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은 그 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 데뷔 28년차에도 그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기획, 제작, 연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달린다. 마침내, 이정재와 '헌트'로 23년만에 재회하며 그간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로, 개봉 7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몰이중이다.
정우성은 이정재와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만에 작품에서 재회했다. 23년 전엔 배우와 배우로 만났다면 '헌트'에서는 감독과 배우로 호흡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설립한 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 제작해 의미가 더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연예계 내로라하는 절친인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2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헌트'는 언론 시사 후 호평이 쏟아졌고, 개봉 후에도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다. 하지만 정우성은 처음 이정재 감독의 '헌트' 출연 제안을 3번이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태양은 없다'로 당대 최고 '청춘의 아이콘'이 된 정우성, 이정재의 재회는 충무로도, 대중도 바래왔던 일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여기에 이정재의 첫 연출, 제작, 각본까지. '헌트'로 재회하는 두 사람이 떠 안고 가야할 부담감이 컸다. 누구보다 이정재를 옆에서 응원하는 마음이었기에 단순히 시나리오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정재씨가 처음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제작한다고 할 때부터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감독을 먼저 구하고 시나리오를 작업하는게 우선이니까 큰 표현은 안했다. 감독을 여러 분 접촉하고 이야기가 진행될 듯 하면서도 중단되는 것이 반복됐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둘이 하면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연출 제의를 받고는 저한테도 묻더라. 그때 제가 '보호자' 작업할 때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저를 보고 '괜찮냐고 죽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었다. 연출 이야기를 하길래 '지옥문을 열고 들어오겠다는 거냐'고 우스게 소리를 했지만 사실 그 선택에 무조건 지지할 생각이었다. '하실 수도 있죠'라고 했다. 한재덕 대표(사나이픽쳐스)님이 함께 하면서 확신을 더 가졌다. 저 역시 도전했던 사람이 그 도전의 값어치를 알아서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업계에서 바라보는 의미가 있는데 연출에 공독제작 출연까지 그 허들을 어떻게 다 넘어가려고 하나. 조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게 났지 않나는 취지에서 고사를 했던 것이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 포스터/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거듭 수정을 거친 '헌트' 시나리오는 정우성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정우성이 분한 김정도는 국가안전기획부 2팀 국내파트 차장이다. 군부 출신으로 넘치는 열정과 과감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로 1팀의 해외 파트 차장 박평호와 경쟁 관계다. '헌트'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각자 뚜렷한 자신의 신념을 갖고 치열하게 대립한다.
"정도나 평호는 시나리오 구성을 보면 혼자의 존재로서 빛날 수는 없다. 둘이 부딪히고 다른 신념이지만, 그걸 이루기 위한 집념은 비슷한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서는 딱딱한 부딪힘일 수 밖에 없다. 둘 사이에서의 온도와 기류 이런것들이 존재감을 상승시키는 구도였다. 프로젝트 과정을 다 봐온 사람이다. 같이 한다면, 우려하는 외부적인 시선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모든 의미를 던져놓고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하면서 정도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옷을 입혀가면서 디자인을 하고 접근해나갔다."
실제 절친이지만, 현장에서는 감독과 배우의 포지션이었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정도와 평호의 감정선 유지를 위해 말 수도 줄였다. "현장에서 말 수를 줄였다. 출연만하고 연출이 달랐다면, 오래간만에 연기하니까 대화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근데 지금 되돌아보니 '컷' 한 이후에 확 오는 감정이 있다. 조금 전까지 형성된 둘 사이의 그 감정이 너무 좋더라. 그때 당시에는 '좋다'. '나쁘다'를 하는 여유를 즐기려고 하지 않았다."
