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공감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하는 '믿고 보는 배우' 이성민이 또 한번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 바로 80대 노인으로 변신,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60년 품은 복수심을 불태우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남은 생애 목표는 오직 '복수'뿐이라는 일념 하나로 128분을 내달리는 이성민은 또 한번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다.
이성민이 출연한 영화 '리멤버'(감독 이일형)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오는 10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된 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리멤버' 한필주 役 이성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이성민이 분한 80대 노인 필주는 알츠 하이머를 앓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60년동안 품어온 복수심을 불태우며 자신에게서 가족을 앗아간 이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원작이 있는 '리멤버'는 이일형 감독에 의해 한국 스타일로 새롭게 각색됐다. 이성민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노인 연기를 해야한다는 것이 부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했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다. 한필주 역할이 부담됐지만, 배우로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고, 잘 해내면 또 다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성된 영화를 언론 시사회를 통해 처음 봤다는 이성민은 "우리 영화 소재 때문에 대중들이 '또 이런 영화야?'라는 소리를 할까봐 우려를 했다. 근데 필주의 캐릭터는 이 영화의 큰 줄거리 중의 하나이다. 남주혁씨가 연기한 인규라는 캐릭터가 많은 관객들, 젊은 관객들에 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설득력을 부여하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인규라는 캐릭터가 잘 해준 것 같아서 많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리멤버' 이성민 남주혁 스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리멤버'는 일명 '친일파 처단극'이다. 필주 개인으로 본다면, 60년동안 사무친 아픔이 있기에 죽기 전 복수하고자 살생부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필주에 의해 인규는 의도치 않게 복수극에 휘말리며, 그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필주라는 인물은 그 시대에 살았고, 당시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인물이다. 중요한 점은 60년 전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현대에 관객들에 공감을 어떻게 줄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다. 인규라는 캐릭터가 필주의 여정에 휘말리며 때로는 동참하고, 때로는 끌려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어쩌면 지금 관객들의 눈높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규는 현 시대의 젊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주혁씨가 참 잘해준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생각했다."
언론 시사 후 이성민은 완성된 영화를 보고 눈물을 훔쳤다고 밝힌 바. 그의 눈물샘을 자극한 장면은 필주의 복수 정점에서 마주한 인규와의 장면이다. "그 씬에서 영화를 보다가 주혁이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영화 촬영한지도 꽤 지났고, 공백을 두고 영화를 다시 보는데도 신선했다. 새로웠다. 객관적이어서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 필주한테 감정이입이 많이 돼 있었다. 필주의 과거들이 함께 스쳐 지나가면서 몰입됐다."
▲영화 '리멤버' 한필주 役 이성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80대 분장에 이은 고민은 80대 노인의 움직임이다. "필주의 얼굴로 얼마나 노인처럼 행동하느냐인데, 그건 사실 공식처럼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평소 일상도 이 영화를 하겠다고 한 다음부터는 약간씩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테스트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해나갔다.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목을 눌러서 만들고 호흡도 긁어가면서 했다. 후유증이 약간 있었다. 촬영 중반부터는 목디스크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빨간 포르쉐를 탄 필주는 한명씩 자신의 살생부 리스트의 인물들을 제거해간다. 박근형, 송영창, 문창길, 박병호까지 이성민에도 아버지뻘인 대선배들은 기꺼이 친일파로 등장해 호흡을 맞췄다. 이성민은 "스포츠카 운전할 때도 기억에 남지만, 박병호 선배님과 엘리베이터 액션씬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영화 '리멤버' 한필주 役 이성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그렇게 힘든 액션 콘티는 아니었다. 리허설을 할 때는 무술팀이 대역을 했다. 감독님은 80대 노인들의 움직임 치고는 너무 빠른 움직임이라 판단하셨다. 고령의 노인들이 이렇게 싸우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던 속도보다 더 느리게 움직여야 했다. 그게 많이 힘들었다. 저속으로 해야하는게 힘들었다. 무술팀도 지금까지 했던 것중에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실제 박병호 선배님이 필주의 나이 정도 되시는 분이다. 옛날에는 액션 영화에서도 많이 활약하셨다고 하더라. 박병호 선배님은 부상 있었는데 끝날 때까지 참고 말씀도 안하셨다."
