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행복'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근데 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되더라. 그 노래를 들으면 슬퍼도 행복해진다. 마치 악마의 스펠(주문) 같았다."
최근 침체된 한국영화 시장에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영화가 등장했다. 관객들의 관람평이 1과 10으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영화 '킬링 로맨스'가 바로 그 주역이다.
'킬링 로맨스'는 관람 평까지도 콘텐츠가 될 정도로 한국영화사에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CGV골든에그지수 61%로 출발했지만, 개봉 6일째에 마침내 70%를 기록, 무려 9%를 거슬러 오르는 관객 평점 역주행을 기록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 관람 당시 낮은 점수를 남겼던 관객들이 시간이 흐른 후, 뇌리에 맴도는 '행복'과 '여래니즘'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수를 수정했다는 고백 사례도 늘어나는 중이다.
▲영화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문제작 영화 '킬링 로맨스'(감독 이원석)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24일 누적 관객수 12만 5천명을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원석 감독과 배우 이선균, 이하늬, 공명 등 전 출연진은 '킬링 로맨스'를 위해 뭉쳤지만 항상 '우리 단체로 이민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달고 살았다. 그만큼 독보적인 비주얼에 모든 예측을 빗겨가는 기발한 상상력이 코미디와 버물린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원석 감독은 "우리 제작진도 희안했다. 저는 '하지마' 소리만 듣고 살았지, 저희 부모님도 저한테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근데 제작자부터 배우까지 저한테 '하고 싶은 것 다해'라고 했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은 다 못 했다. 욕 먹을 수 있는, 모험을 한 것이다"고 했다.
'마누라 죽이기'와 닮은 '킬링 로맨스'의 소재는 코미디로 풀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톱스타 여래가 섬나라 재벌 조나단과 결혼 후 7년동안 콸라섬에서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라는 모든 기대와는 달리, 그는 집안에 갇힌 벽화처럼, 조나단의 인형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폭력 남편을 소재로 여래가 복수를 결심하는 내용이다. 소재의 불편함을 코미디로 뛰어 넘기 위해 감독이 생각한 방법은 '만약에'와 액자식 구성 같은 동화 설정이다.
"제가 만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만약이라는 말이 되게 마법같다. 모든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상상력이 넓어진다. 그걸 잘하는게 디즈니다. '옛날 옛날에~'라고 하면서 그것을 끌어들이고 비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하는 할머니도 땀복을 입고 나온다. 그거 자체도 디즈니를 비튼 것이다. '왜'보다 '하우'에 집중해서 갔다."
▲영화 '킬링 로맨스' 메인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
디즈니를 시작으로, 이원석 감독은 정말 비상하리 만큼 많은 것들을 비틀며, 신박한 작품을 완성했다. '킬링 로맨스'의 중심에는 '잇츠 귯'을 외치는, 역시나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나르시즘의 끝판왕 조나단(이선균)이 있다. 이선균은 필모 사상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캐릭터 조나단으로 독보적인 매력을 펼친다. 이원석 감독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다가 이선균이 등장한 광고를 보고 조나단 캐스팅을 떠올렸다. "'나의 아저씨'를 3회까지 보다가 이가탄 광고에 이선균씨가 나오는데 정말 웃겨서 못 보겠더라. 결국엔 그때는 다 못 봤다. 그래도 최근에는 다 보고 울었다. 그때 혹시나 하고 찔러봤는데 캐스팅이 된거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조나단이 우리 주변에 있는 행복을 강요하는 '악'이라면 여래는 거기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앞서 이선균은 조나단 촬영 중 '도복'을 입을 때마다 현타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원석 감독은 조나단이 도복을 입고 등장한 씬 촬영을 회상했다. "조나단은 미스터리한 삶을 살았지마 태권도 사범으로 콸라섬에 왔었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여래를 구하기 위해 등장하는 씬과 '덕이란~'영상에 이선균씨가 도복을 입고 나온다. 그때 아웃 테이크 때도 그렇게 열심히 하더라. 격파도 하고 정말 별 것 다 해서 그것만 해도 단편영화 하나 나올 정도다. 현장에 '나의 아저씨' 팬들인 스태프들이 싫어했다(웃음)."
극 중 조나단이 부르는'행복'은 '캔디'와 함께 H.O.T.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곡이다. 밝고 희망적인 가사와 밝은 무드가 특징인 곡이다. 하지만 '킬링 로맨스'에서는 '행복'이라는 노래가 점차 변모하는 진귀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슬럼프를 맞은 여래는 콸라섬에서 '행복'을 부르는 조나단을 보며 첫 눈에 반했다. 하지만 7년 후 조나단이 부르는 '행복'은 가스라이팅처럼 두려운 존재가 된다. "'행복'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근데 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되더라. 그 노래를 들으면 슬퍼도 행복해진다. 마치 악마의 스펠(주문) 같았다."
또 감독은 "이선균씨랑 냉면을 먹다가 '행복' 노래를 얘기했다. 근데 진짜 그 옆에 우연히 장우혁씨가 옆에서 냉면 먹고 있더라. 이선균씨랑 아는 사이였다. 마치 신의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킬링 로맨스' 도복 입은 이선균(조나단)/롯데엔터테인먼트 |
조나단에 '행복'이 있다면, 여래에게는 '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니즘'이 있다. "그때 저는 '깡' 밈이 나오기 전부터 1일 1깡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자뻑의 노래가 없다. 어딜 가도 세상이 다 내꺼같고 그렇다는 그런 노래가 어딨냐. 그게 여래가 느꼈던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느꼈다. 상징적이라서 그 노래를 써야겠다 생각을 했다. 비씨가 이하늬씨랑 알아서 적극적으로 개사해서 불러주고 그랬다."
