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액션영화 베테랑' 류승완 감독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여름영화를 들고 2년만에 돌아왔다. 이전에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던 다채로운 카체이싱을 담아낸 '모가디슈' 이후 돌아온 류 감독은 해양범죄활극 '밀수'로 여름 스크린의 베테랑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개봉날인 26일 하루동안 31만 8천명을 동원, 누적 관객수 35만 9천명을 기록했다. 특히 이는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3'를 잇는 오프닝 스코어로 '빅4'로 불리는 한국영화 대작이 쏟아지는 텐트폴 시장의 포문을 화려하게 열었다.
▲영화 '밀수' 류승완 감독/NEW |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으로,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 캐스팅만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밀수'는 개성 강한 6인의 캐릭터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는 범죄활극이었다.
'밀수'의 시작은 작은 기록이다. 영화 '시동' 촬영차 군산에 내려갔던 제작사 외유내강 부사장이 지역 박물관에서 70년대에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 밀수품을 기억한다. 지금의 품목과는 아예 다르다. 청바지, 무스탕, 카라멜, 흔한 크래커 같은 것도 밀수품이었고 부잣집의 상징이었다. 일본 가전제품이나 중국 한약제들도 다 밀수품이었다. 심지어 바나나도 정식 수입품이 아니었다. 외유내강 부사장이 군산 해양박물관에서 밀수 기록을 봤고, 저도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서 박재식 작가가 쓴 단편집에서 지금의 해양대학교가 있는 섬에서 밀수 범죄에 휘말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게 됐다. 처음엔 연출 생각이 없었는데, 못봤던 장면들을 펼칠 수 있겠다 싶었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 영화계의 베테랑이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감독, 각본, 주연으로 데뷔한 류승완 감독은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 '모가디슈'까지 다양한 액션 영화를 선보여 왔다. '밀수'와 '해녀' 키워드에 꽂히며 자연스럽게 수중액션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양 수중액션 씬은 이미 '007' 시리즈에서도 보여진 적은 있다. '밀수'에서는 완전히 맨몸으로 비무장 상태에서 해녀들이 살아남기 위헤 물속에서 액션을 펼친다. 어떤 액션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오히려 중력의 지배를 덜 받고, 물의 저항을 받아서 움직임이 빠르지 않는다면 물에서 이미 숙련된 여성들이 남성을 이기는 게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동안 액션 찍으면서 중력의 작용 때문에 구사하지 못했던 카메라의 움직임들, 사람을 띄워놓고 카메라 무빙을 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담아냈다."
▲영화 '밀수' 메인 포스터/NEW |
하지만 수중액션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제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것은 해류의 흐름 때문에 안정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게 몇 일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감독은 "처음 영화 시작했을 때는 물속 장면을 바다에서 찍고 싶어해서 제작부가 반기를 들었었다(웃음). 남해 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헌팅을 다녀온 제작진도 선장님께 물어보지 않으면 매번 물길을 몰라서 헤맸다. 어떨 때는 조금만 더 가면 일본이더라. 하하. 바다 장면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바다 장면은 드론으로 촬영하고 바람도 맞아야 하고, 송수신도 맞아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배우들이 배 위에서 대화하는 장면들은 실외 수조와 실내 수조 세트로 나뉜다. 