선생님들과의 호흡 소감도 전했다. "박근형 선배님과 처음 작업했다. 굉장히 설렜다. 박병호 선생님은 진짜 오랜만에 뵙는 분이라서 너무 신기했었다. 선배님들은 늘 카메라 앞에 서 계시고, 너무 열심히 하셨다. 세팅 때도 준비하고 계셔서 너무 존경스러웠다. 송영창 선배님은 그 중에서 제일 막내였다. 힘이 세시고 정말 열심히 하셨다. 선배님들끼리 계실 때 송영창 선배님한테 '막내야~' 하시면서 대화하시더라. 문창길 선배님이 중간이다. 위로 큰 형님이 둘이나 계셔서 너무 귀여웠다."
또 이성민은 "박근형 선배님과는 골프 이야기하면서 대화가 많아졌다. 옛날 촬영장 분위기도 많이 알려주셨다. 선배님이 활동하시던 그 시절에는 드라마를 이원 생방으로 했다고 하더라. 생방송인데 세트 촬영을 하다가 그대로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촬영을 했다더라. 선배님과 이야기할 때는 제가 인규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고 회상했다.
▲영화 '리멤버' 한필주 役 이성민 스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반대로 필주와 동행하는 인물은 20대 인규다. 필주는 젊은 감성을 가진 할아버지이기에 인규와의 손인사부터 사용하는 신조어까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손인사는 연출부가 만들어줬다. 남주혁씨와 틈만 나면 연습했었다. 또 원래 대본에는 '존맛탱' 밖에 없었다. JMT를 제가 제안해서 넣었다. 신조어는 잘 모르지만 그건 안다. 전에 '공작' 홍보때 신조어를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자꾸 시켜서 멘붕이었다. 하하. 배우는 그러지 않아야지 하는데도 잘 안되는 것 같다. 저는 '롤'도 잘 모른다. '헤이 브로' 조차도 입에 잘 안 붙더라. '존버'도 아주 편하게 쓰지만 저는 어색했다."
특히 극 중 필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생일을 맞은 손님을 위한 퍼포먼스 중 탬버린을 담당했다. 그는 "탬버린은 진짜 많이 연습했다. 집에서 연습 하다가 너무 시끄럽다고 야단을 맞았었다(웃음). 그래서 소리 안나게 테이프로 다 붙여서 연습했다. 저는 원래 박자감이 좋지 않다. 할아버지가 흔드는 탬버린이라서 그 박자에 맞아야 해서 힘들었다"고 비화도 덧붙였다.
반면 '리멤버'는 이성민과 젊은 배우들과의 브로케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작품이다. 앞서 드라마 '미생'에서 임시완, '기억'에서 이준호에 이어 '리멤버'에서는 남주혁과 호흡했다. 또 방송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송중기와 케미를 기대케 한다.
▲영화 '리멤버' 한필주 役 이성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제가 어릴 때 연극을 배울 때는 무대에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지어 배웠다. 등장부터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근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다 쓸데없더라. 나이가 들어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내가 상대하는 배우가 나보다 동생이든, 몇살이 많든, 배우가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존중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나야 좋은 장면, 좋은 씬들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후배들과 연기할 때 저는 그런 태도로 연기하는 것 같다. 그래야 자기가 가진 것 100%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앙상블에 도움을 주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멤버'처럼 계속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이유는 이성민이 배우로 활동하는 원동력이다. "감독님이 처음 제안했을 때는 이게 해볼만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잘해볼 수 있을때까지 하자는 기대와 호기심이 있었다. 그게 내가 배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왜 배우 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근데 어느날 부터는 내가 계속하는 이유가 생기더라. 내가 도전하는 이유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항상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하지만 부족함이 남고 그게 내가 배우의 길을 계속 가야할 수 밖에 없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 중의 하나가 노역인 것 같다."
영화는 '친일파'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적인 복수가, 그리고 그들을 처단하는 것만이 옳은 것이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성민 역시 현 시대에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 시대를 겪은 할아버지와 전혀 동떨어진 젊은 친구가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세상이었으면 한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어우려져 살 수 있고, 서로 존중해주는 세대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성민은 "저는 허트루 나이 먹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존중하고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저도 제 딸을 보면서 성에 안 찰 때가 많지만, 내가 그 나이에 어땠나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다. 인규나 필주처럼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한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