'여래니즘'은 황여래 주제곡으로 '행복'을 대적하는 노래다. 이하늬는 극 초반에는 화려한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조나단과 결혼 후 귀국해서는 마치 성 안에 붙어있는 초상화처럼 갇힌 모습이다. 이에 여래의 진짜 심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순간 장르가 뮤지컬로 전환된다. 이원석 감독은 시나리오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원픽이 이하늬였다고 한다. "대본 나오자마자 이하늬씨밖에 못한다고 생각했다. 대본이 바뀌면서 이 뻔뻔한 감정과 슬픈 감정의 격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하늬씨밖에 없었다. 다른 옵션이 없었다. (캐스팅)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미국에서 이선균씨랑 우연히 만났다는 것도 신기했다."
한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킬링 로맨스'는 촬영 준비 과정부터 촬영 도중까지 마법같이 신기한 일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촬영 스케줄 변동도 잦았다. 비록 힘들었지만 배우, 스태프들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돌파구를 찾았던 당시도 회상했다. "조나단과 여래의 첫 만남은 평창 마트 앞에서 찍었다. 서울에서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준 것 같다. 현장이 되게 재밌었다. 배우들이 너무 열심히 해줬다. 상주에서 촬영을 마치고 이제 서울 근교에서 찍으면서 촬영하려고 했는데 셧 다운이 되서 못 들어왔다. 우리 영화는 동화라서 세트가 정확히 계산돼 있어야 했는데 그 상황이 안됐다. 배우들이 하나가 되서 아이디어를 냈다. 귤 싸움도 벌어지는 장면이었는데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때 이선균씨가 홈쇼핑 방송을 보더니 '내 친구'라고 하더라. 급하게 친구분에 부탁해서 세트장이 홈쇼핑 세트로 바뀌었다. 스태프들 한 50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엔딩을 촬영했다."
성 안에 갇힌, 여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는 공명이 분한 범우다. 서울대가 당연한 집안에서 홀로 고독한 입시 싸움 중인 4수생 범우는 여래에 대한 사랑만큼은 넘치지만, 너무도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범우 캐스팅에 고민을 많이 했다. 우연히 카페에서 공명씨를 만났었다. 격식을 차리고 너무 순수하게 해맑게 인사를 하는데 그게 인상이 좋았다. 정말 깨끗한 사람이다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연기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명이는 정말 순수한 친구다. 너무 보고싶다."
▲영화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어차피 '킬링 로맨스'의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을 우려했던 바다. 다만, 아쉬운 점은 공명이 군복무 중에 '킬링 로맨스'가 개봉했다는 것이다. 앞서 '킬링 로맨스' 시사회 당시 공명은 휴가를 나와 가족들과 함께 관람했다. 이때 공명의 동생이자 아이돌 그룹 NCT 멤버 도영은 멤버 쟈니, 재현, 정우와 동반해 영화를 관람했다. 이들은 '여래바래' 인증샷과 후기를 남겼다. 또한 도영은 도재정 활동 중에 항상 '킬링 로맨스' 홍보를 빼놓지 않고 있다. 형의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공명이 제대할 때까지 우리 무대인사를 하는게 소원이다. 공명씨가 휴가 나와서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왔었다. 되게 가족적이고, 생각이 올바르다. 공명씨 앞에서는 누구 욕을 못할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앞에서 누구 욕을 못한다. 되게 민망해질 정도다. 그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NCT가 온 줄도 몰랐는데 참 고맙다."
완성된 '킬링 로맨스'도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리는 가운데, 이는 감독이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여기에 분량 때문에 넣지 못한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영화가 잘되면 극한 병맛이라서 드러낸 레벨들도 보여주고 싶다.
▲영화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킬링 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의 독특함과 신박함, 색감으로 눈을 즐겁게 했던 '상의원'의 특징들만 모아놓은 콜라보작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시키는 색감과 연출, 촬영구도는 칭찬할 만하다. 감독이 생각하는 '주류'는 뭘까.
"어릴 때부터 '꼴통' '또라이' 소리는 달고 살았다. 남에게는 최대한 피해를 안주려고 살았다. 제가 비주류를 좋아하는 것은 영화를 늦게 배웠다. 6-70년대 미국영화에 빠졌다. 계급을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고상하고 완벽한 것을 무너뜨리는 재미가 B급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대충 만든 영화가 많다. 그게 저한테는 세상에서 너무 아름다운 영화다. 제가 다닌 학교가 전 세계의 모든 영화가 다 있다. 저는 운 좋게 두 명이 안오는 바람에 들어갈 수 없는 학교를 입학했다. 하루에 4편씩 영화를 봤다. 70년대에 멈췄다. '낯선자들'도 OTT에 피치한 적이 있는데 까였다. B급 SF를 만들고 싶다. 저는 B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냥 무언가를 비틀고 이런게 재밌고 분명히 사람들도 희열을 느끼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도 기존의 영화를 다 비튼 것이다. 주인공이 남편을 죽이던지, 조나단이 다 알고 있어서 짜고 했다는 반전이 있어야 한다. 근데 우리 영화에는 타조가 나온다. 우리 영화에 동화 포멧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끝내는 복수 하는 것이 '복수는 나의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물에 빠뜨려서 죽는게 오리지널 대본이었다. 근데 이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희는 텐션이 되게 중요했다. 하이텐션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가장 큰 피해자가 복수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식으로 범우의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주위에 악인들이 많지 않나, 또 그들은 다 잘되는 것 같다. 와이프가 저보고 인생 다 살았냐고 하더라(하하)."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