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지영 감독 "실화극 '소년들' 제작 제약 없어...뚝심보다 오기 필요"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11-01 06: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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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또 한번 우리에게 잊혀져서는 안될 사건이 재조명됐다. 실화극 3부작을 완성한 정지영 감독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스크린에 그려낸 것이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권력자들에 의해 배움이 부족한 어린 아이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고, 결국은 재심 사건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정지영 감독은 실화극을 통해 다시 한번 대한민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정 감독은 20여년 만에 '부러진 화살'(2012년)을 시작으로, '블랙머니'(2019년), '소년들'까지 일명 실화극 3부작을 완성했다. 11월 1일 개봉한 영화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려 4년 전에 촬영을 마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그리고 마침내 오늘 11월 1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영화 '소년들' 연출 정지영 감독/CJ ENM
 하지만 현재 한국영화 시장은 참담할 정도로 위기 상황에 놓였다.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가 손에 꼽일 정도다. 개봉 소감을 묻자 감독은 "묵직하긴 하지만 영화가 재미가 있다. 어차피 내 영화가 가벼울 수 없다. 지금은 할리우드 대작도 없고, 한국영화도 대작이 없는 시기다. 더 늦으면 옛날 영화가 돼버리기 때문에 내가 서둘렀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소년들'은 실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각색했다. 민감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투자, 제작에 어려움이 없었고, 제약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공권력을 비판하니까 방해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소년들'은 그런 제약이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이 극심할 때 촬영해서 힘든 것 밖에는 없었다. 뚝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뚝심보다는 끈기와 오기는 필요한 것 같다. 처음에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영화화 하고 싶었으나, 다른 사람이 먼저 제작의뢰를 해서 결국 연출하지 못했다. 이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접하고 제의했을 때는 허락이 떨어졌다. 대중들이 많이 안다고 한 사건이지만, 속살은 모른다. 그래서 다시 잘 들여자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사실 '소년들'은 '블랙머니' 촬영 하기 전에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감독은 "'블랙머니' 하기 전에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블랙머니'는 시나리오가 오래전에 쓰여졌던 것이다. 누가 우연히 읽어보고 투자자가 붙어서 그 후가 됐다. 시나리오 초고를 필리핀에서 완성했다. 그때  배급사 CJ도 이 사건을 영화하하고 싶다고 박준영 변호사에 연락 했다더라. 그래서 CJ에서 연락이 먼저 왔다. 내가 CJ와 작업을 하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비화를 전했다.

 

▲영화 '소년들' 연출 정지영 감독/CJ ENM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각색하면서 가장 지양한 부분은 무엇일까. 정 감독은 "나 스스로 어디까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극적 구조를 만드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은 실제 진범이 재판장에 나타났고, 당시 현장을 촬영했던 테이프가 발견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피해자 유족은 원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인데, 딸로 바꾸면서 더 절실하게 보일 수 있게 했다"고 각색 포인트를 설명했다.

 

실화극인만큼 캐스팅도 중요했다. 감독은 처음부터 설경구를 의도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설경구는 사건을 재수사에 나서는 수사반장 황준철 역으로, 우직한 집념으로 사건 해결에 나선다. 사실 설경구가 연기한 황준철은 해당 사건과는 무관하다. 그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황상만 반장이 모티브가 된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는 별개이지만, 두 사건 모두 박준형 변호사가 맡은 재심사건이다. 특히 황 반장의 모습은 뚝심 있게 항상 실화극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감독과도 닮아있다. 감독은 "설경구에 일단 한번 만나자고 운을 뗐다. 만나서 책을 안보고도 한다고 하길래 그 다음에 강철중 이야기를 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설경구가 변화를 잘 주는 배우다. 형사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마치 강철중이 나이 먹어서 반장이 된 느낌이었다. 노하우가 쌓이고 저돌적인 면이. 근데 17년 후의 형사가 날개 떨어진 새처럼 쳐져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강철중과는 다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설경구에게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7년의 세월을 보여줘야한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7년 후인데 술만 먹어대서 살이 쪘을 것이냐, 안주도 안 먹고 술만 먹고 운동도 안해서 곯아있겠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더니 빼겠다고 하더라. 일주일 줬더니 밥도 안먹고 줄넘기 하더라. 고생 많이 했다(웃음)"

 

▲영화 '소년들' 스틸/CJ ENM

 

