를 정해서 했다고 하더라. 너무 똑똑하게 잘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열정을 표현했으면 더 어색할 수 있었는데 적당히 잘 한 것 같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정이 役 김현주/넷플릭스
 

류경수와 함께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과 '지옥'에 이어 재회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촬영 중인 차기작 '선산' 역시 연 감독이 기획하고 '부산행'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민홍남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김현주는 누구보다 '연니버스 세계관'의 중심에 활약하고 있다. 연이은 작업으로 연상호 감독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했을까. 김현주는 "의지하고 더 많이 신뢰하게 됐다"고 했다.

"저는 너무 생소한 작품이고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장르물이다. 로봇 연기와 용병, 이런 이미지를 저한테 덧 대 봤을 때 선입견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실 수 있어서 걱정한 부분이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보여져서 저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 그래서 더 냉정할 수 있었고, 해볼만 했던 것 같다.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염려된 부분은 의지하고 맞춰가면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에서 채워지는게 많은 장르다.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못한 부분은 액션 배우와 CG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서 용기내서 도전할 수 있었다."

김현주에 '정이'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그는 "제 도전도 좋았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정이'는 내 마음에 너무 남아있는 작품일 것 같다. 선배님도 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작품적으로는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잃었다. 완벽한 작품,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은 없다.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작품을 만드는 입장이지만 욕을 해도 좋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정이 役 김현주/넷플릭스
 

김현주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안방에서 벗어나 더 큰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부터 김현주에 연이은 연기 변신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고마운 존재다. "이전에는 연상호 감독님을 '돼지의 왕' 같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부산행'으로 흥행한 감독 정도로만 알았다. 사회를 보는 시각이 비뚤어진 시각은 있다고 생각했다. 디스토피아 하는거 보면 오히려 그게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있었다. 만나고 나서는 그 시각 너머에 유머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지적인 유머가 없으면 유머가 쉽지 않다. 갖고 있는게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덕분에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배우로서는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어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면, 잘해내면 좋을 것 같다. 자연인 김현주는 매 순간을 즐기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지금처럼만 가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적절히 밸런스가 맞춰진 상태다. 이런 밸런스로 계속 가준다면 외롭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감사한 마음에 드라마 '트롤리'를 시청해준 팬들을 대상으로 직접 손으로 뜬 가방을 선물로 증정하고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성격인데 선물이나 커피차가 너무 많이 온다. 은근히 해외에서도 팬들이 늘었다. 최근 들어 작품을 많이 하다보니 고마운 마음에 SNS를 시작했다. '정이'하고 팬들이 계속 늘고 있다. 보답하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이벤트를 하게 됐다. '트롤리' 종영 날까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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