대부분 많은 작품들이 대형 짐볼 위에 배를 올려두고 바다의 일렁임을 표현했다면, '밀수'는 포크레인으로 수조를 저어 파도를 표현하고, 스태프들이 배에 타서 일정한 움직임을 만들면서 함께 흔들었다. 물속 장면은 촬영 시작 전 앵글을 맞춰두고 배우들이 물에 뛰어들면 앵글이 흔들렸다. 다시 맞추고 시작하려면 촬영 감독의 숨이 부족해서 올라와야 했다. 어느 하나 쉬운게 없었다. 감독은 "정말 어마무시하게 고생했다"고 표현해 노고를 가늠케 했다. 그럼에도 감독은 "실제 촬영장에서 수중 액션 찍을 때 짜릿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극 중 춘자(김혜수)가 물에서 둥둥 뜬 상태에서 몸이 엉키는 모습은 스카이 다이빙 하면서 날아다니는 동선에서만 가능한 액션이다. 또 춘자와 진숙(염정아)이 물속에서 크로스할 때. 그건 땅에서는 잘 못한다. 해녀 연기를 한 배우들이 수영을 못하기도 하고, 물에 대한 공황도 있었는데 3개월동안 훈련해서 선수들처럼 움직일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가졌다.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아닌, 심리적인, 감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이에 '밀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관계 변화가 영화의 포인트다. 흥미로운 점은 극 전체를 아우르는 '춘자'의 설정을 가진 캐릭터만 무려 3명이라는 점이다. 김혜수의 춘자가 중심이라면, 박정민이 연기한 장도리는 '남자 춘자'다. 고민시가 분한 옥분은 '어린 춘자'다.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는 영화다. 장르적으로는 강탈하는, 케이퍼 무비이기도 하다. 보시는 분들의 관점에 따라 다른 장르로 볼 수 있겠다. 저는 관계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춘자가 가장 활약하지만 사실 진짜 중심축은 염정아 배우가 연기한 진숙이다. 진숙은 잘 변화하지 않는다. 가족과도 같았던 춘자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장도리는 가깝지만 가장 먼 사람이 된다. 영화를 만들 때 인물들의 변화의 그래프가 클수록 흥미로워진다는 생각이 있다. 모두가 들쑥날쑥하면 이상해질 수 있다. 진숙의 입장에서는 모두 가 춘자 같을 수도 있겠다."
▲영화 '밀수' 류승완 감독/NEW |
춘자, 옥분과는 다르게 장도리는 구분짓는다면 빌런이다. 감독은 "장도리 캐릭터 변화는 '영웅본색' 같은 느낌이다. 쩌리가 어느 날 바뀌는 설정이다 다양한 것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실 때 조금씩 기대치가 조금씩 벗어나는 영화이길 바랐다. 기분좋은 배신이 작용하는 영화이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춘자들'이 활약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는 '전국구 밀수왕' 조인성이 활약했다. 조인성은 '모가디슈' 이후 자신이 외유내강의 전속배우가 된 것 같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하지만 '밀수'의 조인성은 짧은 등장에서 지상 액션 씬에서 독보적으로 활약한다. '전국구 밀수왕'답게 상대를 간보면서 적당히 이용할 줄 아는 특유의 능글미가 그의 수려한 외모와 찰떡으로 부합해 여심을 뒤흔들고 있다. 오죽하면 조인성 퍼스널 컬러가 류승완 감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감독은 "제가 조인성을 좋아한다. '모가디슈' 하면서 연기력 뿐만 아니라 인품에 반했다"고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모가디슈'에서 너무 망가뜨렸었다. 같이 했던 크루들이 '밀수'도 다 같이 하니까 모두가 마음의 부채가 있었다(웃음). '이렇게 멋있는 사람을!'이라면서 촬영, 조명쪽에서 너무 좋아했다. 이번에는 배우의 미모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조인성을 촬영할 때마다 원금을 까면서 빚을 갚는 느낌이었다. 조인성은 사람 자체가 그릇이 커지고 깊어지고 정말 좋은 스타가 될 것 같다. 지금도 스타지만, 앞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될 사람이다(웃음)."
그러면서 감독은 "배에 탔을 때 권상사의 얼굴이 웃기다. 그럴 때는 정말 다 놔버리는 부분도 있어서 아마 멋있는 부분이 부각되는 것 같다. 하얀 바지에 고추장이 떨어지는 장면을 너무 좋아한다"고 짚었다.