설경구와 대척점에 선 인물은 유준상이 분했다. 실적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치밀한 수사로 조직 내 신뢰가 두터운 엘리트 경찰 최우성으로 분한 유준상은 선한 얼굴이었기에 필요했다. "유준상은 선한 이미지, 모범생 얼굴이다. 그런 얼굴이 필요했다. 이 시대에 선한 얼굴을 한 나쁜 놈들이 많다. 선한 줄 알았는제 진짜 나쁜 사람이 많다.공부만 한 사람들. 그런 모습이 필요했다. 유준상이 그 역할을 가져가는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스스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피해자인 할머니의 딸이자 유일한 목격자 윤미숙은 진경이 분했다. 사실 진경은 정 감독의 '부러진 화살'로 첫 상업영화 데뷔를 한 인연이 있다. '블랙머니'에서 호흡을 맞춘 조진웅은 우리슈퍼 사건의 담당 검사 오재형 역으로 우정 출연했다. "검사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무게감 있는 연기자가 해야는데 조진웅이 생각나 졸라보자 생각했다. 한다고 해서 함께 하게 됐다."

 

소년들은 아역배우 먼저, 이후 성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한 친구는 주인공이나 다름없이 지능이 떨어져야 한다. 그 친구는 제일 먼저 캐스팅을 했다. 그 친구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게 권창호다. 운동도 하는 애다. 둘 사이 중간 쯤, 손기술이 있는 설정의 캐릭터도 필요했다. 그리고 성장했을 때도 얼굴이 구분이 되야 해서 애들을 먼저 캐스팅했다. 거기에 맞춰서 어른을 캐스팅했다." 

 

▲영화 '소년들' 스틸/CJ ENM

 

영화의 결말은 이미 알려진 바. 하지만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세 소년이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은 뭉클하지만, 다소 영화적 허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촬영 당시 세 소년에 특별히 디렉션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저렇게 억울함이 풀렸을 경우 기분이 어떨까. 사실 그 사람 속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세 소년으로 살아온 배우들에 맡겼다. 그리고 지켜봤고, 그에 따라 카메라를 배치했다.나도 처음에는 오바가 아닐까 생각도 했는데 그들은 일반인보다 더 순수한 사람들이다. 배움도 짧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아왔다. 그런 그 사람들이 한번 터지면 그렇게 터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냥 갔다."

 

'소년들'은 개봉을 앞두고 최근 전주에서 시사를 마쳤다. 시사회에는 해당 사건의 피해자 세분 중 한 명, 유족, 박준영 변호사 그리고 실제 진범이 참석했다. 현재 진범은 피해자들에 사과하며 화해한 상태. 뿐만 아니라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사건에서 승소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등대 장학회' 사람들이 함께했다. 시사회 반응은 어땠을까. 먼저 감독은 "세 소년들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허락은 했지만, 다시 그 시절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세 분 중 한 분만 오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꽃다발 들고 찾아와서 너무 뭉클했다. 또 등대 장학회 분들도 자신의 일인냥 흐뭇해 하더라. 자신들을 대신한 영화라서 그런 것 같다. 그분들은 사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밝다. 근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당시 사건 검증 현장을 카메라로 촬영했던 분이 재심 사건 법정에서도 경찰과 검사는 끝까지 우겼다면서 원망하시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영화 보고 나서 박준영 변호사가 고맙다고 하더라. 그들한테 그런 외침을 주어서 고맙다고.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으로 싸우면서 그분들이 자신 없어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영화에서 저렇게 외쳐주니까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영화 '소년들' 연출 정지영 감독/CJ ENM

 

지난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한 정지영 감독은 1988년 할리우드 직접배급 영화가 한국에 상영될 시기, 이를 반대하며 극장에 뱀 테러를 했던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는 연출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먼저 '남부군'(1990년)으로 청룡영화상 감독상, '하얀전쟁'(1992년),으로 대종상 영화제 각색상,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대상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년)의 생애로 백상예술대상 감독상과 청룡영화상 대상을, '블랙잭'(1997년)으로 백상예술대상 감독상을, 그리고 2012년 '부러진 화살'로 청룡영화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실화극 3부작을 완성했음에도, 감독의 차기작은 역시 실화가 바탕이 되는 작품이다. 제주도 4.3사건을 중심으로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들이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도 사람이라면 모두가 연루된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내 팔자가 뭔가를 하려면 결국은 한다고 하더라. 근데 그 과정이 되게 어렵다고 하더라. 어떤 사건이라도 그냥 지나가지 말자. 좀 더 사람들이 피동적으로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자라는 생각이다. 조금 더 주변의 이웃과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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