연출자로서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디렉팅을 하는 자신의 친구이자 감독 이정재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정우성은 "지치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현장에서 귀를 열고 있는 연출자이길 바랐다. 본인이 선택한 고뇌의 시간과 고독, 고립의 짐을 벗어던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걸 올곧이 짊어지고 해내는 모습을 보고 너무 좋았다. 지치지 않길 바랐다. 현장에서는 되게 피곤해보였다. 안쓰럽고 짠하고, 어떤 씬들은 되게 버거웠다. 그걸 해내는 것은 저 사람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감정선이 바닥까지 칠 때가 있다. 그런 감정선에 도달하는 모습을 몇 번 볼때는 짠했다. 혼자(눈물이) 핑 돌 때도 있었다. 그걸 당연히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지 옆에서 힘들다고 하면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정우성과 이정재는 23년동안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꼽았다. 연출자로서 선배인 정우성은 이정재 감독에 답답할 때는 없었냐는 물음에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터까지 본인이 하는 선택에 대해 좀 더 나은 선택점을 고민하는 모습이 있다. 옆에서 보면 그건 저랑 판단에 대한 기준점과 속도가 달랐다. 제가 속으로 '빨리 결정하지', '스태프들 속터진다'고 했었다"며 미소 지었다.
앞서 이정재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헌트' 속 계단 육탄전 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정우성, 이정재는 다양한 액션 씬을 소화하며 스파이 첩보 액션 물로서 매력을 배가했다. 정우성은 "둘 다 체력이 고갈됐고, 나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리허설 한번 해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둘의 치열함이 몸의 지침으로 표현이 됐다"며 웃었다. "촬영 내내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냉정한 시선으로 서로를 지켜보고 견제한다. 긍정적인 견제다. 서로 잘해내야한다는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 심리적 피로도가 상당했을 것이다. 감정선이 부딪힐 때는 팽팽함을 유지했다. 서로 사정을 봐주지 않고 치열하게 격렬하게 부딪히는 긴장의 시간의 연속이었다."
반면, 80년대 독재정권을 배경으로 김정도의 캐릭터 설정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따르기도 한다. 김정도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계엄군이었던 인물이다.
"역사적 사건의 팩트를 건들여서 틀어버리는 스토리 구성은 아니다. 정도도 평호도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과 사회, 이념에 대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하면서 딜레마에 빠져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행동을 옮기려고 한다. 그 시대에 그런 사건을 보여진 인물은 없다. 그런 생각은 했지만 행동으로 못 옮겼을 법도 하다. 평호도 평화를 생각하는 인물이 있지 않을까. 허구적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첩보액션 스릴러기 때문에 이 장르를 얹을 수 있는 시대가 언제일까 생각하면. 그 시대였다. 그 딜레마를 정보부에 넣고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극적인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 실제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전면에 드러내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니다. 틀거나 왜곡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딜레마를 보여주고 하는 것이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정우성은 극 중 김정도의 후임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군부대 출신인 장철성으로 호흡한 허성태와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이후 두번째 만남이다. '고요의 바다' 제작자였던 정우성은 허성태와 '신의 한 수: 귀수 편' 뒷풀이에서 처음 만났다.
"너무 매력있더라. 정말 좋은 배우여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요의 바다' 할 때 캐스팅을 PD에 제안해서 같이 작업을 했다. 제가 추천했다. 그때는 '오징어 게임'에서 그렇게 나오는지 몰랐다. 촬영하고 있는데 '오징어 게임'에 나오더라. '힘든 역할 하는데 또 제안을 했구나' 그래서 약간 미안했다. 성태씨는 거칠고 남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땀도 많다(웃음). 한마디 이야기하기 전에도 조심스럽다. 제가 '답답하다'고 빨리 이야기하라고 하기도 한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그 외에도 '헌트'는 역대급 특별출연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신세계', '아수라', '보호자'까지 정우성, 이정재 뿐만 아니라 사나이픽쳐스와 연이 있는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해 두 사람의 재회를 축하했다. "선뜻 출연해준다고 하더라. 도쿄 4인방은 오디션 영상 받아서 하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하하. 다들 함께 뭉쳐서 작업한 기억도 있고, 두 친구가 오래간만에 뭉친다고 하니 다들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해줘서 고마웠다. 현장에서 다 같이 모여서 수다떨 수 있어서 즐거웠다."