▲영화 '밀수' 류승완 감독/NEW |
'밀수' 이후 박정민, 고민시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이에 박정민, 고민시는 모든 것이 류승완 감독의 디렉팅을 받아서 완성된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감독은 "정말 겸손하고 인성이 진짜 좋다. 저의 디렉션을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나왔을 것이다. 정말 스펀지 같은 배우들이다"고 칭찬했다.
"장도리가 액션 씬 이후 혀를 낼름 거린 장면은 현장에서는 충격과 공포였다.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조인성씨가 '이렇게까지 하냐'고 했을 정도다(웃음). 박정민 배우가 굉장히 내성적이다. 현장에서 '메소드 박'이라고 불렀다. 외면 연기가 필요하니 내면 연기를 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 배우들이 정말 스펀지 같고 되게 영리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고민시는 또래 배우들과 달리, 촬영 끝나면 카메라 앞을 안 떠난다. 촬영 스태프들이 애원할 정도다(웃음). 안 예뻐할 수가 없다. 선배들 옆에서 항상 밥 먹고, 숙소에서 함께 먹고 나면 박경혜랑 그렇게 뒷 정리를 잘했다."
박정민, 고민시의 최애 장면을 꼽아달라는 요청에는 너무 많다며 고심했다. "춘자가 '코딱지만한 군천바닥 먹어봐야 어디에 쓰냐'고 할 때 장도리는 전형적인 충청도 화법을 쓴다. 코딱지를 진짜 보여주지 않나. 뒤 돌려차기 실패하는 장면도 너무 웃기다. 권상사 꽹과리 드립은 사실 박경리 '토지' 대사를 변형한 것이다. 고민시는 '같이죽자' 논개씬이 압도적이었다. 저희도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할줄 몰랐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장면은 3년 후 한복입고 다방에 등장해서 거울보면서 이를 검사하는 장면이다. 제 기억에 우리 이모, 고모들이 이에 빨간 립스틱을 묻어있는데 그랬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이고 아이고 오빠 내가 죽일년이야'도 춘향이를 해도 될 것 같다. 하하."
류승완 감독은 대중에게 신뢰를 받는, 믿고 보는 감독이다. '밀수'는 모든 배우들이 잊지못할, 행복한 촬영장으로 기억한다. 코로나19 시기에 어려운 촬영을 해내면서도 배우들이 스스로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 취재진에 깜짝 공개했던 바. 배우들의 애정이 역대급으로 남달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류승완 감독만의 현장을 아우르는 힘은 뭘까. 류승완 감독은 "배우분들이 팀웍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혜수 선배님은 촬영이 끝나면 집을 안 간다. 제작부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한다'면서 칭찬을 하고 운다. 사실 그들은 원래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렇게 칭찬을 한다. 김혜수 선배님이 모든 배우, 스태프들에 신발을 선물해줬다. 저는 간담회 때부터 신겠다고 하고 지금 신고 다닌다. 현장은 정말 김혜수, 염정아의 주부노래교실 같았다. 모든 촬영을 하고 '컷' 하면 와 박수치고 환호한다. 수조세트에서는 울린다. 그게 사실 시끄러운데 스태프들도 너무 좋아해서 저는 이게 맞게 촬영했나, 오케이를 해야하는건가. 내가 현장에 왜 있는 것인가 자괴감이 들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냥 저는 잘 웃었다. 제가 깔깔대고 웃는 편이다. 제가 웃으면 지인들이 창피해할 정도로. 웃으면서 오케이한 것 밖에는 없다."
그러면서 감독은 "저는 연출하면서 놓치지 않으려는 점은 분명히 있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놓치는게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둔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현장에서 가만 있지 않으려는 편이다. 계속 뛰고 움직인다. 모니터와 카메라 사이 거리에서 오는 휘발되는 것이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상태와 상황을 모두 주시해야 한다. 그래서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모른 척하는 순간도 있지만, 진짜 모르는 것과는 다르니까."