'헌트'는 정우성에 남다른 의미 그 이상을 지닌다. "지금 시점에서는, 영화인으로서의 그간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구나 안도하게 되는 것 같다. 정재씨랑 따로 할 때랑 같이 할 때 다르다. 나름 '헌트'라는 작품으로 둘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입증해드린 것 같다. 그건 신뢰도로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어느정도 신뢰의 시선으로 관심을 가져주시겠구나 라는 마음이 있다. 작업을 통해서 어느 순간 우리가 영화인으로서 만드는 것에 있어서 이 정도 까지의 수준이 됐다는 것을 스스로가 자각하는 시점인 것 같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또 정우성은 "'헌트' VIP 시사회 당시 감독님들만 모셨던 관이 있었다. 그 관에 들어가니 배창호 감독님도 있었다. 정재씨 데뷔작인 '젊은 남자'의 감독님이다. 무대인사 하는데 단어 선택이 어렵더라. '90년대 초반에 운이 좋아서 영화배우가 된 친구가 '태양은 없다' 이후 살아오면서 얼마나 진지하게 임했는지 이 작품으로 전달됐으면 한다'고 했다. 딱 그 마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헌트'를 계기로 이정재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헌트'에 좋은 반응들을 주셔서 오히려 뒤로 던져놨던 특별한 의미들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정재씨랑 좀 더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이전에 기획했던 것을 다시 꺼내서 지금 바라보는 관점과 상상력이 달라졌으니, 또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차기작은 정우성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 '보호자'다. 오는 9월 8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제47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보호자'는 '헌트'와 함께 해당 영화제에 초청되며 겹경사를 맞았다. "개봉 시점에 맞춰서 영화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되게 기뻐했다. 각자의 연출, 출연작이 같이 가니까. 저보다 정재씨가 더 좋아해준 것 같다. '헌트'와 '보호자'가 같이 가니까. 오히려 마음이 가벼운 느낌인 것 같다. 친구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던 입장으로서는(미소). 후반작업을 하려고 한다. 충분히 하고싶은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보호자'는 10년 만에 출소해 자신을 쫓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수혁(정우성)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정우성,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이 호흡을 맞췄다. 정우성은 김준한에 대해 "'박열'에서 김준한을 봤다. '저 친구 뭐지?' 하고 호감이 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때 부딪히는 씬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연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배우다. 진짜 자기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보호자' 제안을 했고 좋게 생각해서 같이 하게 됐다"고 했다.
▲영화 '헌트' 김정도 役 정우성/메가박스중앙(주) 플러스엠 |
앞서 이정재 감독이 '헌트' 시사회에 배창호 감독을 초대했던 바. 정우성은 '비트'를 함께한 김성수 감독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구미호'로 데뷔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 프로젝트 자체도 실험적이었고,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그때는 영화가 뭔지를 잘 몰랐다. 궁금하기만 했지, 안정적으로 나를 품어주는 느낌은 못 받았다. 주인공이니까, 낯선 존재로 현장을 맴돌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성수 감독님과 영화하면서 이게 진짜 영화구나. 감독이 저런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해준 분이다."
이정재 감독이 출연한 대히트작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K-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뜨겁다.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설립 후 기획, 제작, 연출, 각본, 주연 등 콘텐츠 제작의 모든 부분을 경험한 멀티 플레이어인 두 사람은 앞으로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선도해 나갈 글로벌 멀티 콘텐츠 제작사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포부다.
정우성은 "아티스트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K-콘텐츠 자체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가 높아졌다. 이제는 진짜 글로벌 스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들 알아보고 사인을 받고 싶어한다. 그 관심이 굉장히 큰 시기다. 좋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에 우쭐대거나 자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수준의 컨텐츠를 만들려고 한 노력이 중요했다. 기회가 왔으니까, 뭔가 작품의 본질을 넘어선, 다른 접근은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